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어 사전 5
우리는 흔히 걱정을 사랑의 파편이라 착각한다.
냉정하게 말해 걱정은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정제되지 않은 '불안'의 전염이다.
현관을 나서는 어린이를 향한 어머니의 인사는 주로 "차 조심해라"이고 특히나 주의를 주고 싶을 땐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던가 나쁜 아이랑 어울리지 말라며 "사람 조심"을 강조한다. 성인이 된 후에도 바꾸지 않는다. 중요한 일을 부모에게 공유하면 "실수하지마라", "겸손해라"라는 우려로 가득하다. 어머니의 사례로 들었지만 사실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건 주로 아버지였다.
부모들은 그것을 '사랑 표현'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자녀의 입장에선 사랑의 온기 대신 서늘함이 감돌았다. 부모의 걱정 어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내가 안전하다는 느낌보다는, 세상이 온통 나를 해치려 기다리는 위험한 곳이라는 불안이 들었고 나 스스로가 온전하지 못한 이라고 여겨졌다. 더불어 결과가 흡족하지 않을 땐 부모님의 주의를 어겼다는 죄책감마저 들었다.
감정은 우주에 보내는 가장 솔직한 기도
영성가들은 '감정이 곧 기도'라 한다. 기도는 무릎을 꿇고 중얼거리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가 온몸으로 느끼는 '감정 상태' 그 자체가 우주, 혹은 신, 초월적 의식에 보내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라는 뜻이다. 완벽한 기도는 '이미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의 감정'에 몰입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상태가 이미 현실이라는 기쁨과 평온함을 미리 누릴 때, 그 에너지는 현실을 끌어당긴고 한다. 반대로 걱정은 비극을 향한 완벽한 기도다. 누군가를 걱정할 때면 우리는 그 사람이 실패하거나, 다치거나, 좌절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그리고 그 장면이 주는 불쾌한 감정에 빠져든다. 이것이 걱정이다. 이 불안의 에너지를 사랑의 대상에게 쏘아 보낸다고? 그것은 상대가 불행해지기를 바라는 '저주'와 본질적으로 한 끗 차이다. 사랑이라 착각하지 말자.
부모의 걱정이 내게 남긴 것
아버지가 나를 향해 쏟아냈던 그 수많은 걱정은 사실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 내면에 도사리고 있던 '삶에 대한 불신'과 '통제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공포'였다. 아버지는 자신의 불안을 견디지 못해 '걱정'이라는 외피를 입혀 나에게 그 감정을 전가했던 것이다. 내가 그 걱정 어린 말들을 애정으로 수용하려 애쓸수록, "나는 곧 실수할 사람", "세상은 나를 돕지 않는 곳"이라는 부정적인 암시가 되었다. 자신에 대한 신뢰가 쌓일 새도 없이 무너졌다
사랑한다면 '걱정' 대신 '신뢰'를 기도하라
당신이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이제 그를 향한 걱정의 말을 멈추어야 한다. 대신 그가 고난을 딛고 당당히 서 있는 모습, 그가 환하게 웃으며 성취를 만끽하는 모습을 먼저 상상하라. 그리고 그 상상이 주는 벅찬 감정에 먼저 젖어들어라. "네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라는 말 대신, "너의 내면에는 이 어려움을 이겨낼 충분한 힘이 있음을 믿는다"라는 에너지를 보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상대를 위한 진정한 기도이자 최고의 사랑 표현이다.
감정은 에너지다. 내가 불안이라는 감정에 빠져 걱정을 내뱉는 순간, 나는 걱정의 대상이 나아갈 길에 먹구름을 뿌리는 것과 같다. 반대로 내가 신뢰와 평온의 상태에서 상대를 바라보면, 나는 그의 앞길에 햇살을 비추는 존재가 될 것이다.
오늘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느끼는 그 감정은 무엇인가? 당신은 지금 그를 위해 어떤 기도를 하고 있는가? 완벽한 기도는 걱정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평온함 속에 머무는 것임을 기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