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이야기 01
나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진짜 대학을 가고 싶었는데 갈 수가 없었어. 등록금이 없었거든. 한 1년 일하면 등록금은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부산 사상에 있던 신발 공장에 갔지. 아버지 아는 사람이 소개해줘서 다행히 쉽게 들어갈 수 있었어. 결국 1년을 다 채우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신발을 만들고 있으면 나는 걸어 다니며 기록하는 일을 했어. 그 신발공장은 꽤 큰 기업이었거든. 그래서 신발 라인이 많았어. 그 라인마다 신발 완성품이 몇 켤레인지, 불량품은 얼마인지 기록을 해야 했어. 요즘은 모두 컴퓨터로 하겠지?
매 시간마다 신발 개수를 헤아려야 되니까, 신발 라인이 있는 층마다 오르내리면서 다녔어. 그 신발 라인이 실내에 있는 곳도 있고, 밖으로 나가서 다른 층에 있는 곳도 있었어. 가끔 밖으로 나가서 다른 층으로 갈 때면 정말 기분이 좋았어. 바깥공기를 마실 수 있으니까.
층을 오르내리면서 매일 노래를 불렀거든. 그 노래가 ‘아침 이슬’, ‘작은 연못’이야. '긴 밤 지새우고~' 그 노래가 아침이슬이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이 노래가 '작은 연못'이야. 기억나? 이건 내가 중학교 때 교생으로 오신 국어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노래야. 그런데 그 국어 선생님, 우리 수업하고 있는데 끌려나가셨어. 수업 중이었는데 말이야. 모두 그 선생님 끌려 나가실 때 선생님 붙들고 울고불고 난리 났던 기억이 나네. 선생님 못 가게 하려고 말이야. 그때 우리는 왜 선생님이 끌려가는지도 몰랐어. 아무튼 공장에서 그 노래가 왜 갑자기 생각났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그 노래가 그때 내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나 봐.
나보다 어린 친구들은 공장 현장에서 직접 신발을 만들었지만, 나는 그래도 고등학교 졸업했다고 사무실에 있었지. 거의 중학교 막 졸업하고 오는 여자아이들이 많았어. 초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온 친구들도 있었지. 그 공장에 오던 친구들은 모두 다 여자아이들이었어. 이유는 모르겠어.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게 화장실이야. 그곳 화장실은 문이 반쪽이었어. 말 그대로야. 문을 아래 위로 반으로 가르면, 윗부분이 없어. 안에서 볼일을 보면 사람이 다 보이는 구조야. 그런 화장실조차 자유롭게 다닐 수 없었던 걸로 기억해. 지금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는 하지만 화장실 갈 때도 누군가한테 말을 하고 갔었던 같아.
그때 나 따라다니며 언니, 언니 했던 현장 동생들이 있었는데 나 사느라 바빠서 그 친구들 이야기를 못 들어줬지. 아쉽다. 그 친구들 이야기 듣고, 뭔가 같이 단체 행동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럼 나 지금쯤 노동 관련 활동가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사무실에 있었던 주임이 나보다 서너 살 더 많았을 거야. 주임은 남자였어. 내가 일한 지 서너 달 되니 주임이 내가 만만해 보였나 봐. 지 작업복을 나보고 세탁해 오라는 거야. 처음에는 점잖게 못 들은 척했어. 그런데 얼마 뒤에 또 그러는 거야. 그래서 이번엔 정말 화가 나서 단호하게 말했지.
“나는 빨래하러 온 사람 아니에요.”
그렇게 한 일고여덟 번 싸웠나? 그랬더니 결국 ‘짤렸어’. 아니, 사실 내가 그만두고 나왔어.
가야에 있는 또 다른 신발 공장에도 다녔어. 이곳에서는 현장에서 일했지. 신발 형태를 만드는 플라스틱이 있거든. 그 플라스틱을 천에 끼우는 게 신발 공정의 첫 단계야. 그 플라스틱을 천에 끼워야 되는데, 내가 미숙해서 내 손톱에 끼웠어. 그래서 손톱이 빠져서 완전 고생했지. 그 사상에 있던 공장보다 작은 공장이었는데도 공장 안에 병원이 있었어. 그 병원에서 치료를 며칠에 걸쳐 받았어.
이 공장은 주로 아줌마들이 많았어. 점심시간에 아줌마들이 도시락 싸 와서 항상 나를 챙겨 주셨던 게 기억나네.
그런데 이 공장은 퇴근할 때 몸수색을 했던 것 같아. 이상하지? 그래서 내가 아줌마들에게 물어봤거든.
"왜 몸수색을 하는 거예요?"
그랬더니 신발을 훔쳐갈까 봐 몸수색을 한다네. 그런데 그 큰 신발을 어떻게 훔쳐 간다고 몸수색을 했을까? 그것도 남자들이 정문에 서서.
이거 성추행이지?
그때 이런 것을 알았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 행동하지 못한 게 안타깝네.
G :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뒷이야기는 없어?
-그냥 그게 끝인데? 매일매일 그렇게 일상을 반복하면서 살았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그게 잘못됐는지는 몰랐어. 하여튼 그랬다고. 다음에 또 이야기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