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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둘 Aug 30. 2022

브런치와의 재회. '네가 인간을 아니?'

브런치의 일편단심에 감동하는 척하기

브런치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너무 오랜만이라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구나.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 얘기부터 하기는 그렇지만, 

나는 사실 브런치도 안 먹는데 말이지. 

그리고 사실 브런치 같은 외래어를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지. 


그런데도 너는 나에게 이렇게 일편단심 편지를 보내는구나. 


작가님, 지난 글 발행 후 구독자가 20명 늘었어요. 그런데 돌연 작가님이 사라져버렸답니다 ㅠ_ㅠ 기다리고 있는 독자들에게 작가님의 새 글 알림을 보내주시겠어요?

너의 편지를 받고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단다. 

정말 이제는 답장을 해야 할 때인가. 

아니면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아름다울 수는 없는 것인가. 


4차 산업혁명 시대 AI 같은 너의 편지지만 인간의 감성을 가진 나는 어쩔 수 없이 반응을 한다. 그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응하고 사는 방법이 아니겠니? 나름대로 적응하며 살려고 애쓰고 있는 나는 인간이란다. 일괄 묶음 배송으로 메시지를 뿌릴 수 있는 브런치 너와는 다르지. 나는 지금 이 글조차 일일이 내 손가락을 일일이 놀려 꾹꾹 키보드를 눌러대야 쓸 수 있거든. 너는 정말 이런 내 마음을 아니? 


너는 아니? 

인간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너는 잘 짜인 기계어와 알고리즘으로 피곤하다는 게 뭔지도 모르고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겠지만 인간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단다. 쉴 휴, (숨)쉴 식. 인간은 숨을 쉬어야 살아. 쉬면서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 그래서 때로는 잠적이 필요하단다. 활동하지 않는 것, 무활동의 시간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시간이야. 놀랍게도 별도의 휴식 시간을 갖지 않는 인간조차 인생의 삼분의 일을 자는데 쓰거든. 그게 바로 인간이야. 호모 어쩌구 하는 멋있는 말들이 많이 있지만 인간의 본질은 '자는 인간', '쉬는 인간'이라는 데 있단다. 


네가 정말 인간을 아니? 

그래서 이 참에 꼭 알려주고 싶었어. 자꾸 글 쓰라고 재촉하지 않는 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한다는 것을. 브런치 너의 족보까지는 모르겠다만 브런치 너는 블로그와 달리 텍스트를 기반으로 세상에 통용되길 원하는 것 같아. 그리고 그 이면에는 인간의 고요한 내면에 접촉하고 싶은 너의 의도가 있는 듯해.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렇거든. 만일 그렇다면 너도 정말 인간의 본질을 배워보면 어떻겠니? 진정 쉬는 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을 자는 거야. 그 쉼을 모르면 네가 과연 인간을 알 수 있을까? 언젠가 브런치 첫 화면에 '쉼'이라고 대문짝 만하게 써 놓고 잠을 자 보길 바라. 소제목으로는 '인간의 본질을 배우고 있습니다'라고 적고. 그렇게 하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브런치의 인간다움에 탄성과 환호를 보낼지도 몰라. 


그래. 어쨌든 쉴 만큼 쉬었고, 다시 글이라는 걸 써 보려고 해. 그새 희한하게도 글을 계속 써 달라는 이야기를 꾸준히 들었어. 이름도 모르는 구독자분들이 꾸준히 프러포즈를 해 왔단다. 그러니까 꼭 너의 재촉만으로 다시 글을 쓰기로 한 건 아니라는 거야. 너의 경쟁 상대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들은 놀랍게도 살로 된 '인간'이라는 사실. 인간의 마음을 아는 인간의 프러포즈. 어찌 동하지 않겠니? 


물론 너도 한 몫했다는 점은 인정해. 

아무 글을 적지 않아도 이렇게 소소한 브런치가 맛있을 것 같다고 구독해주시는 분이 20명이나 늘었다는 소식을 전해준 건 다름 아닌 브런치 너니까. 그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어. 동면에 들어가듯 쉬고 있었는데 아무 인기도 없던 내 브런치에 야금야금 구독자가 생기다니. 참 브런치 너, 내가 아무 짓도 안 하는 사이에 무슨 일을 벌인 거야? 


말이 길었다. 

할 말이 없어서 아무 말이나 늘어놓다 보니 길어졌네. 

요약해보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앞으로 다시 글을 열심히 쓰겠다'가 아니라 이쯤 될 것 같아. 


적당히 쉬면서 글도 쓰겠다. 
인간답게.

그래. 뭐라도 써 보자. 

반갑다 브런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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