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일지 1. 인생 의미②

심리상담사인 내담자가 쓴 편지

by 나무둘

사실 어젯밤에 아내랑 다투었어요. 늘 그렇듯이 별것도 아닌 걸로 싸움은 시작됐어요. 내 말이 맞냐, 네 말이 맞냐, 이제 그만 인정해라. 이런 흔해빠진 레파토리로 또 다툰 거예요. 지금도 어제 일을 생각하면 속이 살짝 쓰려요. 이유는 싸움에서 졌기 때문이 아니에요. 싸움 자체는 비겼다고 하면 될 거 같아요. 쌍방과실을 어느 정도 서로 인정했으니까요. 속이 쓰린 이유는 싸움의 승패 때문이 아니라 똑같은 이유로 또 다시 싸웠다는 자괴감 때문이에요. 지겹게 반복하고 있는 고통의 굴레. 이것을 스스로 굴리고 있는 것에 속이 쓰린 거예요. 오호통재라.


고통을 반복해서 선택하고 있다는 것. 이걸 자각하고는 어제 문득 보리수 아래 앉은 부처님처럼 깨닫게 된 게 있어요. 멀리서 서광이 비치더군요. 그 깨달음이 찾아온 게 동 틀 무렵의 새벽은 아니었으니까 그건 정말 서광(西光, 서방 극락의 부처의 빛)이었는지도 몰라요.


불현 듯 가슴 깊이 깨달은 것은 이거예요. 부처님이 고집멸도(苦集滅道)를 성스러운 네 가지 진리로 내세운 이유. 고집멸도의 사성제에서 ‘고통’이 첫 머리에 나오는 이유. ‘고통’조차 성스러운 진리에 포함되는 이유.

진정한 진리의 문은 고통의 문이었어요. 그 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진리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온갖 신화와 전설에서도 주인공이 첫 관문에서 시험을 받잖아요. 진리를 향한 순례의 자격이 있는지 테스트를 받는 그 흔한 장면. 그 첫 관문의 문지기는 이렇게 묻는 것이었어요.

‘인생은 고통이다. 너는 이것을 받아들이니?’


맙소사. 조르바가 맞았어요. 인생은 원래 그 자체가 문제예요. 문제가 없는 인생은 없다는 것을, 인생은 문제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요? 왜 여태 문제없는 인생을 만들려고 애를 쓰고 살아왔을까요? 이런 식으로 살다가는 평생 문제만 없애다가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삶이 무엇인지 알려면 문제 속으로 뛰어들어야 해요. 고통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요. 그 말인 즉 인생이 원래 고통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죠.


고집멸도의 ‘고통’이 부처님 시대의 원문에 따르면 ‘불만족’에 가깝다면서요? 불만족스러우면 고통을 느끼기 십상이니까 바로 보나 뒤집어 보나 이래저래 맞는 말 같아요. 고통을 불만족으로 치환하고 나면 제 삶과 연결이 좀 더 쉽게 되는 것 같아요. 일상에서도 불만족스러운 것들을 연속적으로 만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니까요. 어젯밤 아내와 다툰 사소한 이유도 어떤 불만족 때문이었으니까요. 인생은 불만족투성이다. 맞는 말이죠. 삶이 아주 만족스러웠다면 선생님을 만나지도 않았겠지요.


그런데 뼈저리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에요. 불만족은 누가 만드는가? 불만족이라는 것은 애초에 실체가 없어요. 만족하고 안 하고는 다분히 주관적이니까요. 불만족이 있으려면 불만족을 느끼는 ‘한 사람’이 있어야 해요. 그러니 내가 있고 나서야 나의 불만족이 탄생하는 것이죠. 내가 있고 나서야 나의 고통이 시작되는 거라고요. 세상에. 내가 사는 세상에서 고통의 창조자는 나 자신이었던 거예요. 내가 내 삶에 고통의 유일한 창조자였던 거예요.


조르바가 혼신의 힘으로 일구던 광산이 무너졌을 때 어땠을까 생각해봐요. 잠시 슬프거나 화가 났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하지만 괴롭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남들은 망연자실하고 눈을 내리깔며 낙담과 좌절에 휩싸일 수 있었을 때 허허 웃으며 춤을 추는 조르바는 미친 것이 아니었어요. 인생이 고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광산이 성공했든 실패했든 조르바는 그렇게 똑같이 춤을 추었을 거예요. 고통의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고는 어떤 문제 앞에서도 자유롭기를 선택했을 거라고 믿어요.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나의 친구 조르바에게 깊은 절을 올리고 싶은 마음도 드네요.


그는 인생에 널린 흔한 고통을 앞두고 괴로워하기를 선택하지 않았어요. 이미 주어진 고통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운 인생. 그 고통을 두고 씨름하느라 괴로워하기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요. 조르바는 진짜 현명한 친구입니다.


이미 생로병사라는 것이 따라오는 인생살이.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만 진짜 고통은 시작돼요. 그러니까 참 모순된 말이지요. 고통이 넘치는 인생이기에 고통을 받아들여라. 그러면 고통을 소멸할 길이 시작된다니. 고집멸도가 그런 뜻이었네요. 제게 비춘 서광이 그리 일러줬습니다.


이래도 고통이고 저래도 고통입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인생은 고통의 바다, 원래 문제투성이입니다. 불만족할 거리는 이미 인생에 넘쳐납니다. 그래서 다른 수가 없습니다. 나는 고통을 받아들입니다.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인생을 껴안습니다. 나는 불만족스러워하기를 더 이상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는 자유로워집니다. (아멘)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볼게요. 사는 게 무엇인지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조르바는 묻거나 답하지 않았어요. 그런 건 개똥보다도 못한 걸로 취급했지요. ‘정해진 답 따위는 없으니 내 마음대로 산다’라는 태세로 삶에 임했지요. 일자무식이어서가 아니라 고통의 성스러운 진리를 통달했기 때문에요. 인생의 의미를 자기 마음대로 가지고 놀고 창조하며 살았죠. 그래서 그는 괴로움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거예요.


어젯밤 아내와의 말다툼이 시작되려는 찰나 조르바라면 탁자를 탁 치며 이렇게 말했을 것 같아요. ‘이런 젠장. 당신 말이 맞소! 어떤 조건이 됐든 당신이 하자고 하는 대로 따르겠소. 그게 내 삶의 기쁨이자 행복이오!’ 삶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을 때도 춤을 추는 조르바니까요. 얼씨구나. 언감생심 조르바의 발꿈치도 못 따라가겠지만 그 사실은 받아들여요.


고통의 수레바퀴를 굴린 사람은 나다.

그 순간 자유를 향한 열쇠는 내가 쥐고 있었다.


내가 내 삶의 고통과 자유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내 인생의 의미는 내가 창조하는 것이겠지요. 이쯤 생각을 정리하고 보니 더 이상 상담을 받을 필요가 없을 거 같아요. 마음 한쪽에서는 상담을 그만 종결하자고 떠들어대네요. 그래도 조급한 마음은 늘 정답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너무 설익은 생각일 수도 있으니 이 생각이 어떻게 익어 가는지 좀 더 지켜볼게요. 다음 상담 시간에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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