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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프로 Dec 01. 2020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2

일본인의 Mentality, 기무, 기리, 온과 하지..

지난 글에서, <국화와 > 오늘날에도 읽히고  의미가 있는 이유에 대해 일본인의 'Mentality' 분석에 있음을 이야기했는데,  구체적인 내용입니다. 저에게만 그럴  있지만  책은 결코 쉬운 책이 아니더군요.


베네딕트가 짜 놓은 전체적인 구조를 이해를 해야 하고, 일본어를 영어로 표현했던 것을 다시 우리말(또는 일본어)로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마구 꼬이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개념적인 용어들은 왜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일례로, 義理의 경우, 한자 그대로 읽는다면 '의리'가 되는데, 이 단어에 대한 우리의 기존 상식으로 적용하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번역본(문예출판사)에서도 '의리'로 표기하지 않고 일본어 그대로 '기리'라고 적고 있죠..


혹 이 글을 보시고 <국화와 칼>을 읽으시는 분이 있다면, 역사에 대한 서술이나, 정치적인 내용보다는 왜 일본인은 '혼네(本心)'를 잘 드러내지 않는 걸까? 왜 고맙다고 해야 할 때 '스미마셍'을 연발하지? 우리 같으면 촛불집회가 몇 번은 열렸을 텐데, 왜 그들은 참고 사는 걸까? 같은 의문에 대한 답으로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먼저 작성했던 글은 아래에 링크해두었으니 참고해주세요. ;-)  




계층적 위계질서 (Hierarchy)


베네딕트가 분석한 바로, 일본인의 Mentality에서 '계층적 위계질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베네딕트는 이를 '카스트'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계층에서 정점에 있는 사무라이(일본 역시 '士農工商'의 계층으로 이루어지는데, 우리와 달리 士는 선비가 아니라 사무라이다)는 일본 근대 역사(현재에 이르기까지)에 있어 중요한 위치에서 내려온 적이 없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은 기본적으로 士와 商의 연합체로, 이는 지금까지 이어집니다. (정치, 경제적 세습 형태로) 


사무라이를 그린 우키요에.
정치, 종교, 군대, 산업에서도 각각의 영역별로 신중하게 계층적 위계질서가 세워져 있으며, 상급자든 하급자든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의 범위를 넘어서면 반드시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알맞은 자리’가 유지되는 한, 일본인은 별 불만이나 저항 없이 살아간다.

국화와 칼 | 루스 베네딕트


 '알맞은 자리'에 대한 인식은 각 개인뿐 아니라, 세계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일본이 대동아, 더 나아가 세계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해서 그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이 침략의 당위성을 만들고, 죄의식을 없애게 됩니다. 이 프레임으로 보면 왜 천황의 항복 선언 이후 일본인들이 미국에 순종적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되죠. 그들은 자신들에게 알맞은 '위치'를 다시 잡은 겁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건, '사농공상'의 Hierarchy가 존재한 건 우리도 마찬가지인데 왜 일본이 특히 '위치'에 대한 인식이 강한 걸까요? 베네딕트의 분석이 틀리지 않다는 전제로 개인적인 의견을 보탠다면, 아마도 우리는 두 번의 '비극'이 이러한 위계를 파괴했을 것 같다. 첫째는 '식민 지배'이고, 둘째는 '한국 전쟁'입니다. 


식민지배를 통해 우리 민족 모두가 피지배 계급으로 내몰렸고 (일부 친일파를 제외하고), 한국 전쟁을 통해 각 지역 안에 남아 있던 일부 계급의식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또한 1960년 대 이후 '하면 된다'는 각하의 영도 하에 모두 진격을 해야 했기에 '나에게 맞는 위치'라는 소극적 스탠스는 자연스레 약화되지 않았을까요?


덧) 일본과 우리나라 역사에서의 '士'는 각기 다른 의미지만, 일본의 사(士)는 식민 시대와 개발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만주 모던'에 대한 리뷰를 올리면서 한번 적어볼까 합니다.




기무(義務)와 기리(義理), 온(恩)과 하지(恥)..


책 전체를 요약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니, 위의 용어들을 하나씩 정리할 것은 아니지만.. 우리말로 옮겨 놓고 보면 그닥 어렵지 않은 이 단어들(의무, 의리, 은혜 '은', 부끄러울 '치')에 대한 의미 설명은 이 책에서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베네딕트는 이러한 의식의 기반에, 일본인(그리고 동양인)들의 '채무감'이 있다고 봅니다.


날마다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는 가운데 그는 현재에 대해서도 계속 빚을 지게 마련이다. 인간의 일상적인 결정과 행동은 이런 채무감에서 나오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동양적 행동 양식의 근본적인 출발점이다.

국화와 칼 | 루스 베네딕트


이 '온'(은혜)을 입으면 일본인은 감사함을 넘어 불편함을 느낍니다. '온'을 입었는데 내가 (아직) 갚질 못했으니 또 얼마나 미안합니까? 그렇게 때문에 남에게 '온'을 베풀 때에도 조심스럽게 되죠.


일본의 거리에서 무슨 사고가 일어났을 때 거기에 모인 군중이 수수방관하는 것은 단지 자발성이 결여되어서가 아니다, 이는 경찰이 아닌 사사로운 사람이 제멋대로 참견을 하면 그 행위가 당사자에게 온을 입히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국화와 칼 | 루스 베네딕트


이러한 '온'에 보답하는 것을 '온가에시おんがえし(恩返し)'라고 하는데, 어설프게 베푼 '온'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아래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알 수 있죠 (원제가 '네코노 온가에시'입니다) 우리나라의 은혜 갚은 제비가 떠오르긴 하지만, 그냥 화끈하게 '현물' 쏴주는 제비와는 느낌이 또 다릅니다. 



이러한 '채무감'에 기반해서, '온'과 '위치'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기무'와 '기리'에 대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아울러 '기무'와 '기리'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도 소개하고 있는 '추신구라'를 보면 도움이 됩니다. 일본에서는 수없이 리메이크되는 고전인데, 거의 우니라나 춘향전 수준이 아닐까 싶은.. 쇼군에 대한 '기무'와 주군에 대한 '기리' 사이에 갈등하는 사무라이들의 이야기죠. 최근에도 드라마로 제작된 것이 Watcha에 올라와 있으니 이용권이 있으신 분은 감상해 보세요...





<국화와 칼>에 대한 불편함..


이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이 느껴져서 중간중간 집중도가 좀 떨어지는 면이 있습니다. 일본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우리가 그런데, 일본인은 더하지 않았을까요? (단지 일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의 영어판보다 일본어판이 더 많이 팔렸다는 겁니다. (영어판은 35만 부 이상이, 일본어판은 230만 부 이상이 팔린 롱셀러다 - 문예출판사 번역본 주석 중) 


이에 대해 러미스(Dougles Lummis)는 일본인에게 <국화와 칼>은 왜 '우리(일본)'가 졌는가? 앞으로 우리는 어떤 가치를 가져야 하나를 알려준 일종의 가이드가 되었다고 분석합니다. 그 가이드란 바로 미국을 더 많이 따르고 닮아가야 하는 것을 의미하죠. 


러미스는 베네딕트가 일본 문화에 대해 가져다준 것은 사실상 국가 이데올로기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중략) 러미스는 아예 베네딕트가 고의적이고 의식적으로 국가 이데올로기를 선택했으며, 정보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마치 국가 이데올로기가 과학적 자료인 양 묘사했다고 주장한다. <국화와 칼>은 미국식 생활 방식을 기준 삼아 미국인이 일본인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내세우는 프로파간다일 뿐이라는 것이다.

문예출판사 <국화와 칼> 주석 중


지금의 현실을 보면, 러미스의 분석대로 일본은 철저히 미국을 추종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맞는 듯 하지만.. 그것이 일본의 영악한 전략인지, 아니면 러미스의 말처럼 베네딕트에 선동당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국화와 칼>은 책 자체로도 의미가 있겠지만, 여러 비판적 요소들을 함께 갖추고 있는 책이므로 가급적 주석에 충실한 책(개인적으론 문예출판사 판을 읽었는데,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리디 셀렉트에 있어서..)을 선택하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물론, 방대한 주석과 함께 읽는다면 읽기에는 심히 짜증 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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