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찾아뵌 외할머니댁이 적막했다. 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왕왕 짖으며 반겨 주던—적어도 나는 반겨 준다고 믿고 싶었다—시츄 다롱이가 보이지 않았다. 이모께 여쭤보니 나이가 많이 들어 최근에는 방에 들어가 내리 잠만 잔다고 하셨다. 올해로 열여덟 살이 된 다롱이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의 어린이날 이모와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들어간 동물 병원에서 데려왔다. 포도알 눈동자가 빛나는 보송보송한 갈색과 흰색의 털 뭉치가 꼬물대는 모습이 귀여웠나 보다.
다롱이는 사람들의 말을 곧잘 알아들었고,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시던 이모가 크게 노래를 부르시면 그에 맞춰 멋진 하울링을 들려줬다. 입맛은 어찌나 까다로운지 유통 과정이 한우보다 긴 호주산 쇠고기를 주면 쳐다보지도 않고 휑 가버렸다. 이는 다른 식구들 몰래 맛있는 음식을 입에 물려주시는 외할아버지의 탓이었다. 현재는 거동이 불편하신 할아버지께서 내가 어릴 적 사탕을 사주시려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거닐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알록달록 사탕이 가득한 유리병은 근심 없던 그 어느 날을 닮아 있어 문득 생각날 때마다 서글픔이 차올랐다.
1년 만에 본 다롱이는 굉장한 노견이라 쇼크사의 우려가 있어 동물 병원에서도 미용을 거부해 얼굴이 털로 뒤덮여있었다. 제 기능을 점점 잃어 가는 눈동자는 파랗고 흐리멍덩했다. 전에 없던 부산스러움이 더해져 제 삶의 반 이상을 살아 온 집안 곳곳의 냄새를 맡으며 시력이 아닌 감각들로 공간을 익히려는 듯 보였다. 난데없이 활발해진 움직임이 안쓰러워 마음이 심란해졌다.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부터 반려동물은 내 옆을 항상 지켜주곤 했다. ‘오즈의 마법사’를 읽고 데려왔던 요크셔테리어 ‘토토’, 몸이 약하게 태어나 입양해온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무지개다리를 건넌 아기 스피츠 ‘코코’, 늘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커피 빛 치와와 ‘단비’, 지금까지 든든히 내 옆을 지키며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한 몰티즈 ‘호두’, 한 성격 자랑하며 호두의 기를 죽이다 친척분께 입양된 또 다른 몰티즈 ‘콩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집에 와준 새침한 흰둥이 ‘앵두’. 한 손에 꼽을 수도 없는 강아지 식구들과 임시 보호를 위해 맡았던 고양이들, 잠시 머물다 간 파충류와 어류 친구들까지. 동물들에 둘러싸이다시피 자란 내가 그들을 유년 시절과 연관 지어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눈물이 날 만큼 소중하고 순수한 존재들. 친구들은 나를 보고 동물들한테만 호의적이라며 놀리곤 했다.
노쇠한 다롱이의 모습은 그런 내 어린 시절이 끝나 감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 한쪽에 회색 물이 들었다. 구김 없이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유년기라고 하면 거짓이겠지만 충분히 맑고 싱그럽게 빛났던 그 시절은 돌이킬 수 없다. 할머니의 머리카락이 새까맣던, 엄마 아빠의 얼굴이 판판했던 그때, 나는 많은 것을 알지 못해 순수할 수 있었고 많은 것을 사랑할 수 있었다. 손에 쥐고 태어났던 나의 세상이 하나둘씩 시들고 무너져 가는 것을 느끼며 쫓기듯 다음 세상으로 넘어가는 요즘. 꽃다울 나이라지만 원래의 세계가 사라진 곳에 홀로 남겨져 피우는 청춘이란 이름의 꽃은 나에게 버겁기만 하다.
필사적으로 이별의 기분을 막아내려 화분들을 두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물을 주면 주는 대로 쑥쑥 새잎을 뻗어내는 식물들을. 양가의 할머니들 댁에 가면 거실에 죽 놓인 화분들은 내 마음과 같은 마음에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이른 걱정일지도 모르겠지만, 다롱이를 비롯한 나의 동물 식구들이 조금 더 오래 세상을 보고 느끼다 보다 먼 미래에 인사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밤하늘 보름달처럼 둥글고 밝은 삶을 나와 함께 좀 더 오래 머물다 가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