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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프로 Dec 12. 2020

만주 모던, 731부대, 그리고 쿠데타

60년대 한국 개발 체제의 기원

<만주 모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유튜브를 통해서다. 원래 역사, 그중에서도 한중일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은데.. 조승연 작가가 추천한 베스트 역사책 중 한 권이 바로 <만주 모던>이었다. (아마 나처럼 이 영상을 통해 처음 접한 분들이 꽤 많을 듯?!)


이 책은 사실 꽤나 불편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아직 우리 사회 가장 민감한 문제 중 하나인 '일제 식민기'와 '독재 정권'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접근을 하고 있는데.. 자칫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지지나 '개발 독재'에 대한 미화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뭐,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라 실제 그럴 수도 있겠지만..)


20세기 전후에 아시아의 교류를 본격적으로 확산시킨 것은 일본 식민주의다. 이것은 조선인의 일본과 만주로의 이주(각각 약 200만 명), 패망 후 일본인의 귀환(민간인과 구인 약 630만 명의 '인양자') 만주와 조선 간 쌍방 이동을 합쳐 약 1천만 명의 이동을 초래한 대소용돌이의 역사다. 모든 문화의 기원은 '제국주의'라는 지적처럼 일본 식민주의는 근대적 아이디어와 제도를 광범위하게 확산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만주 모던 | 한석정  


<만주 모던>은 어떤 내용인가?


<만주 모던>은 불편할 뿐 아니라 읽기도 꽤 어렵다. 일반인들을 위해 친절히 썼다고 할 수는 없는, 다분히 학술 서적에 가깝다. 비슷한 시기 읽은 <밀리터리 세계사>나 <중국 군벌 전쟁> 같은 책과 비교하면 그런 면이 더욱 그러한데.. 특히, <중국 군벌 전쟁>의 경우 무려 1,400페이지(만주 모던은 500 페이지 가량)에 달함에도, 완독 할 가능성은 아마도 <중군 군벌 전쟁> 쪽이 좀 더 높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책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보자..


책의 부제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책은 '만주' '60년대의 한국 개발 체제' 연결 짓는다. 해외에 나가 보면 한국이 얼마나 빨리빨리 돌아가지 체감할 수 있는데.. 이런 한국인이 부지런함, 불도저같이 밀어붙이는 힘의 기원을 식민 체제에서 찾는 것이다.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한 부정적 반응을 의식했는지, 학문과 우리의 정서는 분리되어야 함을 서문에서 강하게 주장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다시피.. 일본은 '사무라이' 나라다. 메이지 유신 이후 상징적으로 '천황'을 중심에 내세우지만, 실권은 '군인'들이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상주의적이고 급진적인 군인들이 (독자적으로) 세운 나라가 '만주국'인데.. 이후 일본은 메이지와 대만, 조선 등에서 근대 국가를 만들어 냈던 경험을 살려, 새로운 나라 역시 군사 작전하듯 '건국 (建國)' 해낸다. 마치 조립식 주택처럼..


만주국을 포함해 일본 제국 내 여러 식민 국가는 메이지 국가 형성의 경험을 살려, 조립형 주택이 만들어지듯 용이하게 세워졌고, 이것은 전후 한국 등 동아시아의 국가 형성에 유산으로 작용했다.

만주 모던 | 한석정


'박정희' '만주군관학교' 출신이다. 그가 보기에 국가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 가장 이상적인 집단은 '군대’였고, 만주식 근대화는 가장 효율적인 '건국'의 방식이었다.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군사 정권은 '재건(再建) 체제'라는 이름 하에, 마침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되찾으려는 일본(기시 노부스케를 중심으로)의 이해와 맞물려 개발 체제를 이끌게 된다...




쿠데타, 그리고 역사의 오해


이 책은 한편으로 '항일운동의 성지' 정도로만 기억되는 만주에 대해 재조명을 하는 책이지만, 한편으로 왜 쿠데타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나, 아니 그들은 왜 쿠데타를 일으켰나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가 가장 근접하게 겪은 근대화 국가는 '일본'이었다. 또 625와 남북의 대치 상황에서 비대화된 군인(물론 일부겠지만)의 눈에는.. 그리고 1945년 독립 이후 '민주'를 지향했던 정치인들의 비효율적이고 혼란스러운 국가 운영을 지켜본 상황에서는.. 군인의 집권을 통한 권위주의적 체제의 수립만이 '구국의 길'로 보였을 수 있다.


이 책에도 잠깐 나오지만 요사이 '731 부대'에 대한 '오해'를 연구한 내용들이 많이 발표되고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731 부대 하면 '마루타'가 연상되고 반인륜적인 인체 실험에 대한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우리가 방송을 통해서나 영화 등을 통해 접했던 자극적인 이미지들은 실상 오해에서 비롯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사진. 하지만 실제로는 소독액을 뿌리는 사진이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수준에서 보면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그냥 맹목적으로 전파할 수 있다. (넓고 얕은 지식만으론 ‘지적 대화’를 할 수도, 해서도 안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한 단계 깊이 들어가 보면 731 부대는 페스트균이 발생한 지역에서 박멸대를 운영한 것이며, 한 단계 더 들어가 보면 이 페스트균 자체를 731 부대가 일으킨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엇이 진짜 잘못된 일인지를 모른 채 감정적인 접근을 해선 안 되는 이유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사진을 다시 해석해보면 731부대가 페스트를 일으켜놓고 그것을 숨긴 채 방역 작업을 한 것이다. '호외 소독'이라는 미명 하에 실시된 이 방역 작업은 자신들이 살포한 페스트균이 어떻게 전파되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기 위한 역학조사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역사비평 132호 | 하세가와 사오리, 최규진




식민주의 건, 개발독재에 대한 것이건.. 문제가 있다고 해서 몰라도 된다는 것과 동일시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한때 공산주의나 북한에 대한 것은 무조건 비난하고 숨기기에 급급한 시절이 있었다. 일본에 대한 것이나, 우리의 암흑기에 대한 역사라고 해서 채색하거나 덮어 버린다는 건 또 다른 오해와 잘못된 이해를 낳을 수 있다.


우리는 약자가 이기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역사에 정의는 없다. 과거에 존재했던 문화 대부분은 늦든 이르든 어떤 무자비한 제국의 군대에 희생되었고, 제국은 이들 문화를 망각 속에 밀어 넣었다. 제국도 마침내 무너지지만, 대체로 풍성하고 지속적인 유산을 남긴다. 21세기를 사는 거의 모든 사람은 어디가 되었든 제국의 후손이다.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우리는 어찌 됐든 20세기 제국주의의 소용돌이 속에 살아남았다. <만주 모던>은 식민 시대의 우리 삶에 대해, 그리고 만주라는 체제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살펴보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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