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

감정어 사전 2

by 트레드밀

동정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손을 내미는 선한 마음으로 여겨지지만, '동정'이라는 감정이 발화되어 상대에게 닿을 때, 그 온도는 가끔 불쾌할 정도로 뜨겁거나 혹은 비굴할 정도로 차갑다. 동정이 그렇게 무례하다.


30대에 불의의 사고로 반신불수가 되어 휠체어를 이용하는 이의 경험담을 들었다. 어느 날 그가 탄 택시에서 기사 아저씨는 어쩌다 장애를 갖게 됐냐 물어왔고, 사연을 듣고는 "아이고, 젊은 사람이 어째... 나는 그렇게 되면 아마 못 살 거야."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나름 재밌게 지내고 있어요. 그래도 살만하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내내 택시기사의 말이 걸렸다. 젊은 손님의 처지가 안타까워서 던진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나는 너와 같지 않아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의 표현이다. 상대에게 공감하지 않았고 자신의 다행스러운 처지에 대해 안도였다. 내 솔직한 느낌은 무의식적인 우월감의 표현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상대의 삶을 '살 가치가 없는 것'으로 함부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한 번 더 비틀어보면, 동정을 보내는 이가 상대를 바라보기 전 자기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느냐의 표현이기도 하다.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대개 자기 자신의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에 닿아있다. 우리는 살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결핍과 실패 앞에서 스스로를 가엽게 여기는 습관 쌓는다. 내 삶이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클수록, 작은 흠집에도 "왜 이리 나는 운이 없을까?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길까"라며 스스로를 ‘불행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자신을 무력한 희생자로 바라보는 사람은 타인의 삶에서 불쌍한 요소를 찾아다. 내 삶의 결핍을 ‘불쌍한 것’으로 정의했기에, 비슷한 결핍을 가진 타인은 역시 불행의 주인공으로 투사한다. 예시와 같은 안타까운 상황을 직시한다면, 자신의 처지에 대한 안도감과 우월감마저 갖게 된다.


동정이 ‘같은 위치에서 바라보는 마음’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회복하려면, 먼저 나를 향한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 내 삶에 닥친 사고나 결핍을 ‘불행의 씨앗’이 아닌, 그저 ‘살아가며 마주하는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단단해진다. 삶의 사건들을 부정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이고 기꺼이 감수하는 용기가 있는 자가 된다. 그럴ㄸ· 비로소 휠체어를 탄 이에게 "나라면 못 살 거"라는 무례한 말 대신 "도와드릴 게 있으면 주저 말고 알려달라"는 평범한 선의를 베풀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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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同情)은 상대를 가엾게 여기는 시혜적인 마음이 아니다. 모두가 삶의 사건들로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살아내는 용기를 평등한 높이에서 응시하는 일이다. 스스로를 연민의 늪에서 건져 올릴 때, 타인을 향한 동정은 비로소 ‘불쌍함’이 아닌 ‘연대’라는 본래의 이름을 되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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