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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프로 Mar 18. 2023

책과 영화 속의 '종교' 이야기

요즘 종교가 이슈입니다. 종교가 우리의 일상의 중심이던 시대는 끝난 것 같았지만, 여전히 어느 한편에서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종교가 전부인 것 같네요. 


종교는 인류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영역을 차지하고 있죠. 역사에 관심을 갖다 보니 자연스레 종교 관련해서도 이런저런 책들을 봐왔는데, 지난번 글과 마찬가지로 <총 균 쇠>와 연계해서 그간 읽어온 책들과 영화 속의 종교 이야기를 단편적이나마 해볼까 합니다.  




얄리의 '화물'과 '존 프럼'


<총 균 쇠>의 서문에 나온 대로 이 책의 집필 동기는 ‘얄리'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질문은 이런 거였죠.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어째서'에 집중해 어마어마한 깊이와 길이의 대답을 만들어 냈습니다만.. 저는 정작 엉뚱한 데에 꽂혔습니다. 얄리는 왜 발전된 문물을 '화물(Cargo)'이라 부르 걸까? 하는 의문이죠. 그저 번역이 잘못된 건지, 또는 얄리의 어휘력 탓인지.. 뭔가 좀 찜찜했지만 그대로 묻어두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한참 뒤에 '리처드 도킨스'(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의 책, '만들어진 신'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뉴헤브리디스의 탄나 섬에는 유명한 숭배 의식이 아직 남아 있다.
그 의식의 중심에는 존 프럼(John Frum)이라는 구세주 같은 인물이 있다.
나중에 그는 풍족한 '화물'을 가지고 재림할 것이라는 약속을 남기고 조상들에게로 돌아갔다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여러분도 답을 찾으셨나요? 여기에 '화물'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이 책에서는 '존 프럼'이란 인물이 나타난 곳으로 '틴나'섬이 특정되어 있지만,  이러한 '화물 숭배(Cargo Cults)'는 남태평양(얄리가 살던 뉴기니를 포함) 일대에 꽤 넓게 퍼져 있던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화물 숭배란 대체 뭘까요? 남태평양의 원주민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남태평양에 진주했던 백인 군인들이 하늘에서 '화물'을 공급받는(비행기로 보급하는) 신기한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아마도 당시 화물은 쌀, 담배, 통조림, 그리고 탄약 같은 거였겠죠.  


이런 화물도, 그리고 그런 화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신기했던 이들은 이후 백인들이 쓰는 전자제품이나 발전된 문물들은 모두 '화물'이라고 통칭하게 됩니다. 그리고 언젠가 '존 프럼'이라는 인물이 자신들에게도 화물을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마 당시 미군 중 한 명이 원주민들에게 보급품 일부를 나눠주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이름이 존 프럼일 수도 있겠죠. 여튼 원주민들 사이엔 언젠가 존 프럼이 다시 돌아와서 화물을 나누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종교화 된 겁니다. (그들에게 화물은 곧 생존이니까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존 프럼을 믿고 있는 원주민들은, 그게 언제적 일인데 아직도 '존 프럼'을 기다리냐고 비웃는 백인에게 이렇게 답했다고 하네요. 


1970년 인터뷰를 했던 한 프럼 부락의 추장은 "사람들은 거의 2천 년 동안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렸다. 그렇다면 우리라고 프럼을 그 이상 기다리지 못하겠는가?"라고 말했다. 

문화의 수수께끼,  마빈 해리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위에 인용한 <문화의 수수께끼>라는 책을 보면 프럼교에서 예언자적인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기독교로 치면 아브라함과 비슷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예언자의 이름이 '얄리(Yali)'입니다. 우리는 병아리(?) 이름으로만 알고 있지만, 남태평양 쪽에서는 꽤 흔한(또는 이 예언자 때문에 많이 사용하게 된?) 이름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족에서 국가로..


<총 균 쇠>에서는 사회 형태를 무리(band), 부족(tribe), 추장 사회(chiefdom), 국가(state)의 네 범주로 나누어 소개합니다. 추장 사회 이상으로 올라갈수록 지배 계급이 '도둑 정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죠. 구성원들 사이에 계급 역시 등장하게 되구요. 


부족 사회와 국가의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영화로는 멜 깁슨 감독의 '아포칼립토'가 있습니다. 



아포칼립토의 핵심 주제는 영화를 시작하며 인용한 문구에서 드러나지만, 위대한 문명은 결국 내부에서 먼저 붕괴해 간다는 점입니다. 


A great civilization is not conquered from without until it has destroyed itself from within. 

William James Durant


평화로운 부족 사회에서 살고 있던 '표범발'은 어느 날 갑자기 외부의 침략자로부터 공격을 받고 노예로 팔려 갑니다. 이때 '표범발'이 끌려간 곳이 바로 '마야'죠. 


당시 중남미는 흉작이 이어져 잡아온 노예들을 신께 바치는 '인신 공양'이 성행했습니다. 영화 중 가장 잔인한 장면으로.. 보는 분 중에 상당히 충격을 받는 분들도 있죠. 이때의 인신 공양은 식인을 통해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는 목적도 있다고 하더군요. 


생각해 봐야 할 점은, 당시 마야나 잉카 같은 곳은 주변의 부족들을 공양물로 삼으면서 원한을 사게 됐다는 점인데요. 그리고 그 부족들은 '스페인' 같은 침략국과 연계해 복수를 하게 되죠. (이 영화는 좀 다른 결말이지만..) 


이런 현상은 아프리카에서도 일어납니다. 최종적으로 흑인들을 노예로 사간 것은 백인들이지만, 실제 그들을 '사냥'하고 팔아넘긴 것은 대부분 주변 부족들입니다. 이걸 이이제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그리고 이들은 대가로 백인들의 무기를 받게 되구요. 


또 한 가지.. 부족과 국가 등의 생성 단계와 관련해서 살펴봐야 할 것은, 그간 우리는 농경사회가 시작되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계급과 종교가 발생된다고 배웠지만 최근에는 그런 믿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괴베클리 테페'죠. (이 포스팅 커버 이미지가 괴베클리 테페)  


괴베클리 테페의 구조물들은 연대가 기원전 9,5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모든 증거가 가리키는 바, 이 구조물들은 수렵채집인들이 세운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처음에 이 발견을 신뢰하지 못했지만, 조사를 거듭할수록 이 구조물의 오랜 연대와 이를 세운 시기가 농경사회 이전이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했다.. (중략)

괴베클리 테페를 건설하는 유일한 방법은 여러 무리와 부족에 속한 수천 명의 수렵채집인들을 오랫동안 협력하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그런 노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세련된 종교나 이데올로기 시스템 밖에 없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일반적으로 농경 이후 계급이 발생하고, 그러한 계급과 종교가 거대한 구조물에 사람들을 동원하게 만든 원천이라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농경도, 계급 사회도 시작되기 전에.. 이들은 무엇을 위해 이러한 구조물을 만든 것일까요? 종교나 어떤 이데올로기가 이미 우리의 상상 이전에 존재했던 걸까요? 




센과 치히로의 '신토(神道)'


일본은 (다른 면에서도 그렇지만) 종교면에서도 독특한 나라입니다. 보통 산업화가 된 국가에서는 토속적인 종교들이 살아남기 쉽지 않은데, 일본만은 예외적이죠. 일본인의 90% 이상이 '신토'를 믿는다라고 할 정도니까요. 


우리에게도 '유교'가 생활에 녹아 있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일본의 신토는 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합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보면 '가오나시'를 비롯 온갖 신들이 등장합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이 보통 그렇듯이 먼지, 또는 쓰레기도 '카미(神)'가 될 수 있죠. 일반적으로 '애니미즘'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일본만의 좀 독특한 무엇이 있는 듯합니다.


일본은 신들에 의해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신들의 거주 장소로 선택된 거처였다. 다른 대부분의 종교들은, 신들이 땅을 찾아갈 수는 있지만, 적어도 신들의 주된 거주 장소는 우리들 머리 위에 펼쳐진 하늘나라 Heaven라고 불리는 특별한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일본의 섬들 자체는 자연 도처에 존재하는 카미 kami [神]라고 불리는 신성한 영혼이 물질적 형태로 드러난 것이었다. 그 영혼들은 동물 안에도 머물렀다. 일본의 산들, 그들이 가장 아름답고 신성한 산이라고 믿었던 후지산[富士山]에도 거주했다. 식물 안에서는 물론 강 안에서도 카미는 발견된다

세계 종교의 역사, 리처드 할러웨이  


일본에선 '신토(神道)'가 왜 이렇게 강력해졌을까요? 일본은 메이지 유신 시절, 일종의 '양무운동'이나 '동도서기'처럼 서양의 기술은 받아들일 수 있되, 정신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으로 기독교를 억압합니다. 또 그때까지 주요 종교였던 불교까지 통합해서 신토를 국교화하죠. 이른바 '국가신토'의 탄생입니다. 


그때까지 모든 사람에게 고장의 사원에 등록할 것을 의무화했던 도쿠가와 시대의 데라우케 제도가 폐지되고, 그 대신 지역 신사에 등록하는 것이 의무화되었다.

현대 일본의 역사, 앤드루 고든


그간 불교의 사원이 주민들을 관리하는 동사무소 역할 같은 것을 해왔는데, 이를 신사(신토의 사원)로 통합한다는 내용입니다. 단순히 종교를 넘어 주민들을 관리하기 위한 기관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죠. '천황'을 주신으로 숭배하며, 국가에 헌신하다가 죽으면 역시 '카미'가 될 수 있다는 사상의 출발입니다. 아울러 종교가 통치의 수단으로 전환되는 순간이구요. 


지금은 일본에 가야 구경할 수 있는 곳이 됐지만 한때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에도 신사가 있었습니다. '천황'을 신들의 정점에 세우고 천황에 충성하다가 죽으면 신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국가를 통치하는 데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으니까요. 

남산에 있던 조선신궁 (©️나무위키)


현재 '국가신토'는 사라졌지만, '신토'는 여전히 일본인의 정서를 지배하는 사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불교와 신토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두 종교(실상 일본인들은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는)는 묘하게 섞여서 일본인들의 생활에 녹아들었죠. 



일본의 근대화에 '국가신토'가 동원됐다면 우리에겐 무엇이 있었을까요? 제 생각에는 '반공'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공교'의 핵심 교리는 '우리도 한번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잘 살아보세'이며, 여기에 딴지를 거는 이단은 모두 '빨갱이'로 몰고 '국가보안법'으로 처단했죠. 


한국 전쟁이 끝난 지도, 그리고 북한과의 체제 경쟁이 끝난 지도 한참 지났지만 레드콤플렉스는 여전히 우리 사회 속에 깊게 배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종교와 역사 사이..


<총, 균, 쇠>의 주요 논지가 '유럽' 또는 '유라시아' 우월주의를 타파하는 것인데, 그 범위는 '종교' 부분까지 적용되어 있습니다. (한 뿌리에서 태어난) 세 종교의 발원에 대한 내용을 볼까요?      


우리는 서구 문명이 근동에서 발원해 유럽에서 그리스 및 로마인들에 의해 찬란한 절정에 이르렀으며 세계의 위대한 세 가지 종교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를 탄생시켰다고 배웠다. 이들 종교는 서로 가까운 세 가지 언어(이른바 셈 어족)를 사용하는 사람들 속에서 생겨났는데... (중략) 셈계 언어들이 사실은 훨씬 더 큰 어족(아프리카 아시아 어족)의 여섯 남짓한 갈래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총 균 쇠 564-565p


조금 부연을 하면, 서양의 문명과 종교는 근동 즉 이스라엘 어딘가에서 발원해서 퍼져 나갔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시작됐다는 이야기입니다. (민감한 문제라 그런지 돌려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메소포타미아의 종교와 구약이 유사한 점이 많다거나 모세의 이집트인 설 같은 것을 언급할 수 있겠으나, 이 책의 목적은 그런 것이 아니므로 서양 문명의 주요 축 중에 하나가 북아프리카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정도로 그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아프리카 기원설이 됐든, 지동설이나 진화론 같은 과학이 됐든... 기존의 종교적 신념을 위협하는 요인들을 반박하기 위해서 종교 스스로 역사가 되고 과학이 되려는 시도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도올'이 일침을 날린 적이 있죠. 


주몽이 건넌 염리대수가 흑룡강성의 송화강 상류인 눈강 어드메라고 비정할 수 있다는데,
그곳은 가서 주몽의 궤적을 추적하는 고고학적 발굴을 감행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찌하여 모세의 도홍해(渡紅海)는 역사적 사실로만 믿으려 하는지 나는 그 어리석은 속셈을 헤아릴 길 없다.

도올의 로마서 강해 62p. 


'로마서 강해'라는 책는 그 목적과는 좀 다르게, 도올의 박학다식함을 느낄 수 있는 '구라(?)'들이 끝없이 이어진 책입니다. ('끝으로'를 무한 반복하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처럼 이 책의 '입오'는 무려 250페이지를 넘게 이어지죠) 역사나 종교에 관심 있으신 분은 순수한 지식 탐구의 차원에서도 한번 읽어볼 만한 합니다. 




종교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이고, 문명의 역사입니다. 서양의 종교는 '구원(salvation)'을 근간으로 하고, 동양 종교는 주로 '깨달음(槃)'을 목적으로 존재해 왔습니다. 


이를 보면 종교가 수단적으로 봤을 때는 개인의 기복(祈福) 일 수도 있겠고, 지배자들의 통치수단일 수도 있겠지만 그 시대와 그 사회가 어떤 답을 찾고 있는가에 대한 실마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오늘날의 종교들은 어떤 질문과 대답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P.S. 참고로 저는 종교를 학문이나 역사로 공부할 뿐, 특정 종교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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