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온 문장
황정은 작가_ <백의 그림자> 소설 중 발췌
은교 씨는 갈비탕 좋아하나요.
좋아해요.
그런가요
또 무엇을 좋아하나요.
이것저것 좋아하는데요.
어떤 것이요.
그냥 이것저것을.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 씨를요.
……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그렇게 되나요. – p.39
...... 슬럼이라느니, 라는 말을 들으니 뭔가 억울해지는 거예요. 차라리 그냥 가난하다면 모를까, 슬럼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치 않은 듯해서 생각을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라고 무재 씨는 말했다.
언제고 밀어 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 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지니까, 슬럼, 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런걸까요.
슬럼, 하고
슬럼.
슬럼.
슬럼.
이상하죠.
이상하기도 하고,
조금 무섭기도 하고, 라고 말해 두고서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기둥을 잘라 내기 직전까지 수십년간 숨겨져 있었던 나동의 외뵤깅 이제는 단락된 모습으로 판판하고도 밋밋하게 솟아 있었다. 벽이 본래 그런 형태라는 것이 새삼스러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동이 없어지더라도 나는 다동으로 가고 싶지 않아요. 라고 무재씨가 말했다.
가, 나, 다, 라, 이므로 다로 간다고 해도 다음이 어차피 라, 그리고 마, 까지 이어져서, 그다음엔 어떻게 될지. – p.115
사람이란 어느 조건을 가지고 어느 상황에서 살아가거느 어느 정도로 공허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인생에도 성질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본래 허망하니, 허망하다며 유난해질 것도 없지 않은가, 하면서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나는 물었다.
이를테면 뒷집에 홀로 사는 할머니가 종이 박스를 줍는 일로 먹고산다는 것은 애초부터 자연스러운 일일까, 하고.
무재 씨가 말했다.
살다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사정인 걸까, 하고 말이에요. 너무 숱한 것일 뿐. 그게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은 일이었다고 하며느 본래 허망하다고 하는 것보다 더욱 허망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 p.144
신형철 평론가_<백의 그림자>에 부치는 다섯 개의 주석 중 발췌
문학이 할 일 중 하나는 우리가 현실에 관해 생각하는 것을 방해하는, 자명함에 관한 그 잘못된 믿음을 해체하는 일이다. 이런 공간에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말 그대로 실감나게 하고, 나의 공간과 삶이 소위 현실이라고 하는 것과 분리돼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게 하는 일이다. 이 소설이 좋은 소설인 첫 번째 이유가 이것이다. 이 작가는 우리가 예외적인 곳이라 착각하기 쉬운 공간을 보편화하고 우리가 다 안다고 믿는 종류의 사람들을 낯설게 하는 방식으로, 현실이라는 말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진짜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 p.175
‘오래되어서 귀한 것을 오래되었다고 버리는(104쪽)’ 시대. 바로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것의 작찹한 실상이다. – p.177
인물들이 겪는 불행이 현실 안에서 현실적인 수단으로는 맞설 수조차 없는 종류의 것일 때, 소설가는 그 극한의 불행을 어떻게 소설화해야 하는가. 이것은 미학(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자세)의 문제다. 벤야민이 <이야기꾼과 소설가>에서 한 말을 조금 비틀어 말하자면,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매체를 통해 많은 불행들을 전해 듣지만 그 불행들은 상투적인 표현들로 이차 가공되면서 그 단독성을 상실하고 일종의 정보들로 추락하고 만다. 너무나 많은 불행이 있고 우리는 그 불행에 무뎌진다. 앞에서 소설가들은 현실이라는 개념의 자명성과 싸워야 한다고 말했는데, 같은 방식으로, 소설가는 ‘불행의 평범화’에 맞서서 ‘불행의 단독성’을 지켜 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때 환상이라는 장치가 하나의 방편이 될 것이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한 은행원을 벌레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의 불행이 여전히 기억되는 것처럼, 황정은이 <모자>에서 아버지를 모자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 불행은 일반성 속으로 소멸되지 않고 보존되었다. 이것은 그 무슨 발랄한 현실 일타리 아니라 세상의 모든 유일무이한 불행들에 대한 소설가의 예의다. – p.180
사랑이란 무엇인가. 연인의 가마 모양을 유심히 보면서(34쪽) 그를 유일무이한 단독자로 발견해 내는 일이고, 설사 내가 쇄골이 반듯한 사람을 좋아하더라도 쇄골이 반듯하지 않은 연인에게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39쪽)라고 말해 주면서 그 단독성을 대체 불가능한 것으로 절대화하는 일이다. 그리고 다시.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연인을 절망으로부터 지켜 내는 일이다. 그것은 연인이 무심코 “죽겠다.”라고 말할 때 “정말로 죽을 생각이 아니라면 아무렇게나 죽겠다고 말하지는 마요.”라고 말하는 일이고(12~13쪽), 정전이 되었을 때 제일 먼저 연인에게 전화를 걸어 이쪽도 역시 캄캄하다고, 나는 당신과 같은 어둠 속에 계속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는 일이며(90~91쪽), 잠을 못 자는 연인에게 밤 아홉 시에 달려가 함께 배드민턴을 치자고 말하는 일이다.(121쪽) – p.188
각주 중에서_
최근 어느 시인은 벨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를 지렛대 삼아 이렇게 적었다. “성년이란 말에는 움직임이 내포되어 있다. 움직여서 인간의 세계에 성공적으로 진입하여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하게 된 이들을 성년이라 부른다. ‘아직’ 그렇게 되지 못했으되 이제 그렇게 될 이들을 미성년이라 부른다. ‘이미’ 그렇게 되지 않은 이들은, 그러니 비성년이라 부르기로 하자. 미성년은 대기 중이고 비성년은 열외에 있다.”(신해욱<프롤로그 혹은 바틀바잉>._<현대문학> 2010년 3월호) –p.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