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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프로 Feb 09. 2023

작은 브랜드, 혹은 스타트업의 굴레. (2)

소련의 붕괴에서 보는 총동원 체제의 부작용 

마케터의 인문학은 역사, 그리고 인문학에서 마케팅이나 조직의 운영에 작은 도움이 될 인사이트를 찾아보려는 시도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로켓 성장 뒤에 왜 위기가 찾아오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라는 내용으로 역사 속의 사례에서 한번 답을 찾아보려 합니다. 


지난 글에서는 수십 년 간 일본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굴레'의 정체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그것은 굴레이면서 동시에 성장의 가장 큰 동력이기도 했던 '총동원 체제'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 제 추측이었구요. 



국가뿐 아니라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기엔 창업자를 중심으로 한 총동원 체제로 성장을 하게 되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이 방식이 잘 안 먹히게 됩니다. 투자를 받으면 더하구요. 그간 우리에게 익숙했던 방식에 '왜?'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새로운 목표와 속도를 요구하죠. 갑자기 우왕좌왕하고 조직에서 이탈하는 사람마저 생깁니다.  


원래 의미와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만 이 글에서는 이걸 '캐즘(Chasm*)'이라고 부르겠습니다. 1차 로켓이 그 용도를 다하고 떨어져 나간 뒤, 2차 로켓으로 다시 상승할 때까지의 틈이 캐즘이죠. 만약 이 캐즘을 돌파하지 못하면 대기권 밖에서 한동안 길을 잃거나 심하면 추락할 수도 있죠. 


* 캐즘(협곡) : 원래의 의미는 얼리버드 사용자를 넘어 메이저 시장에 안착하기까지의 틈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조직이 성장하는 단계에서의 틈이라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이 캐즘, 즉 협곡의 통과를 위해선 1차 로켓, 즉 총동원 체제와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이 필요한데요. 이번 글에선 총동원 체제의 '암(暗)'에 대해 좀 더 살펴보고 다음 글에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소련의 붕괴와 대혼란.  


이번엔 소련 얘기로 먼저 시작할까 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공산당 역시 성장을 위해 가장 잘 써먹는 방식이 상명하복식의 총동원이거든요. 


소련, 즉 소비에트 연방은 1991년에 무너집니다 (재밌는 건 일본의 거품이 꺼진 것 역시 1991년이죠). 혹시 아직도 러시아를 사회주의 국가로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현재의 러시아는 형식상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내용상으로는 권위주의 국가구요. 어쨌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여튼, 과거 소련에서는 공산당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하부 기관과 일반 국민들은 따르는 시스템입니다. 보통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라는 말로 대표되죠. 하지만 어느 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지도자들이 모여서 연방 해체에 합의하고, 동시에 공산당에 의한 국가 운영을 포기합니다. (이때 급작스러운 해체가 지금 러시아와 우르크라이나 분쟁의 씨앗이 되구요) 


그럼 어떻게 됐을까요? 갑작스럽게 찾아온 자유, 그리고 자본주의는 어떤 느낌인지 지금은 한국인이 된 일리야가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라는 책에 묘사한 글이 있습니다. 


1990년대는 야생 자본주의 시대이기도 했다. 러시아 국민들은 어느 날 갑자기 무엇인지도 몰랐던 시장 경제를 접했다. 시발점은 화폐가 바뀌는 것이었다. 당시 엄마는 우체국에서 근무했다. 우체국은 공기업이라 중앙 정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소련이 공식적으로 해체된 바로 다음 날 아침에 명령서가 내려왔다. 이제 소련 화폐는 사용할 수 없고, 오늘 밤 12시부터 새롭게 발행한 러시아 루블만 사용해야 한다고 말이다.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중에서


당장 다음 날부터 새로운 화폐인 루블화만 사용할 수 있다는데, 이를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배분해야 할지 정해줄 당은 증발해 버렸습니다. 


문제는 화폐에만 있는 것이 아니죠. 누가 제품을 생산해야 하는지, 어디에 얼마만큼의 식료품을 공급하고,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것들은 또 얼마에 사 와야 하는지.. 이런 것을 결정할 주체가 없는 겁니다. 당시 빵 한 조각 사기 위해 긴 줄을 서 있는 모습을 기억하는 분들도 있을 건데요. 소련에서 러시아가 됐다고 갑자기 가난 해졌다기보다 이런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무너졌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입니다.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 Gennady Mikheev, Russia in 1993)


태어날 때부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온 우리는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사실 자본주의라고 해서 이런 걸 누가 결정해 주는 건 아니잖아요?! 수요가 있으면 공급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나의 노력을 통해 부가 수익을 창출해야겠다는 개념이 없으니 스스로 움직이고 또 이것이 톱니바퀴처럼 물려 돌아가게 하는 보이지 않는 손도 없습니다. 


소련의 붕괴는 다소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일본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혹시 일본 기업드라마를 보신 적 있으신가 모르겠는데요. 최근작으로는 '육왕'이나 '변두리로켓' '루즈벨트 게임' 같은 작품들이 있죠. (이들은 모두 '한자와 나오키'를 쓴 이케이도 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이런 기업 드라마의 내용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기술력이 뛰어난 중소기업들이 사장에서 직원들까지 똘똘 뭉쳐서 위기를 극복하고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내는 거죠. 우리 정서에는 필요 이상으로 비장하고 좀 오글거리기도 하는데.. 일본에선 이런 내용이 여전히 먹히나 봅니다. 


이 드라마 속의 직원들은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를 밤낮 없는 연구와 집념으로 해결해 나갑니다. 문제는 최고의 제품, 최고의 기술 같은 명확한 목표가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겁니다. 아직도 소부장 영역에선 이런 끈기와 열정이 먹힙니다만, 완제품 부문은 상황이 달라졌죠.  


부품과 제품의 차이에 대해 예를 들어 볼게요. 삼성전자는 하나의 회사 같지만 완성품 부문(휴대폰이나 가전 등)과 부품 부문(반도체)이라는 완전히 이질적인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삼성은 꽤 오랜동안 성격이 다른 이 두 부문을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할까가 고민이었다고 하죠. 


부품 쪽은 '수율*'이 중요합니다. 얼마만큼 불량품 없이 정밀하게 작동하느냐가 핵심이죠. 하지만 완제품은 다릅니다. 10개의 제품이 망하더라도 1개의 히트 상품이 나머지 실패를 모두 만회하고도 남습니다. 예전엔 완성품에서도 '잘 만든' 제품이 1등을 했지만, 지금은 다르죠. 일본 기업들이 힘들어진 이유입니다. 


*수율 : 불량률의 반대. 반도에의 생산성, 수익성에서 매우 중요. 




정리해 볼까요? 과거 일본이나 소련에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전쟁일 수도 있고, 최고의 제품이나 당의 명령일 수도 있죠. 이런 명확한 목표 하에서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면 급격한 성장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는 신생 기업이나 Fast Follower 상황일 때의 문법이기도 하죠.  


요즘ㅁ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가입자(잠재 소비자)를 많이 모으고 이를 토대로 투자를 받는 것이 1차적인 목표입니다. 한마디로 생존이 목표인 거죠. 사장에서 직원들까지 아무도 여기에 이견이 없습니다.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공동의 갈 길이 있는 거죠. 


그다음은요? 그렇게 해서 투자를 받는 것에 성공한 스타트업들 중 다음 단계의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다시 성장을 하고 있는 회사들은 몇이나 될까요? 


우리 회사가 투자도 받고, 시장에서 인지도도 어느 정도 생겨서 MAU는 자연스레 어느 정도 따라오고 있다고 생각해 보죠. (물론 제발 그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회사들이 더 많겠지만) 더 이상 정량적인 성장은 의미가 없습니다. 


만약에 내가 이러한 회사의 리더라면 다음 목표를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직원들에겐 어떤 비전과 방향성을 제시해야 할까요?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마지막 3번째 글에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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