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잡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프로 Jan 14. 2021

더티 댄싱, 설레임,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Oldies But Goodies 1. Be My Baby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대학 1학년 때였다. 고등학교 때까진 영화는 주말에 비디오를 빌려서 주로 어머니와 함께 보거나, 혼자 종로 극장에 가서 보곤 했었는데.. 딱히 왕따라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친구들하고 어울려 다니는 걸 그닥 좋아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진정한 정신 승리인가?)


그렇게 대학 입학 전에는 주로 혼자 노는 걸 좋아하던 내가, 대학생이 되곤 무슨 바람이 났는지 낮에는 강의 땡땡이치고, 밤에는 매일 같이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아마도 당시 집에 안 들어간 날이 들어간 날보다 많지 않을까 싶은데.. 그러다 어느 날, 친구와 영화 얘기를 하다 비장한 선언을 했다. (물론 술김에)


대학 와서 첫 영화는 절대 혼자서도, 남자와도 보지 않겠어!


이 약속이 지켜지는 건 꽤 지나서였는데.. 아마도 여름 방학 때였던 것 같다. 당시 에어컨도 없는 학교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아나운서부와 함께 복식호흡을 하던 난(당시 난 보도부의 수습기자였고, 나도 2학기가 되면 방송을 해야 했기에 방학 때 함께 연습을 하는 전통이 있었다) 트레이닝을 해주던 여자 선배에게 영화를 보여 달라 졸랐다..


성공했느냐고? 물론 성공했다.

그 영화가 더티 댄싱이냐면.. 그건 아니다. (참고로 더티 댄싱은 1988년 개봉작이다)


광고가 동시개봉작 같은 느낌이다. 88년 1월이면 5공화국 말기.


더티 댄싱을 보게 된 건, 좀 더 뒤에.. 역시 그때 친해진 아나운서부의 여자 동기와 함께였다.


중학교 때부터 은근 활자중독(특히 신문)이었던 나는, 스포츠신문까지 구독해서 봤던 탓에 웬만한 연예, 문화 관련 소식은 빠삭했고.. 나름 잡은 캐릭터가 '레밍턴 스틸'의 피어스 브로스넌이라, 연예인이나 영화 얘기가 나오면 개봉연도까지 읊어대는 버릇이 있었다.


그 동기가 물었다. 혹시 더티 댄싱도 봤느냐고..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며,


음.. 본 적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도 아닌 데다..

저 광고를 보면, 집 말고는 비디오를 볼 일이 없는 내가.. 어머니와 보기엔 좀 난감할 것 같았으니까..


내가 보여줄게, 같이 갈래?


갑자기 훅! 들어오는 친구의 제안에 멈칫했지만,, 뭐 안될 것도 없으니까.. 주말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언제나처럼, 종로에서..


사실 종로의 '어디서' 영화를 보느냐고는 묻지 않았다. 무슨 계획이 있겠지.. 싶었으니깐..

그리고 그날 난 '비디오방'이란 곳을 처음 가봤다.


무언가 어둑어둑 침침하고, 노래방과는 또 다른 느낌이랄까? 구체적인 건 떠오르지 않지만.. 여기 두루마리 휴지는 왜?라는 이질적인 느낌과, 딱 붙어서 눕듯이 보는 의자가 어색했던 것만은 생생하다. (요새는 아마 비디오방이 다 없어졌겠지..?)


지금 생각하면 둘 다 지나치게 순진한 건지.. 아님 바보 같은 건지..

영화 보는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엄청 집중(!)해서 봤던 것 같다. (영화 보러 가서 당연한 거지..)


집중해서 본 것치곤.. 영화 내용은 가물가물 기억이 나질 않지만,

더티 댄싱의 OST 만큼은 그날 이후로 거의 매일 같이 들었다.

방송국 특성상 엄청나게 많은 LP (당시엔 다 LP)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그중 내 맘대로 OST 넘버 1위는..


Be My Baby - The Ronettes.
이렇게 보니 약간 심령 사진 같기도 하지만 라이브의 한 장면이다.


그 친구는 당연하게도 ‘(I've had) The time of my life’를 좋아했지만, 난 이 곡이 좋았다.

가끔 어디선가 이 곡을 듣게 되면, 대학 때의 친구들, 마로니에 공원, 혼자 음악 듣던 선곡실의 햇살이 떠오른다.


이젠 문자로 경조사를 더 자주 접하는 사이들이 됐지만..  


P.S.. 그 후로 난 비디오방을 다시 가지 않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