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무렵 필리핀의 한인 하숙집 막내로 지낸 여력이 있다. 나보다 머리통이 최소 두 개씩은 더 높았던 중고등 학생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애정을 빙자한 놀림을 당해 무척 괴로웠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은 열대 과일 리치를 다 같이 모여 먹고 있는데, 10살 이하로는 리치를 먹으면 몽유병에 걸려 창문으로 뛰어내리게 된다며 내 손에 있던 것을 빼앗아갔다. 집에서 물건이 없어지면 죄다 내 탓으로 돌아갔으며, 있지도 않은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놨다며 거짓 증거를 이유 삼아 나를 나무라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형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강한 자에게 만만해 보이지 않고자 하는 의지가 생겼다.
또래보다 체구가 작은 편에 속했던 아이로서 고안해 낸 ‘만만해 보이지 않는 법’은 원래도 적었던 말수를 더 줄이는 것, 그리고 무표정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 무표정은 단순히 안면 근육에 힘을 빼는 것이 아니라 눈을 한껏 부릅뜸으로써 완성되었다. 눈이 아프도록 힘을 주고 짧은 다리를 보완하는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걷다 보면 마치 내가 그 거리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건 학원으로 오르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듣게 된 몇 학년 위 학생들의 수군거림이었다. “쟤 눈에서 불날 것 같아,”라며 키득대는 소리. 그날을 기점으로 화가 난 듯 강렬한 인상이 우스워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다음으로 선택한 방법은 최대한 염세적인 인상을 주는 것이었다. 만사에 무심한 듯 시큰둥하게 행동해 주변 사람들을 당혹게 하는 것. 당시 유행하던 ‘시크’한 이미지를 고수하려고 했다. 고작 초등학교 5학년 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매사에 못마땅한 꼬마 정도로 보였을 것이 빤하지만 그때 나는 내 자아가 강인함으로 가득하다 굳게 믿었었다. 소위 말하는 ‘쿨병’에 단단히 걸렸던 것 같다.
동네 학원 상가 앞을 지나다 퉁퉁 부은 얼굴을 한 초등학생을 마주쳤다. 건물 입구를 떡하니 가로막은 채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그 시절 내 모습이 떠올랐다. 본인만의 강함을 다지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쿨병에 시달리던 내 모습과 겹쳐 보여 설핏 웃음이 났다.
10년도 더 지난 지금 그때의 내가 장착하고 싶었던 것이 부드러운 카리스마임을 안다. 오로지 경험과 연륜을 통해 갈고닦을 수 있는 종류의 아우라. 그저 어른들의 기를 냅다 꺾어버리겠다는 어린아이의 오기만으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것. 험난한 이 세계를 살아가며, 그런 부드러운 힘을 가짐과 동시에 아이들의 오기를 발동시키지 않는 따뜻하고 편안한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