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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둘 Oct 27. 2022

포기의 심리학, 포기하면 편하다.

[1분 인생 힌트] 포기의 심리학, 포기하면 편하다.


우리는 포기로 김장을 담급니다. 배추 포기가 없이는 김장을 담글 수 없습니다. 포기가 없이는 우리나라 식사의 가장 기본인 김치를 먹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포기가 없이는 가장 기본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포기로 김장을 담그는 선조들의 지혜! 


시작부터 아저씨스러운 농담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주 사실적인 이야기지요. 포기가 없이는 기본에 다다를 수 없다. 이 무슨 소리일까, 조금 풀어 봅니다. 



포기하면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


지인들을 만났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 예전과 달리 화제는 돈 버는 이야기로 옮겨갔습니다. 이렇게 보면 다들 나이가 든 게 확실합니다. 순수했던 날들이여 안녕~ 우리는 돈 벌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파이프라인 구축에 대한 이야기. 부동산 이야기. 신사임당에 월 1억 넘게 번다는 이야기 등등. 


이야기를 하다가 궁금해졌습니다. 얼마를 벌면 멈출 것인가? 월 수입 얼마, 재산이 어느 정도면 멈출 수 있을까? 돈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한다는 행위를 어디쯤에서 멈출 수 있는 것일까? 답이 안 나오더군요. 지인들도 아리송해 보였습니다. 지금은 돈을 더 벌어야 해서 열심히 벌고는 있지만 부자가 되면 이 관성을 깰 수 있을 것인가. 멈추지 않고 글이든 말이든 그림이든 계속 생산해 내는 인플루언서들처럼 계속 멈추지 못하는 게 아닐까. 


아뿔싸. 우리는 가열차게 하루를 살면서 멈추는 법을 망각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도 당연한 것이 멈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멈추는 것을 평소에 연습하지 않으면 멈추는 법도 그때 가서 돈 주고 새로 배워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요새 같은 세상에 멈추는 것은 지극히 천대받는 행위입니다. 얼마나 등한시하는지 우리는 자면서도 하루 종일 했던 생각을 꿈에서 또 만나지요. 

마음이 평화롭고 싶다면 멈추어야 합니다. 멈추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냥 지금 하던 일에서 손을 떼는 것이지요. 행위에서도 손을 떼듯이 생각에서도 멈추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인즉 멈춘다는 것은 지금까지 하던 행위와 생각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관성의 움직임을 포기하기. 


포기하기는 기본기를 기르는 것입니다. 예전에 유행했던 농구 만화(라 부르고 삶의 철학을 담은 만화라고 할 수 있는) 슬램덩크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자신의 제자였던 유망주가 미국 NBA에 진출해서 고전하고 있는 것을 옛 스승인 안 선생이 TV중계를 통해 봅니다. 그러면서 안 선생이 혼자 읊조립니다. '돌아와라. 어서!  지금으로는 안 된다. 처음부터 다시 배우자.' 꿈을 섣불리 좇아간 유망주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꿈을 못 다 이루고 꺾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내가 품은 꿈을 포기하면 기본기를 쌓을 수 있게 됩니다. 나의 환상과 이상을 좇지 않을 때 우리는 기본에 충실하게 됩니다. 마음이 쫓기지 않으니 마음이 편안합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기본에 더 충실하게 됩니다. 기본이 탄탄하니 아주 튼실하게 자기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기초공사가 잘 된 튼튼한 건물처럼 꿈이 현실로 단단하게 짜 맞춰집니다. 


심리상담에는 마음이 조급해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요새같이 정보가 넘치는 세상에서 이것저것 부추김을 당하지 않기도 어렵지요. 유용하다고 소개되는 온갖 정보에 마음이 급해지기 쉽습니다. 저렇게 따라 하면 금방이라도 이룰 것 같은 조급함. 여태까지 해놓은 것은 없는데 어서 빨리 저기 저곳에 닿아야 할 것 같은 압박감. 이런 불안함에 공황발작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세상에 넘치는 셀럽들의 이야기, 평범한 사람들이 자수성가한 이야기, 인생역전에 성공한 나보다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우리는 말 그대로 환장합니다. 환장. 위장이 뒤틀린 사람이 어찌 마음 편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포기해야 합니다. 꿈을 포기하고 이상을 포기하고 열정을 포기하고 열성을 포기하고 의욕을 포기하고 자기비하를 포기하고 무기력을 포기하고, 내가 아닌 어떤 것들을 모조리 포기해야 합니다. 지금의 나로 살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포기하고 또 포기하는 가운데 내가 지금의 나로 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나로 있을 수 있을 때, 내가 나로 있으면서 생기가 샘솟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때는 무기력하려고 해도 무기력할 수 없고 자기비하를 하려고 해도 자기비하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러지 말라고 해도 의욕이 생기고 열성이 생기고 열정이 생깁니다. 꿈과 이상을 향해 정말로 나아갑니다. 조급하지 않은 마음으로. 


포기하면 일단 편합니다. 마음도 편안한데 점차 꿈이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처음에는 미미해 보이고 뒤처지는 것 같아도 무서운 복리의 마법처럼 꿈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마음까지 편하다니! 


그러니 왜 어서 빨리 포기하지 않습니까? 오늘 포기해야 할 것을 오늘 포기합니다. 포기하고 오늘은 오늘의 기본기를 기릅니다. 마음 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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