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가 브런치를 시작한 초창기에 올렸던 글입니다. 당시 <총 균쇠>를 읽다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라 써본 글인데요. 사실 당시엔 구독자도, 방문자도 많지 않았던 지라 읽은 분들은 많지 않지만 지인 분들께는 꽤 반응이 괜찮았어요.
제가 이번 달에 <총 균쇠>로 다시 독서 모임을 하게 돼서, 생각난 김에 다시 올려 봅니다. 다시 정리해서 올리는 김에 내용은 약간 보완했구요.
'총 균 쇠'나 '사피엔스' 같은 빅 히스토리 책을 읽다 보면 문자의 역사 관련된 내용들이 많이 나오죠. 저도 책을 읽다가 저도 그간 접한 지식들을 중 '문자'와 관련된 흥미로운 내용들을 발췌해 둔 것이 떠올라 정리해 봤습니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대부분의 것이 그렇지만, '문자' 역시 수메르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원전 3천 년 이전에 이미 문자를 만들어 냈다고 하니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단군 할아버지가 고조선을 건국한 것이 BC 2333년이라고 하는데 그보다도 오래된 거죠)
물론 이때의 문자는 지금의 우리 기준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입니다. 제대로 된 모음이 등장한 것이 이로부터 무려 2천 년이 지나서의 일이니까 거의 그림 같은 걸로 표현했다고 봐야죠.
독립적으로 문자를 만들어 낸 것이 확실한 민족은
B.C. 3,000년보다 다소 앞섰던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인과
B.C. 600년 이전의 멕시코 인디언들이다.
B.C. 3,000년경의 이집트 문자와
B.C. 1,300년 이전의 중국 문자도 독립적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총 균 쇠 318p, 제레드 다이아몬드
당시 수메르에서는 문자가 어떻게 쓰였을까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는 당시의 기록 중 하나가 나옵니다. 사실 고대의 문자들은 일반 백성들을 위한 것이 아닌, 지배층의 '기록'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별도의 '필경사'라는 직업을 두었죠. 나주에 발견된 문서도 필경사가 되기 위한 교육 기관에서 공부하던 학생이 쓴 글인 듯싶습니다.
당시엔 맞는 것이 일상화된 것인지, 아니면 그때부터 벌써 '힙합(?)'이 유행해서 라임을 맞춘 랩을 습작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정도 맞으면 더 삐뚤어지지 않을까 싶군요.
나는 학교에 가서 자리에 앉았다. 선생이 내 점토판을 읽고 “빠뜨린 게 있잖아”라고 말했다. 그는 나를 회초리로 때렸다. 책임자 중 한 명이 말했다. “어째서 내 허락도 없이 입을 벌렸느냐?” 그는 나를 회초리로 때렸다. (중략..) 맥주 항아리 관리자가 말했다. “어째서 내 허락도 없이 마셨지?” 그는 나를 회초리로 때렸다. 수메르어 선생이 말했다. “어째서 아카드 말을 썼지?" 그는 나를 회초리로 때렸다. 담임선생이 말했다. "너는 글씨가 악필이야!" 그는 나를 회초리로 때렸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혹시 '번지점프를 하다'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전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래의 질문을 할 때였습니다.
왜 젓가락은 'ㅅ' 받침인데, 숟가락은 'ㄷ'받침이야?
극 중에 남자 주인공(이병헌)이 국어교사였거든요. 그 대답은 기억나지 않는데(대답 못했던 것 같음), 저도 궁금해지더군요. 그런데 사실 그것보다 더 궁금한 게 있는데요... 'ㅅ'은 왜 '시옷'이라 읽고 'ㄷ'은 '디귿'이라 하며, 'ㄱ'은 왜 '기역'이어야 하는 걸까? 하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냐구요?
다들 잘 아시겠지만.. 자음을 읽는 방법은 각 자음이 초성에 있을 때와 종성에 위치할 때 어떻게 소리 나는지를 익히게 하려는 용도가 있습니다. 앞 음절에선 대체로 ‘이’ 앞에, 뒷 음절에선 ‘으’와 함께 배치하죠. 니은, 디귿, 리을처럼요.
문제는 왜 '기윽' '니은' 디귿'.. '시읏'처럼 일관되게 쓰지 않고, '기역'이나, '시옷' 같은 예외가 발생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미 국어 시간에 배웠는데 저만 모르는 거일 수도 있지만 말이죠.
그냥 그런가 보다 하다가 '한글 전쟁'이라는 책을 읽고 그 의문이 풀렸습니다.
ㄱ其役ㄴ尼隱ㄷ池末ㄹ梨乙ㅁ眉音ㅂ非邑 ㅅ時衣ㅇ異疑
末衣兩字只取本字之釋俚語爲聲
其尼池梨眉非時異八音用於初聲役隱未乙音邑衣疑八音用於終聲
훈몽자회, 최세진 (한글 전쟁에서 재인용)
갑자기 한자가 나오니 더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위의 '훈몽자회'라는 책에서 최세진이라는 분은 한글 자음에 대해 설명합니다. 물론 조선시대의 책이며,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렵지만 한글(언문)을 한문으로 설명하는 내용이죠. 어쨌든 당시엔 한자가 더 널리 퍼져 있었으니까요.
아마도 이 책은 훈장들을 위한 교본인 듯한데요. 각 자음이 초성과 종성 있을 때 어떻게 발음되는지를 한자 독음을 통해 설명합니다. ㄱ은 '其役(기역)'이고, ㄴ은 '尼隱(니은)'이며, ㄹ '梨乙(리을)',ㅁ '眉音(미음)',ㅂ '非邑(비읍)'.. 까지도 좋았으나, ㄷ과 ㅅ이 문제입니다. ㄷ이나 ㅅ이 종성인 한자는 없으니까요..
따라서 각각 池末과 時衣이라 적고 末과 衣을 '음'('말'과 '의')으로 읽지 않고 '뜻'('끝'과 '옷')으로 읽어 (훈독) '디귿(끝?)'과 '시옷'이 되는 것입니다.. (池는 지금과는 발음이 좀 달랐던 것 같네요, 아님 반대로 ㄷ이 달랐거나..)
이쯤 되니 왜 '기윽'이 아니라 '기역'이 되었으며, '시읏'이 아니라 '시옷'이 됐는지 의문이 풀립니다. 읽는 법을 한자로 가르쳤기 때문인 거죠.
아이러니한 것은 이 '최세진'이라는 학자가 한글 공부법을 배우라고 한 이유인데요. 역시 세종대왕의 뜻을 이어받아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전파하는 선각자.. 였다면 아름다운 엔딩이겠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혹시나 선생 없이 한자를 독학할 때를 대비해 '언문'을 익혀두면 좋을 것이란 이유 때문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한글을 발음기호로 쓰기 위해 배우라는 거죠)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방법이 오늘날까지 한글 교육에 쓰일 줄 최세진 선생은 알았을까요?
또 하나.. 잠깐 한글과 관련한 딴 얘기를 하자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이른바 '한글간소화'를 주장합니다. 한글학자들이 사대주의(여기서는 중국에 대한)에 빠져 쓸데없이 한글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건데요. 대표적으로 '잇다'와 '있다'는 발음에 차이가 별로 없는데 왜 굳이 다르게 쓰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만약 이 주장대로 됐다면, 지금 우리는 '흙'을 '흑'으로, '읽다'를 '일따'로 쓰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뿐 아니라 한글은 예전 기계식 타이프로 치기 힘드니 영어 알파벳처럼 '풀어쓰기'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등장했습니다. '안녕하세요'를 'ㅇㅏㄴㅕㅇㅎㅏㅅㅔㅇㅛ'로 쓰자는 거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말과 글에도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기역'이나 '시옷'을 '기윽'과 '시읏'으로 고쳐 쓰지 않는 것도, '숟가락'을 '숫가락'으로, 또 '꽃밭'을 '꼿밧'이라고 쓰지 않는 것도 역사와 그 의미를 지키기 위해서인 셈이죠.
테드 창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컨택트 (원제 ARRIVAL)>를 보면 외계인과 소통을 하려는 언어학자가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소리'를 통해 대화를 나누고자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죠. 하지만 곧 이 외계인들은 독특한 모양을 통해 의사를 표현한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이들은 공기 중에 아래와 같은 문자를 분사?합니다. 소리가 아닌 이러한 문양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죠.)
위와 같은 형태의 '문자(?)'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도 아마 언어학자들의 고증을 거쳤을 테니 어디선가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우리나라에서도(또 저 멀리 잉카에서도) 새끼줄을 통해 악보 등을 표현한 '결승 문자(quipu)'를 사용했다는데, 여기에서 영감을 얻었든 또는 다른 고대 사회에서의 문자를 토대로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김초엽의 SF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도 외계인과의 소통을 하는 단편이 나옵니다. 아마도 테드 창의 원작 소설이나 컨택트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추측이 되는데요.
희진은 그림들을 나란히 바닥에 펼쳐놓았다.
도저히 겹칠 수 없을 것 같은 복잡한 배색들 중에도 동일한 패턴이 계속 반복되곤 했다.
그동안 희진은 문자 언어의 형태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형태가 아니라 색의 차이, 색의 패턴을 보아야 했던 것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중 <스펙트럼>, 김초엽
어느 외계 행성에 불시착한 '희진'은 '루이'라는 외계인이 무언가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처음엔 도대체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었죠.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됩니다. 이들은 그림의 모양이나 어떤 기호가 아니라 색의 패턴(스펙트럼)을 통해 무언가를 전달한다는 것을..
우리는 보이저 호에 목소리를 실어 보내기도 했지만, 외계인의 언어는 위의 헵타포드어나 스펙트럼처럼 우리와 전혀 다른 방식의 소통 방식이라면 과연 우리가 보낸 소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우리는 우리의 환경과 우리가 이해한 방식으로, 즉 우리의 잣대로 남들을 이해하려는 오류를 흔히 범하게 됩니다.
마케터든, 작가든, 또 가게를 하는 분이든.. 결국 다른 이들을 대상으로 소통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항상 역지사지의 사고방식을 가져야 하겠죠. 물론 쉽지 않겠죠. 그래서 상상력이 중요하고, 또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겁니다.
아래의 사진을 묘사해 보라고 하면 어떻게 설명하시겠어요?
이와 사진을 설명할 때 동양인과 서양인이 대체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동양인은 대체로 수조, 또는 바다가 있는데 거기에 물고기들이 보이고.. 하는 식으로 접근합니다. 하지만 서양인들은 니모와 같은 물고기가 있고 그 옆으로 노란 물고기와 산호초 등.. 이런 식으로 설명해 나가죠.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언어에도 그 영향이 있습니다. 서양은 주로 작은 것에서 큰 것 순으로 설명하죠. 대표적으로 주소가 그렇고, 이름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동양은 반대죠. 주소도 큰 곳에서 작은 곳으로, 이름도 성을 앞에 쓰고 이름을 뒤에 둡니다.
이런 차이는 기후의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있죠. 강수량에 따라 벼농사를 하는 곳과 밀농사를 하는 곳이 각각 다른 형태의 사회를 만들어 냈다는 겁니다.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서 하는 벼농사는 홍수나 가뭄의 피해를 막기 위해 물을 다스리는 치수 사업이 필요했다. 벼농사에는 저수지와 보를 만들거나 물길을 만드는 토목 공사가 필요한 것이다. 반면 밀 농사를 할 때에는 개인이 씨를 뿌리면 되고 치수를 위한 대형 토목 공사도 필요 없다... 따라서 벼농사 지역의 사람들은 집단의식이 강하고, 밀 농사 지역은 개인주의가 강하게 나타난다.
공간이 만든 공간 - 유현준
이러한 특성이 언어에 반영됩니다. 그리고 다양한 문화에 모두 스며들죠. 그리고 그 언어와 문화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지배합니다. 그런 사고방식이 다시 또 그런 언어와 문화를 만들죠.
앞서 이야기한 영화 컨택트에서는 외계인들의 언어, 즉 햅타포드어를 배우니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이론에 근거한 상상인 셈이죠.
예전에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 책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든다라는 말이 쓰여있었습니다. (지금도 있던가요?) 여기에 빗대어 보면 말은 곧 사람을, 사람은 또 말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
우리는 지금 읽고 듣고 있는 말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요? 그리고 또 나는 어떻게 언어를 사용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직접 주고받는 내용 외에도 말과 글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