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이야기 01
우리 집은 딸만 다섯이잖아. 그래서 우리 엄마가 힘들 때마다 둘째인 나는 거제도 큰아버지댁에 가 있어야 했어. 그러다 학교 다닐 때는 방학 때마다 갔지. 나는 항상 우리 엄마를 어렸을 때 떠나 있어서 너희들을 끼고 사는 것일 수도 있어.
S: 응~ 그건 아닌 듯.
"아닌가?"
사촌 언니들은 내가 집에 오는 걸 좋아했어. 언니들은 좋아했지, 밤에 엿 사 먹을 수 있어서. 큰 아버지에게 내가 엿 먹고 싶어 한다고 거짓말하고 날 데리고 나갔어.
시골이라 너희가 아는 그런 마트는 없어. 그냥 조그만 구멍가게지. 온갖 것들이 다 있었던 것 같아. 그곳은 약간 만남의 장소라고 해야 하나. 언니들은 나를 핑계 대고 친구들 만나고. 나한테 엿도 사줬지만, 자기네들 볼 만화책도 빌렸지.
내가 제일 기억나는 건 밖이 너무 어두웠다는 거야. 너희들은 한 치 앞이 안 보인다는 말이 실감 안나지? 정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아. 그냥 별 밖에 보이지 않아. 사촌 언니들의 발소리와 내 발소리 밖에 들리지 않고. 후레시 불빛에 의지해 걷지만 좀 무섭기도 했어. 그런데 내가 같이 나가지 않으면 큰아버지가 언니들을 밖에 내보내 주지 않으니까, 내가 무서워해도 언니들이 나를 달래서 데리고 나갔어. 생각해보면 나도 무섭기보단 재밌었던 것 같기도 해.
지금 생각해보면 물론 큰엄마는 힘드셨을 것 같아. 자기 자식들 다 키워 놓았는데 또 어린애를 돌봐야 하니까. 그래서 그랬나? 큰엄마는 항상 나한테 말했어. 약간 나를 놀린 거지.
"니 엄마는 왜 이번에도 또 딸을 낳았노?"
큰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나도 큰엄마에게 대들었어.
"큰엄마도 딸 다섯 개나 낳았잖아"
이건 기억에 없지만, 우리 엄마가 전해 준 말이야. 큰엄마는 애가 하도 당돌하게 대들어서 기가 차서 우리 엄마에게 전했다네.
사실 큰엄마는 나를 돌보았다기보다 그냥 방치했던 것 같아. 큰엄마는 밤늦게까지 밭일 논일하러 다녀야 하고 사촌 언니들은 모두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야 하고. 그래서 날 돌봐주는 사람은 없었어. 가끔 큰아버지 따라 시골 초등학교에 가기도 했어. 큰아버지가 교장 선생님이었거든. 큰아버지가 주시는 커다란 식빵은 아직도 기억나. 그 빵의 구수한 냄새가 같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큰엄마 따라 밭에 가기도 했지. 그런데 하도 일을 많이 시켜서 다시는 안 따라갔어. 엄청 힘들었거든. 너희들 유치원에서 고구마 캐기 해봤지? 그런 일이었는데 그때는 재미가 없었어. 힘드니까 같이 안 따라가고 혼자 집을 지켜야 한 날도 있었어.
따뜻한 햇살이 방까지 비치는 노곤한 겨울로 접어드는 11월의 점심시간, 따뜻하고 적막한 그 공간이 마치 사진처럼 떠오르네. 그 날은 그런 날 중 하루였어. 혼자 집을 지키던 날이었지.
스님이 쌀을 얻으러 마당에 서서 목탁을 두드리고 있었어. 나는 그걸 봉창으로 보고 있었어.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지. 그런데 너무 무서운 거야. 그 사람이 날 잡아갈 것 같았어. 그래서 아무도 없는 척하고 있었어. 문고리를 꼭 잡고. 웃기지. 다섯 살짜리 아이가 문고리를 잡아도 어른이 잡아당기면 그냥 열리는데. 그 문고리가 뭐라고 꼭 잡고 있었는지. 인기척은 있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으니까 그 스님은 그냥 나갔어.
거제도에서 보낸 나의 어린 시절이 나의 삶을 참 풍요롭게 만든 것 같아. 추억들이 많아. 물론 엄마를 떨어져 있어야 하는 아이의 불안함도 나의 내면에 분명 있을 거야. 그래서 나는 더 독립적인 삶을 살았던 것 아닐까? 우리 엄마도 아마 나를 떨어뜨려 놓았던 죄책감이 있었을 거야.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가만히 놓아둔 것 아닐까? 나도 엄마의 말을 안 들었으니 너희들도 똑같겠지? 그래서 나는 너희들을 끝까지 응원하는 거야.
S: 갑자기? 그래서 그 스님 이야기는 끝이야?
"응. 그 스님이 그냥 갔다고, 그래도 엄마는 그 날 되게 무서웠다고. 그냥 그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