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을 바라보시는 할머니의 병문안을 다녀왔다. 입원해 계신지는 어언 삼 주. 모레 퇴원하시지만, 요양 병원으로 이송되셔야 하는 상황이다. 그토록 집에 가기를 원하시지만 매 순간 할머니를 지켜봐 주실 전문 인력의 간호가 필요하다.
“도대체가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무슨 계절인지도 모르겠다,” 하시며 저물어 가는 당신의 삶을 한탄하시던 할머니. 병원에서 온종일 병시중을 받으니 갓난쟁이로 퇴보한 것만 같다며 한숨을 푹 쉬셨다. 오늘의 날짜와 계절의 변화, 바깥세상의 화젯거리를 이야기하며 시간의 흐름을 바특이 잡으실 수 있도록 해드렸다.
얼마간 비워졌던 할머니 댁을 정리할 겸 들렀다. 내가 할머니의 허리께 올 정도로 자그맣던 시절부터 거실을 지키던 화분들이 가을 낮의 강한 햇살을 받으며 서 있었다. 언제나 촉촉이 수분을 머금고 있던 겉흙이 쩍쩍 말라 있었다. 탐스럽던 이파리도 제힘을 잃은 채 축축 늘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씁쓸한 마음을 달래며 화분마다 한 컵 한 컵 소중히 물을 따라주었다. 그 와중에도 기특하게 꽃을 피운 이름 모를 화초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 누우면, 검은 배경에 빨간 조명이 번뜩이는 전자 벽시계의 빛이 방안을 밝히고, 달빛이 불투명한 창에 내려앉아 수리검 같은 별 모양을 그리던 밤들이 있었다. 의식이 꿈나라로 넘어가려는 찰나에 멀리서 들려오는 밤의 지하철 소리와 풀벌레 소리는 할머니가 불러주시던 옛 동요의 가락에 어우러져 근사한 자장가가 되어주었다. 지금은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 가로막은 밤하늘에 마중 나온 달님과 인사를 하고 포근히 잠이 들면 무서울 것이 없었던 날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땅과 꽤 가깝게 닿아 있는 초승달을 만났다. 지난날이 소멸한 것만 같은 심란함을 안고 오는 길목에 새로운 주기를 맞이하는 손톱 같은 달이 격려의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나의 모든 앞날이 먹색으로 칠해진 듯 슬픔에 잠길 필요는 없다고. 달의 뒷면이 태양 빛을 받아 우리네 시야에서 잠시 숨게 되지만, 다시금 차오르는 달빛은 또 다른 순환을 거쳐 우리를 밝게 비춰준다.
삶의 달빛은 수많은 보름과 삭일을 맞았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을 안다. 오늘의 칠흑 같은 밤을 지나고 내일의 초승달을 만나기 위해서, 담담히 나아갈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