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감정어 사전 1, 기대는 긍정어 일까?

by 트레드밀

'기대'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기다림]이다.

기대라는 단어가 가진 느낌은 뭔가 가슴이 부풀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지만, 곧이어 그 기대에 못 미칠까 하는 걱정, 두려움이 따라온다. 기대하면 불안이 따라온다.

그러면 기대는 나쁜 말일까?

나는 어쨌든 기대가 불편하다고 말하고 싶다.


내 아이는 똑똑하니 공부를 잘할 거고 좋은 대학에 갈 거야 같은 흔하지만 확정된 수치에 의해 빠르게 절망되는 기대가 있다. 그래서 큰 기대가 빠른 절망을 가져다준다는 건 대게 알고 있다. 의외로 너무 사소해서 기대를 가졌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일상적인 절망이 있다. 사소한 기대가 사소한 실망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반복되는 불화가 의외로 쉽게 개선될 수 있다.


결혼 초, 나는 내가 열심히 요리하고 아름답게 가꾼 식탁에 둘러앉은 화목한 가족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아름답게 정형화된 내 그림은 오래 꿈꿔온 만큼 확고해서 살짝만 어긋나도 그 부분에 반응했다. 이미 그림처럼 완벽하지 않은 미숙한 내 요리마저도 귀여워해 줄 따뜻한 배우자를 기대했던 내 이상은 입 짧은 냉정한 배우자와 함께하는 현실에 좌절됐다. 종종 섭섭했고 그날은 왠지 그 음식이 아니라며 마지못해 라면을 끓이기라도 하면 며칠을 냉랭하게 보내기도 했다. 사실 십수 년이 지나니 이렇게 덤덤히 말하고 있지만 야속하고 차가운 사람에게 속아 결혼했다며 억울해 했었다.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그날은 왠지 먹기 싫은 그 음식을 먹어준 것은 분명 배려였고 마음에 들지 않는 요리를 나무라지 않은 건 호의였다. 그럼에도 배를 채워야 했으니 라면을 끓여 먹는 합리적인 선택을 했을 뿐이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내가 상대의 '감정'에 서운해하고 있다는 것을.....

(그의 감정은 내가 어쩔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자신도 어쩔 수 없다.)

그때의 그도 몰랐다. 상대가 준비한 음식을 내키지 않아도 기꺼이 먹어주는 게 살면서 얼마나 별거 아닌 일인지....

(먹는 게 삶의 즐거움인 시절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잘 될 거라는 기대를 안고 살아간다. 내가 정성들여 음식을 하면 맛있을 거고, 같이 먹는 이들이 감탄하며 나를 추켜세우고, 나는 기분이 좋아지고, 식탁은 행복하고, 우리 집은 화목해질 것이다. 현실은 (신혼을 벗어난 이후에도 ) 내가 썩 괜찮은 음식을 했음에도 구성원들은 먹는 음식이니 당연히 먹을만해야 하는 게 기본값이니 조용히 먹을 뿐이다. 기대를 하지 않아 구성원들의 반응이 익숙해져도, 때로 나의 수고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다. 그럴때면 그만큼만 요구하면 된다. 맛이 있느냐 없느냐 물으면 평가를 하게 되니 정확히 나의 수고에 대한 보상을 요구한다.

나 이거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이럴 때 내가 줄 거야 쓰는 방법은 과장해서 이마의 땀을 닦는 시늉을 한다) 그럼 가족들은 웃으며 고맙다 맛있다고 해준다.

잠깐 웃을 수 있으니 따뜻한 식탁에 대한 내 욕구는 충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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