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구

감정어 사전 4

by 트레드밀

수용의 반대편에는 요구가 있다. 대치점이라기보다 인과관계에 가깝다.

정작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수용될 수 있는 요구를 올바르게 말하지 못해 필요 없는 것을 잘못 받거나 필요한 것을 받지 못해 마음 졸인다.


요구는 부당한 떼쓰기가 아니다.

지난 글에 판단하지 않고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이번글에서는 요구하는 쪽에서 더 잘 요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요구를 망설이는 이유는 거절당할까 봐도 있지만 이런 것까지 말로 해야 하나 싶거나, 결핍으로 비칠까 하는 불필요한 자존심의 작동이다. 또는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드러내기 어려워서인 경우도 있다.

건강하게 요구하고 다정하게 받아들이는 이상적인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들어봐야 한다. 때로 거절당한다고 해서 자존심이 상할일도 아니고 상처받을 일도 아니다.


최근 SNS에서 한 사례를 보았다.

A지역에서 사는 남녀가 소개팅을 했는데, 퇴근시간이 이른 여자가 남자의 회사 근처인 B지역으로 찾아가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첫 만남은 호감이었고 남자는 여자에게 어떻게 가느냐고 물었다.

여자는 지하철을 타고 간다고 했고, 남자는 자신은 차를 가져왔으니 안녕히 가시라고 했다.

여자는 혼자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조심히 가라는 남자의 문자를 받고 더 화가 났다.

그 일이 아니라면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댓글엔 같은 지역에 살면 당연히 태워다 줘야지. 눈치 없는 남자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남자가 첫 만남에서 다소 사적인 공간인 자신의 차에 타자고 하는 게 실례가 아닐까 싶어 여자에게 어떻게 가실 거냐고 물었고 여자가 지하철을 타겠다고 해서 기꺼이 그러라고 한거일 수도 있지 않나?

어떻게 갈 거냐고 물었을 때

같은 방향인데 태워주세요.라고 말하면 안 되나?

같이 가자고 말 못 한 남자는 눈치가 없고, 같이 가자고 말 못 한 여자는 한없이 조심스러운 건가?


눈치게임을 멈추자

좋은 관계를 원한다면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서 읽어주길 바라는 '눈치 게임'을 멈춰야 한다. 눈치를 요구하는 상사도 피곤한데 연애는 좀 즐거워야 되지 않겠나. 좋은 사람인 거 같은데 내가 원하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고 상대를 비난하며 물러서지 말자. 돌려 말한 게 잘 안 통했다면 보다 솔직하게 다시 말하면 된다.

그런 상황이 익숙하지 않다면 미리 예상해 보고 표현의 기술을 익혀도 좋겠다.

여자가 지하철 타고 간다 했을 때 차를 가져왔다는 남자에게

그 차에 저 타면 큰일 나나요?라고 위트 있게 말하거나

A지역으로 바로 가시는 거 아니에요? 같은 방향인 테 저 태워주세요.

라고 말하는 게 그다지 이상한 게 아니다.

빠르고 효율적인 요구

적절한 요구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눈치채지 못했다고 상대를 비난하기 전에, 내가 먼저 잘 요구한게 확인한다. 사랑한다는 고백도 결혼하자는 말도 아닌데 뭘 긴장하고 기대하고 걱정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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