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사인 내담자가 쓴 편지
선생님은 뭐라고 답하실까요?
‘사는 게 뭐냐,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을 듣고 해요. 심리상담사로 살면서 드는 가장 흔한 질문 중에 하나일 것 같아요. 이런 질문을 들을 때면 심리상담사의 일이라는 게 참 별 볼 일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래 질문은 심리상담사들이 주로 하는 것이지요. 상담에서는 질문을 잘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배웠어요. 그건 사실이지요. 그런데 그 다음은요? 정답은 없다고는 하나 질문만 하고 답은 네가 알아서 찾으라고 하고 기다리는 건 때로는 너무 성의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마치 망망대해에 던져놓고는 거기에서 수영해서 육지로 나오면 원하던 답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들었을 때의 막막함을 선생님도 잘 아시죠? 오랜 상담 경험이 있는, 노련한 선생님이 이 질문을 듣는다면 뭐라고 하시겠어요? ‘나는 심리상담사라서 답을 하지는 않습니다’라는 자세를 취하며 질문을 피하지는 마세요. 여기서는 상담선생님께 묻는 것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묻고 싶으니까요.
그래도 어차피 제대로 답하지 않으실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묻고 제가 답해요. 여기 이 종이에 저 혼자만의 생각을 풀어 놓습니다. 사는 게 무엇일까?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어떻게든 가이드를 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심리상담사로써 제가 정한 답은 이것입니다.
‘정해진 답은 없다. 삶의 의미는 내 마음대로 창조하는 것이다.’
멋있죠? 그리고 동시에 김빠지지요? 제가 생각해도 좀 그래요. 답이라고 하는 게 답이 없다고 말하고 있으니. 동서고금의 유명한 현인들의 화법을 좀 따라해 봤어요. 다들 묘하게 정답을 피하면서 그럴 듯하게 들리는 답을 하잖아요. 그러면 왠지 가슴이 충만해진 것 같은 질문자는 답을 얻었다는 착각을 하고 제 갈 길로 떠나지요.
그렇지만 동시에 꼭 맞는 말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이보다 나은 답을 아직까지 찾지 못해서 이것을 정답이라 여기고 삽니다. 제 대답을 듣고 실존주의 같다느니 그런 소리는 하지 마세요. 실존주의 같은 게 무슨 상관이에요. 선생님은 실존주의 철학과 실존주의 상담의 차이점 같은 장광설을 늘어놓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건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일 거예요. 정해진 답이 없다고 답하는 것보다 못한 말이 될 거예요. 그건 바다 한복판에서 육지로 가는 방향조차 알지 못하게 만드는 거랑 다를 바가 없어요.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라고요.
이쯤에서 저는 조르바를 떠올려요. 그리스인 조르바요. 실존주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논하느니 조르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애써 만들던 광산이 무너지던 날, 허허대며 춤을 추던 조르바를 기억해요. 참 신기한 일이죠. 소설 속의 인물일 뿐인데. 단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가상의 인물을 기억하다니요. 하지만 기억한다는 말이 맞는 말 같아요. 머릿속에 강렬히 남은 인상을 꺼낸 것이니까요. 실존 인물보다 제 머릿속에 더 실존하는 인물. 실존주의에 대해 하나도 모르면서 누구보다도 강렬히 실존한 인물이 조르바잖아요.
제가 기억하는 게 맞는다면 조르바가 이렇게 말했어요.
"문제? 문제가 생기는 게 삶이야."
인생은 문제투성이에요. 이렇게 적고 보니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예요. 인생은 고해다. 일찍이 이렇게 말씀하신 분이 계셨잖아요. 현생 인류의 대스타 부처님의 말씀이지요. 그러니까 조르바는 우리 시대의 붓다 버전이에요. 나이가 들수록 그 말이 뼈저리게 다가옵니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다. 우리 모두는 일생 고통의 바다를 헤매고 있는 중생들이어라. 아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참 슬픕니다만. 다행히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어요. 그 희망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볼게요.
사실 어젯밤에 아내랑 다투었어요.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