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울 정도로 생각할 시간이 많아진 요즘이다. 시간에 쫓기듯 대학 생활을 하고, 어느덧 3학년을 끝마친 졸업반 휴학생이 되었다.
열일곱 살의 8월, 가장 무덥고 습한 시기의 홍콩을 방문해 어떤 일이 있어도 이곳의 대학만은 지원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더랬다. 가을과 겨울 새 태어나서인지, 여름이 무척이나 괴로운 나로서 아열대 지방인 홍콩은 도저히 매력적인 인상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고작 2년 뒤 한창 입시를 준비할 무렵 그곳의 다채로운 문화와 학교의 특성을 고려하여 홍콩에 소재한 대학에 가기로 마음을 먹고, 이듬해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예상보다 홍콩의 공기는 달콤하고 선선했으며, 다년간 입시 지옥에 시달려 잔뜩 예민해진 나에게 그곳의 친구들은 과분할 정도로 유쾌하고 다정다감했다. 비록 중학생 때부터 한결같이 바라본 신문방송학이 적성에 맞는지 의문을 품게 되는 시기였지만, 그만큼 나에 대한 이해도가 점점 쌓여 보람찬 3년을 보냈다. 사건을 기반으로 빠른 호흡의 기사 글을 척척 써내는 것보다 느리더라도 주어진 대상을 천천히 곱씹으며 나의 주관을 반영하는 편이 더욱 편안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신문방송과 함께 미술사를 복수로 전공하게 된 계기도 어찌 보면 사소한 것이었다. 중2병보다 무섭다는 대2병에 시달리며 무력감과 공허함에 시달리던 2학년 1학기, 전공 외의 학점을 채우려 서양미술사 개론 수업을 신청했다. 120명가량의 학생이 듣는 큰 강의였으나, 여느 대 강의처럼 요점만 짚고 넘어가려는 딱딱한 시간이 아닌 졸고 있는 학생들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시려 마음을 다해 수업하시는 교수님의 열정을 느끼며 때아닌 위로를 받았다. 유아용 그림책에 등장할법한 연세 지긋하신 할아버지 교수님이셨으나, 한껏 신이 나서 미술 작품과 그에 얽힌 역사를 설명하시는 모습은 연예인을 선망하는 십 대 소녀의 모습과 닮아 보여 웃음이 나기도 했다. 처음에는 내용과 관계없이 머릿속에 입력하기 바빴던 미술사 이야기가, 점점 지치는 타국살이에 위안이 되는 옛이야기가 되었다. 본래의 전공 수업보다 미술사 과목들의 학점이 월등하게 높게 나와 헛웃음이 나기도 했다.
공부하는 시간 사이사이를 채우는 모든 공백이 너무나도 공허하게 느껴져 내 역량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양의 업무와 강의로 채워 넣기도 했다. 과제용 영상을 촬영하러 가는 길에 촬영 장비의 무게와 그 위에 얹힌 피로의 무게로 인해 잠시간 식당 한복판에서 기절한 날도 있었다. 식당 안은 배를 채우려는 손님으로 가득했으나 단 한 명도 나를 일으켜 세워주지 않아 온 정신을 모아 힘겹게 눈을 떴던 기억이다. 규칙적인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 전혀 단단하지 않은 몸을 불사르며 바삐 지낸 한 학기는, 내게 휴식의 중요성을 체감할 수 있게 한 시간이었다.
다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홍콩에서의 마지막 학기는 예측불허의 것이었다. 작년 9월, 야심 차게 공부할 계획을 세워놓고 가장 흥미로워 보이는 강의들을 수강하던 첫 한 달은 내게 길고 강한 위염과 장염을 안겨주었다. 네 시간 남짓 대기하여 만난 대학병원 의사의 진단은 구토를 동반한 신경성 두통과 위장염이었다. 일반 감기약보다 몇 배는 효과가 강한 약들을 한가득 품에 안고 돌아온 나를 기다린 것은 분노에 휩싸인 홍콩의 시위대와 경찰들이었다. 학생들은 학교로부터 기숙사 내에 은신하기를 권고받았고, 결국 학기는 끝을 맺지 못한 채 온라인 강의로 전환되었다. 예정보다 한 달 일찍 귀국하여 가을 날씨의 캠퍼스가 아닌 한겨울의 카페에서 학기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파리로 교환 프로그램을 다녀오고 시작된 새로운 학기가 끝나가는 지금 나는 원래대로라면 홍콩의 교정을 누비고 있을 터이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수많은 상황으로 두 학기 쉬어가는 시간을 가지기로 정했다. 어쩌면 올해의 신입생들이 학교를 구경도 못 해본 채 입학했듯 나 역시 다시 돌아갈 곳 없이 대학 생활을 마무리하게 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지극히 평범했고 소소했던, 때로는 격렬히 괴로웠고 기쁘기도 했던 시간의 조각들 하나하나가 모여 소중하게 추억될 내 삶의 단편이 되기를 바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