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사인 내담자가 쓴 편지
돈.
‘돈’이라고 쓰고 마침표를 아주 세게 찍고 싶네요. 이 주제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참 그렇습니다. 누구에게나 민감한 주제겠지만 심리상담사가 돈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더 적당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요. 더구나 선생님은 나이도 있고 이미 심리상담 바닥에서 터를 단단히 잡았으니 제가 보기에는 돈에서 자유로운데 이런 이야기를 선생님께 꺼내다니요. 돈 이야기를 하자니 심리상담에 가당치 않은 이야기를 꺼내는 것 같아 조심스럽기도 하고 그렇다고 안 꺼내자니 정말 솔직하지는 않은 것 같고요. 이야기하긴 해야죠. 심리상담 장면에서는 말할까 말까의 기로에 서 있으면 말하는 게 정답이라면서요. 그래도 ‘돈’이라고 하자마자 뭔가 궁색해지고 한 수 지고 가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심리상담을 하면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돈은 엄청나게 중요하구나,라는 사실이에요. 사실 마음 공부를 시작할 때만 해도 돈은 부차적인 거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돈이야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마는 거지 뭐.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이라고! 마음의 평화가 무엇보다 중요해. 이렇게 혼자 생각했던 건 지금 보면 참 순진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찌 보면 자기기만이기도 합니다. 바라마지 않으면서도 바라지 않는 척하는 태도에는 그런 면도 숨어 있었을 테지요. 아무리 돈 버는 것에 큰 관심은 없었다고 해도 말이에요.
상담실에서 사람들이 꺼내놓는 문제를 여러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단순하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더군요. 첫째는 인간관계의 문제 즉 사랑 문제고, 둘째는 돈 문제라고요. 첫째로 꼽은 인간관계는 정신의 영역이고 둘째로 친 돈은 현실의 영역을 대변하는 거라고 봐도 무방하겠지요. 그러니까 돈이라고 하면 단순히 물질적인 돈 자체만이 아니라 직업이나 경력, 안정적인 생활 등을 포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상담을 계속하면서 과연 이 분류법이 크게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돈 말이지요. 인간관계 얘기는 맨날 하고 있으니 그놈의 돈, 돈 얘기를 해보아요. 잘 나가는 심리상담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상담사들이 돈벌이가 시원찮은 게 현실이잖아요. 사람의 마음을 보살피고 치유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궁색하다는 현실. 채용공고를 보면 한숨이 나올 때가 많아요. 석사 졸업과 전문가 자격 이상에 3년 이상의 현장 경험을 요구하면서 이 돈을 주고 사람을 쓰겠다고? 어지간히 하자. 저랑 전혀 관계없는 채용공고를 보고도 이런 생각이 드는데 정말 그 기관에 입사하려고 지원하는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요? 심리상담사의 돈벌이 현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심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지 계속 고민이 돼요. 상담사에게도 ‘마음’만큼이나 적나라한 화두로 다가오는 ‘돈’이에요.
언제부터인가 유튜브를 켜면 월 천 만원을 쉽게 벌 수 있을 것 같이 말하는 사람들이 자주 보여요. 이렇게만 하면 된다고 소리치는 그들을 보면서 알아차림이 잘 될 때를 빼고는 마음이 흔들려요. 자칫하면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거나 나 자신에게 분노하기도 쉽지요. ‘나는 뭐하고 살았지? 나는 왜 그렇게 못하고 있지?’ 하면서 말이에요. 그래서 작정하고 앉아서 돈에 대해 생각해 본 날도 있어요. 돈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마음을 오락가락하게 하는지 원통하면서도 이해가 안 됐거든요.
먼저 돈벌이에 낑낑거리며 사는 제 모습이 우스웠어요. 왜냐하면 20대 초중반 푸릇푸릇하던 시절에는 이 나이에 이렇게 살 줄 전혀 생각도 못했거든요. 그때는 이 나이가 되면 뭐라도 될 줄 알았지요. 어디라도 자리 잡고 든든히 삶을 항해하고 있을 줄 알았어요. 이런 식으로 돈에 흔들릴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거든요. 마더 테레사를 닮을 수는 없을까 하며 고매한 정신의 세계에 빠져 있던 나에게 돈이 현실을 깨우쳐 줄 줄이야. 누군가 저에게 말했었거든요. 어나더 월드 another world에 사는 것 같다고, 신선처럼 떠다니는 것 같으니 땅에 발 좀 붙이라고. 그런 주위의 평을 떠올리면서 그나마 돈 때문에 조금이라도 현실적인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관점에서 돈은 저에게 현실을 가르쳐 준 친구예요. 다음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깐 돈에게 고맙다고 전하고 싶네요. 그래, 네 덕분에 내가 이 땅에서 발붙이고 한 인간으로 사는구나.
돈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니 돈 덕분에 좋은 점은 그뿐만이 아니더라고요. 돈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기도 하지요. 단적으로 상담자와 내담자는 돈이 없었다면 성립되지 않는 관계잖아요. 이해와 공감의 관계,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친밀한 관계라고 말하지만 그조차 돈이 지불되어야 성립되는 관계예요. 공공 서비스 영역의 무료 심리상담은 예외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역시 아주 넓은 범위에서 보면 내가 낸 세금이 포함되어 있지요.
현대 사회에서 돈 없이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을지 질문을 해보면 명확한 것 같아요. 개인이 파편화되어 점처럼 존재하는 이 시대. 아무 이유도 없이 우리가 같은 사람이기에 하나로 속할 수 있는 공동체를 찾기 힘든 시대. 각자가 한 점이 되어 다른 점을 찾아 만나는 것이 불가피한 세상. 허울 좋은 유비쿼터스의 세계를 살면서 우리는 돈이 있기에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최소한의 연대감, 결속력을 다져주는 역할을 하는 게 현 시대에는 돈입니다. 그나마 돈을 통한 서비스 거래가 없었다면 인간의 상호 연결성은 지금보다 더 일찍 더 많이 흐릿해지지 않았을까요?
느끼셨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 저는 여기서 돈에 대해 약간은 억지로 좋은 점을 들추어 보고 있어요. 돈에 대한 부정적 생각도 편향된 관점이니까 균형을 잡아보고자 일부러 더 평소 생각과 다른 면들을 찾아보아요. 돈도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해서 쫓아다닌다고 하잖아요. 부자들이 말하길 이건 미신이 아니라 과학이래요. 믿어야죠. 수많은 부자가 똑같이 이야기하는데. 그럼 계속해서 돈에 대한 편향된 관점을 제가 어떻게 타파해나갔는지 그 이야기를 풀어볼게요.
어느 날 한 남자 상담사와 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왜 우리의 밥벌이는 시원찮은가. 이 돈으로 가족을 계속 부양할 수 있을까. 앞으로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가. 기관에 속한 보통의 상담사들은 이미 자기들의 쥐똥 같은 월급에 지친 나머지 이런 주제가 나오면 얼마든지 암울한 이야기를 쏟아낼 준비가 되어 있어요. 이 분도 내버려두면 곧 신세타령이 시작될 요량이었어요. 그래서 더욱 힘을 주어 지금처럼 돈의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심지어 심리상담사답게 정신 승리를 할 수 있는 ‘신박한’ 해결책도 주고요.
제가 찾은 해결책이란 이런 거예요. 일단 돈을 미워하지 말자. 지금 여기서 풀어내고 있는 글의 일관된 기조처럼요. 돈의 생리에 대해서는 쥐꼬리만큼 아는 상담사들이 돈을 미워해서야 쓰겠어요. 더구나 사람들의 마음을 보살피겠다는 사람들이 돈을 미워하면서 어떻게 그들의 삶을 건강하고 윤택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겠어요. 그러니 제발 우리의 돈벌이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지 말자. 기를 쓰고서라도 희망찬 미래를 말하자. 그때 남자 상담사에게도 이런 암시를 한껏 주었지요.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심리상담사는 아주 특별한 혜택을 하나 누려요. 심리상담을 하면서 느끼는 큰 장점 중 하나, 부자라고 해서 삶이 괴롭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걸 자주 환기하게 된다는 점이지요. 돈이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있지만 가장 깊은 마음의 고민을 없애지는 못한다는 것을 자주 느끼게 되죠. 프로이트도 그런 말을 했다면서요. 자기는 부유한 내담자만 받겠다고. 적어도 그들은 돈이 심리적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런 얘기를 들으면 대개는 고개를 끄덕이지요. ‘그래. 정말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야.’ 하지만 여기서 숨어 있는 진짜 가르침을 따로 있어요. 그건 바로 돈 자체는 큰 문제가 안 된다는 거예요. 내 문제의 가장 깊은 핵심은 돈과 그리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는 거예요.
아. 이쯤에서 결국 진부한 얘기를 꺼낼 수밖에 없네요. 만족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요. 핵심은 돈이 아니라 돈이 주는 만족감이지요. 돈이 아무 구실도 못한다면 종이쪼가리에 불과할 테니까요. 돈이 최종 목표가 아니라면 돈으로 얻으려는 목표에 돈을 통하지 않고 갈 수는 없을까? 제가 남자 상담사에게 제시한 의문이자 해결책이 이 접근이었어요.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