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reasureADD Jul 31. 2020

난 놈은 난데없이 생긴 놈이 아니다

한국 최고의 스포츠 스타가 탄생할 수 있었던 3가지 이유

한국엔 리오넬 메시나 마이클 조던과 비견되는 스포츠 스타가 있다. 세계적인 이 스포츠 슈퍼 스타는 누구일까? 손흥민 선수? 김연아 선수? 다름 아닌 그 주인공은 바로 리그 오브 레전드(LOL:롤)의 신 '페이커' 이상혁 선수이다.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냐면, 미국의 권위 있는 스포츠 잡지 ESPN에서 페이커 선수의 10페이지짜리 특집기사를 발행한 적이 있는데, 이 정도 대서특필은 페이커 선수를 메시, 르브론, 커쇼 같은 라인업에 들어간다는 반증이다.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지만 지구 상의 그를 아는 사람들의 숫자로만 비교해도 그는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스포츠 스타이다. 그가 가진 티켓파워나 세계적인 팬들의 규모만 봐도 'e-스포츠의 원탑 아이콘'이라는 수식어를 빼앗길 일은 앞으로 잘 없으리라 생각된다.

위 그래프는 페이커 선수의 데뷔 이후의 모든 프로리그 성적으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그래프는 노란색이다.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승률 100%에서 시작하며 꾸준히 7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프로 리그에서는 승률 1, 2퍼센트도 성적에 적지 않은 차이를 만든다는 걸 생각하면 그의 괴물스러움이 무섭기도 하다. 데뷔 첫 경기부터 당대 최강의 선수들을 압살 한 초신성은 8년이 지난 현재도 세계 최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런 엄청난 업적을 가진 페이커 선수 같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표현이 있다.

Outliers: 표본 바깥에 존재하는 거짓말 같은 존재.

아웃라이어란 세상을 바꾸는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표본 안의 '보통사람'들은 이런 '난 놈'들을 경외하면서도 시기 질투한다. 그래서인지 이런 난 놈들은 항상 연구 대상이었다. 그런 난 놈들을 연구한 결과를 집대성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지금부터 난 놈의 탄생을 꼼꼼하게 그린 '아웃라이어'를 통해 난 놈이 만들어지는 3가지 필수 조건을 알아보도록 하자.



0. 오해

우리의 통념 속엔 흔히 '난 놈 = 타고난 놈'이라는 오해가 있다. 하지만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회 실험이 있었다. 미국에서 초등학생 250,000명 중 IQ 135 이상의 아동 1,521명을 가려내어 1990년 후반까지 '날 놈'으로 점쳐진 아이들 집단의 학업, 결혼, 커리어 등을 낱낱이 기록하고 연구했다. 어린 나이에 IQ가 135가 넘는다는 것은 당연히 상당한 재능이다. 비율로만 따져도 상위 0.6%다. 그러나 날 놈이라 믿은 아이들 대부분은 최고의 엘리트가 되기는커녕 매우 평범한 직업인으로 자랐다. 고작 판사와 주 의회 의원 몇 명이 나왔을 뿐이다.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IQ가 낮아 날 놈 집단에 선별되지 못한 아이들 중 두 명이 노벨상을 수상했다. 즉, 큰 성공과 타고난 IQ는 그다지 상관이 없다. 물론 재능의 종류가 IQ만 있는 건 아니지만 상당히 범용성이 있는 재능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도 저런 결과를 보인다는 것은 타고난 재능과 성공 가능성의 상관관계가 낮다는 점을 분명하게 시사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경험적으로 재능을 부정할 수만은 없다는 걸 다들 느낀다. 두 지점을 타협해서 내린 결론은, 타고난 재능은 중요하지만 그걸로 충분하지는 않다.



1. 타이밍

어느 해외의 유소년 스포츠계에는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프로선수 지망생들은 1, 2월생 선수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별자리 운세나 사주팔자가 정말 맞는 것일까? 물론 별 상관없다. 유소년들은 나이 때별로, 그러니까 학년 단위로 묶여서 경쟁한다. 이런 환경에서 연습량과 재능이 비슷하다고 가정했을 때, 한창 신체와 뇌가 성장 중인 아이들의 경쟁에선 한 두 달 늦게 태어난 것은 패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 충분하다. 이런 경쟁이 계속 이어지다 보면 12월생은 매번 성적이 부진하고 주변의 인정도 못 받고 지원도 약해진다. 반대로 1월생은 정반대의 혜택을 얻는다. 이런 현상을 성경의 마태복음에서는 이렇게 정리한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런 현상을 저자 말콤은 '마태복음 효과'라고 이름 붙인다. (게임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인 '스노 볼링 효과'와 비슷한 개념이다.) 시작은 모두가 공평할지라도 초반에 만들어진 작은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설산 꼭대기에서 굴린 눈 뭉치처럼 어마어마하게 불어난다. 이는 엄청난 복리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애초에 시작 지점 조차 다르다면 이 복리효과의 격차를 해소하기란 너무나도 요원하다. 이런 태생의 시기적절함은 순전히 '운'의 문제다. 그리고 페이커의 삶에도 이 '운'적인 요소를 찾을 수 있다.


어느 e-스포츠 해설가가 프로게이머 진로를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이런 걱정 어린 조언을 했다. '고등학생 나이 때 선수들의 동물적 기민함을 성인 선수들이 쫓아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나이가 찬 친구들은 프로게이머로 서의 진로를 심사숙고했으면 한다.' 이 조언에 따르면, 페이커 선수의 데뷔는 참 시기적절하다. 페이커 선수는 18세의 나이에 프로게이머로 데뷔했다. 페이커 선수가 이때 데뷔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게임 경력을 살펴보면, 스타크래프트를 10살에 시작했고 워크래프트와 롤의 모태인 게임 '도타(카오스)'를 오랜 기간 플레이해서 aos장르(롤의 게임 장르)의 이해도가 높은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바로 롤의 한국 서버가 처음 오픈했고, 그렇게 롤을 처음 접한 16살 이상혁 군은 1년 만에 프로게이머 구단에 스카우트되고 데뷔하기까지 하게 된다. 청소년기에 직간접적인 연습을 하고 피지컬이 절정인 18세에 데뷔, 세상이 페이커 선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진다. 모르긴 몰라도 페이커 선수가 3년 일찍 태어났으면 스타크래프트 선수를 준비하다 리그가 신기루처럼 사라졌을 것이고, 3년 늦게 태어났다면 뛰어난 선수는 됐을지는 몰라도 지금과 같은 전설적인 선수는 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1월생이은 며칠 일찍 태어나면 12월생이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출생신고 며칠 차이가 비범한 삶과 평범한 삶을 가르기 충분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페이커 선수가 96년생인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프로게이머들의 격전지인 롤 프로리그에서는 1월 1일에 태어난 것과 같다. 물론 그의 성공이 모조리 운빨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수준의 재능을 가졌다는 말도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타이밍이 안 따라 줬다면 그는 재능을 펼칠 제대로 된 기회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2. 환경

그의 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재능이 씨앗이라면 그 재능이 뿌려지는 밭은 환경이다.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사막에 내던져 놓으면 말라비틀어질 게 뻔하다. 사실 그가 뿌려진 환경에 대해 긴말할 필요가 없긴 하다. 페이커 선수는 '한국'에서 태어났다. 'IT 강국'이나 거리거리마다 널린 PC방, 뜨거웠던 스타리그 등등 더 얘기해서 무엇하겠나. 하지만 PC방이 많아지고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에 대한 대중의 인식 같은 '결과'가 아닌, 프로리그가 흥행하고 PC방이 많은 상태로 꾸준히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페이커 선수의 데뷔 과정에는 상당히 리마커블 한 에피소드가 있다. 바로 그의 고등학생 시절 담임선생님께서 그의 재능을 알아보시고는 프로게이머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자퇴를 권유하셨다는 일화이다. 그런 권유를 받아들인 그의 아버지의 결정 또한 황당할 정도로 놀랍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그의 학군이나 성적이 궁금해진다. 이른바 '노는 학교'에서 하위권의 성적을 가진 학생이기 때문에 허락이 떨어진 게 아닐까? 그러나 페이커 선수는 서울시 마포고등학교라는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며, 전교권은 아니어도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착실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인문계 고등학교 중위권 성적만 되어도 부모님께 프로게이머를 하겠다고 하면 사-랑의 몽둥이가 화답으로 돌아오는 게 흔히 생각되는 전개인데 내가 아는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 맞나 싶을 정도로 놀랍기만 하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페이커 선수의 어려운 선택을 존중해준 소중한 분들은 그냥 생겨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페이커 선수가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던 PC방이라는 놀이터이자 산업 또한 우연스럽게 생겨나고 발전된 것이 아니다. 

PC방이 우리 생활 도처에 깔리게 된 역사는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타크래프트 1의 대흥행은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판 활성화의 계기가 됐고, e-스포츠 활성화는 스타크래프트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더욱 많아지게 하는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이 두 현상은 서로 선순환을 일으켜 게임 인구를 지속적으로 늘리는 직접적인 이유가 되었는데, 이때 발생하는 게임 인구를 수용할 PC방이 필요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와 PC방 산업 발전의 역사는 서로 땔 수 없는 관계이다. 이때의 스타리그의 위상은 임요환 선수의 명성을 통해 엿볼 수 있는데, 그 당시(2005년)의 인기의 척도는 다름 아닌 다음 팬카페의 회원 수였다고 한다. 여기서 임효환 선수는 당대 톱스타인 이효리, 버즈 등을 제치고 2위를 했다. (1위는 동방신기) SNS도 없던 시절에 케이블 채널에서 주로 하던 비주류 스포츠 리그가 메인스트림에서 밀어주는 인기가수들을 제쳤다는 점에서 그 인기를 간접적으로나마 체감할 수 있다. 페이커 선수의 담임선생님과 아버지는 그 뜨거웠던 시대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했던 세대이다. 이때의 경험들은 e-스포츠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꿔놓았고, 페이커 선수의 진로 결정을 지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페이커 선수가 1세대 프로게이머에 도전하려 했다면 어땠을까? 기성세대에게 프로게이머라는 직업 자체가 생소했다면, 모범적인 학생이었던 그는 프로게이머라는 진로 결정을 존중받을 수 있었을까? 전혀 없는 것과 극소량이라도 있는 것, 0과 1의 차이는 매우 크다. 페이커 선수의 탄생 이전에 e-스포츠 대중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낸 1세대 프로게이머들과 e-스포츠계에 헌신한 이들 덕분에 0이 아닌 '1'이라는 가능성이 생겨났다. 그의 담임선생님이나 아버지 두 분 모두 보통 분들은 아니었지만, 프로게이머로서의 진로와 산업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면 그런 길을 권유했을 리도 없고 허락을 받기는 더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페이커 선수가 운이 좋은 이유는 단순히 한국이 IT강국이라서가 아니다. PC방의 발달과 e-스포츠 리그의 활성화, 기성세대가 e-스포츠 문화의 영향을 받기까지 e-스포츠 불모지에서 페이커 선수라는 꽃이 필 수 있도록 산업을 일군 수많은 이들이 뿌리내린 찬란한 유산이 있은 덕분이다.



3. 노력

의야 한 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와 동년배이면서 비슷한 게임 경력을 가진 사람이 이 나라에 어디 한둘인가? 사실 이와 비슷한 조건을 가진 사람은 차고 넘친다. 이것이 재능의 차이일까? 말콤은 난 놈의 필수 조건으로 피나는 노력을 꼽으며 이에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실제로 빌 조이, 비틀스, 빌 게이츠 등 난 놈으로 거듭난 인물들은 1만 시간 정도를 들여 '분야의 탁월함'을 획득했으며, 이들처럼 최소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 투자해야 할 시간이 1만 시간 정도는 된다고 설명한다. 한 예로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재능을 인정받은 학생만이 입학할 수 있는 '베를린 음악 아카데미'에서 교수진은 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 그룹은 '엘리트'로 장래에 세계 수준의 솔로 주자가 될 수 있는 학생들이었다. 두 번째 그룹은 그냥 '잘한다'라는 평가를 받은 학생들이고, 세 번째 그룹은 프로급 연주를 해본 적이 없고 공립학교 음악 교사가 꿈인 학생들이었다. 세 그룹은 대부분 5살 전후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했고 청소년기에는 연습시간도 비슷했다. 하지만 엘리트로 분류된 학생들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연습시간이 늘어나며 20세가 되는 시점에는 총 1만 시간을 연습하게 된다. 반면 그냥 잘하는 학생은 8천 시간, 교사를 희망하는 학생은 4천 시간 정도를 연습했다. 이 학교에 입학했다는 것만으로 타고난 재능에 대한 검증은 어느 정도 끝났다. 하지만 그 이후의 연습시간이 '클래스'를 나눴고, 이는 그 어떠한 오해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큰 성공에 피나는 노력은 기본이다.


그렇다면 과연 페이커 선수는 이 1만 시간을 전부 채웠을까? 페이커 선수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은 카오스의 모든 캐릭터를 다 잘했다고 한다. 카오스는 80개의 캐릭터가 있고, 한 캐릭터를 잘 다루려면 넉넉잡아 캐릭터당 40판 정도 플레이했다고 가정하고, 평균 한 판에 40분이 소요된다고 가정했을 때, 그는 카오스에 2,133시간 정도를 투자했다고 볼 수 있다. 롤은 일반 게임을 500판 정도 플레이하고 랭크 게임으로 넘어갔다고 언급했으니 일반 게임을 500판에 한판당 40분으로 가정했다. 그리고 곧바로 랭크 게임으로 한국 서버 1등을 달성했다고 하는데, 보수 적으로 100판 만에 달성했다고 가정하고 한 판에 40분으로 잡았을 때, 각각 333시간, 53시간이 되고 셋을 모두 합하면 2,519시간이 된다. 아무리 넉넉잡고 스타크래프트나 워크래프트 경력을 모조리 포함해 공격적으로 계산해보려 해도 1만 시간엔 턱없이 부족하다. '1만 시간은 법칙'은 틀린 것일까?? 재능이 전부일까?

말콤은 그의 저서에서 한 가지 실수를 저질렀는데,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노력이란 개념을 지나치게 단순화했고, '노력의 양'을 너무나 강조한 반면 '노력의 질'을 무시하다시피 해버렸다. 이런 오류를 바로잡는 데 필요한 개념이 바로 '의식적 노력'이다. 게임뿐만 아니라 어느 방면에서건 발전이 더딘 사람은 '행위' 자체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10년을 출퇴근길만 운전한 사람이 1년 경력의 택시기사를 운전으로 이길 수 없는 이유이다. 실력이 빨리 늘고 싶을수록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셀프라도 피드백이 필요하다. 즉, 게임 실력이 늘고 싶으면 '게임 플레이'만 할 게 아니라 리플레이 영상을 보며 고쳐나가야 할 부분을 인지하고 적용하는 과정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골딱이 실딱이들(실력이 중간 정도라는 뜻)은 그런 게 없다. 그냥 한다. 그리고 그저 한다. 반면 페이커 선수는 인터뷰에서 본인이 내향적이고 경쟁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이러한 성미는 그가 순전히 '이기기 위한 플레이'에 대해 집요하게 골몰하도록 동기를 자극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성미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마추어 시절부터 체득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글로 보면 참 쉬운 내용이지만 순전히 즐기기 위해 시작한 가벼운 행위를 남성호르몬 범벅이 된 승부욕으로 가득찬 10대 남성의 두뇌로 이런 차분한 발상을 해내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즉, 다른 선수들과 비슷한 실력을 얻기까지 페이커 선수는 의식적 노력을 기울인 덕에 훨씬 적은 시간을 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그 과정은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받아들이고 고쳐가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필연적으로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농축된 덕에 그는 '철저히 이기기 위한 플레이'을 쟁취해냈다. 이 부분은 순전히 추측이지만, 페이커 선수가 쟁취한 부와 명예와는 정 반대되는 그의 소탈하고 겸손한 성격을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경쟁이 그렇듯 노력엔 '상대성'이라는 속성이 존재한다. 상대방이 1의 노력을 했고 내가 10의 노력을 했건, 2만큼만 노력했건 내가 이긴다는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담금질의 시간은 정확히 1만 시간이 아니다. 경쟁자를 이길 만큼만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면, 경쟁자보다 순도 높은 노력을 다했다면, 나는 이기게 되고 성공에 가까워진다. 경쟁 자체가 콘텐츠인 스포츠 판에서 이는 더더욱 두드러진다. 2020년 현재의 프로 롤 선수 중 게임에 1만 시간을 투자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페이커 선수가 데뷔한 7년 전은 다르다. 페이커 선수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한 선수는 별로 없었을 것이고, 페이커 선수보다 더 빨리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인 선수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다른 선수의 재능과 노력 또한 무시할 수 없지만, 시간으로 인해 실력의 큰 차이를 만들지 못하게 해 준 것은 '운'의 영역이다.


재능이 씨앗이고 환경이 밭이라면 노력은 농업기술이다. 밭을 갈기만 하면 싹을 제대로 못 틔우고, 거름만 주다간 씨앗이 썩어버린다. 밭이 아무리 좋아도 잡초를 방치하면 작물은 죽는다. 균형 잡힌 기술로 꾸준한 노력을 해야지만 씨앗은 결실을 맺는다. 기후까지 잘 맞아떨어져 준다면 풍년을 맞는다. 풍년은 하늘의 뜻이지만, 흉년은 자초하는 경우도 많다.



4. 결론

성공에 이르는 길은 복잡하고, 개인이 잡으려 한다고 잡히는 영역은 아니다. 특히 아웃라이어 급의 큰 성공의 영역이라면 더더욱이나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공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살아야 할까? 이번 생은 틀린 걸까? 금수저나 재능충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으랴만 애석하게도 환경이라는 운의 영역은 태어나는 순간 이미 결정된 영역이다. 그런데 성공의 세 가지 조건 타이밍, 환경, 노력 중 우리가 온전히 선택하고 집중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바로 '노력'이다. 노력만 잘해도 한 분야의 전문성을 획득해 먹고사는데 지장 없이 사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타이밍이라는 운은 시대가 변할 때마다 계속해서 온다. 제조산업에서 IT산업으로 패러다임이 바뀔 때 급성장한 네이버,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옮겨갈 때 기회를 잡은 카카오처럼 말이다. 노력을 지속한다는 것은 타이밍이라는 운에 당첨될 확률을 높이는 행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공하는 순간, 성공한 사람의 역사는 다시 씌워진다. 정확히 말하면, 성공이라는 맥락 앞에 그의 개인사는 철저히 분해되었다가 재조립된다. '그의 가정사는 몹시 어두워서 아무도 믿지 못했다.'가 아닌 '그는 가정사가 어두웠기 때문에 독립적인 성향을 구축할 수 있었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Connecting the dot'이란 말처럼 성공의 순간에 뒤돌아봤을 때만이 내가 걸어온 길이 유산이 깔린 길이였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 수 있다. 환경과 타이밍은 과거와 미래이다. 즉, ‘그 누구도 손쓸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나 노력은 현재이다. 충분히 손써볼 여지가 있다. 현재에 집중하면 과거를 재 정렬시키고 미래를 잡을 수 있다. 내가 느낀 난 놈의 탄생이 주는 교훈은 '현재에 충실하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살기로 했다.








참고

책 말콤 글레드웰 - <아웃라이어>

김성회의 G식백과 – 임요환 VS 페이커 https://www.youtube.com/watch?v=DsqU6cN_CMI&t=1s

이상혁(페이커) 나무위키 [https://namu.wiki/w/이상혁(프로게이머](https://namu.wiki/w/이상혁(프로게이머))

IQ 135 이상 천재 1500여 명의 평생을 추적했더니…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254288

페이커 인기 실감 https://www.fmkorea.com/best/2193475635

[FAKER] 페이커 연대기 : 세체미의 모든 것 https://www.op.gg/r/detail/48278/news

페이커 ESPN 특집 기사 번역입니다. https://redtea.kr/pb/pb.php?id=game&no=6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