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사인 내담자가 쓴 편지
제가 남자 상담사에게 제시한 의문이자 해결책이 이 접근이었어요.
돈으로 닿으려는 가치나 욕구에 돈 없이 다다르는 방법을 찾아보자.
돈으로 얻고 싶은 게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았어요. 그랬더니 놀랍게도 돈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 게 딱히 없더라고요. 돈을 통해 가장 얻길 원하는 것은 무언가를 손에 넣는 것이 아니라 돈을 더 이상 벌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었어요. 돈이 있어서 더 이상 돈이 없어도 되길 바란다니 참 역설적이지요. 나중에 가족 내에서 주 수입원을 담당하고 있는 지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다들 작은 탄식과 함께 의미심장한 눈빛을 하고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라고요. 다들 그런 마음이라는 거죠.
돈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고민을 하다가 당장 큰돈을 벌 수는 없으니 그냥 무작정 해방감을 느껴보자고 생각을 했어요. 무작정 해방감. 그랬더니 길이 보이더라고요. 더 이상 돈이 필요 없다고 느끼면 무엇을 할까? 돈에서 해방된 사람이 할 만한 행동을 해보자. 아이디어가 번뜩였어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이거예요.
자원봉사를 다니자.
이왕이면 그동안 갈고 닦은 심리학 지식과 기술을 아낌없이 다 나누어주자.
누군가는 틈틈이 시간 쪼개서 자원봉사를 다니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했거든요. 돈벌이에 쫓기고 일의 결과에 신경이 곤두서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돈에 얽매였던 거 같아요. 나를 자유롭게 하지 못한 것은 돈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돈이 부족하다는 느낌이었어요. 돈 자체를 그저 죽은 사물처럼 대하며 돈을 구박했던 거예요. 돈을 하나의 대상으로만 보고 부릴 생각을 하며 마음이 쫓겼던 거예요. 문제의 근본은 돈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감정에 있었는데. 이런.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부자들의 말이 정말 맞네요. 저는 돈을 사랑하지 못했어요.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돈벌이를 하게 하는 돈을 미워했었네요. 돈에게 사과합니다. 앞으로 너를 더욱 존중할게. 환영한다. 돈아. 어서 와!
각박하고 가난하다고 느꼈던 것은 저의 거대한 착각이에요. 물론 여기서의 가난은 재물의 절대적인 빈곤이 아니라 마음의 가난함을 이야기해요. 가난하다는 느낌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무언가 내게 더 필요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요. 지금 내가 가진 것으로는 부족하니 가지지 않은 것을 향해 끊임없이 손을 뻗쳐야 하는 마음 상태. 의미를 확장하면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지요. 마음의 평화에 있어서 제 일 원칙인 Here and Now. 지금 여기 존재하라는 그 단순한 금언을 깨면서 말이에요. 가난하다고 느끼며 산다는 것은 지금 내가 가진 것조차 적절히 활용할 수 없게 만들어요. 섬뜩한 일이지요. 이런 마음의 상태로는 무언가를 더 가진다 해도 결코 만족할 수 없을 거예요.
진짜 부자들은 자기가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음을 아는 사람들이겠지요. 그런 넉넉한 마음으로 얼마든지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 그것이 진정한 부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내가 소유한 돈의 양과는 별도로 진정한 부는 소유할 수 있지 않을까? 저 자신에게 이렇게 물으니 가슴이 후련해지더라고요. 아무런 물리적 변화가 없어도 나는 진정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이미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해보려고 해요. 진정한 부의 감각으로 사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어서 느껴보고 싶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의 가치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전부 나누어주면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상하고 용맹한 이 생각에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네요.
여기까지가 첫 번째 해결책. 두 번째 해결책도 있어요. 두 번째 해결책은 첫 번째와는 조금 다른 관점이에요. 두 번째 해결책은 돈 자체에 영혼을 불어넣는 것이 주안점이에요. 첫 번째는 돈에서 해방되는 마음이 주된 관심사이고 두 번째는 돈을 활용하는 정신에 대한 이야기예요. 정신 승리라는 점에서는 비슷하기도 하면서 약간 다르지요. 두 번째 해결책은 돈이 결부될 수 있는 모든 활동에 새로운 정신을 입히는 거랍니다. 돈이 결부될 수 있는 모든 활동에 영혼을 불어넣는 거예요. 돈이 오가는 상황에 나의 뜻, 에너지, 정신을 담는 거지요.
그저 소비하고 그저 파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에 마음을 담는 것. 기부를 하더라도 월 얼마 기계적으로 자동 이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돈이 진정 좋은 뜻에 쓰이기를 기원하는 것. 물건 하나를 살 때도 그 돈을 받는 상인이 진심으로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돈을 건네는 것.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돈 값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내 관심과 애정을 담는 것. 즉 모든 돈의 활동에 내 존재를 투영하는 것이에요.
이 이야기는 어찌 보면 별 게 아닌 흔한 생각이고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측면을 담고 있어요. 돈이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결국 사람을 연결하는 것일 테니까요. 우리 마음을 나눌 수 있게 하는 고리로써 기능할 때 돈은 최상의 가치를 담을 수 있을 거예요. 내가 주고받는 돈에 내 존재를 담을 수만 있다면 돈은 내 영혼의 진가를 드러내는 창구도 될 수 있겠지요.
돈에 영혼을 불어넣고 돈이 영혼을 실어 나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것이 가능하다면 돈벌이조차 기쁘고 고귀한 일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먹고살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내 영혼을 타인과 잘 연결시키기 위한 표현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돈벌이라면 진심을 다할 수 있겠지요. 우리 모두의 내면세계와 외부현실을 풍요롭게 하는 돈. 그런 돈이라면 맨 버선발로 문간까지 뛰어나가 끌어안고 싶어요.
이야기가 조금 웅장해졌지요? 돈에 대해 정신 승리를 하려고 했더니 이 지점까지 와 버렸어요. 저는 마음을 다루는 심리상담사이자 돈에 신통치 못한 심리상담사니까요. 돈, 돈, 돈 떠드는 세파에 떠밀리지 않도록 정신의 칼날을 드높여 돈과의 관계를 새로 짜 보았어요.
이제 정리할게요. 선생님. 그렇다고 제가 돈을 안 벌고 정신 승리만 하겠다는 소리는 아니에요. 선생님께 비싼 상담비를 내면서 상담을 받으려면 돈을 벌어야죠. 그것도 보통보다는 잘 벌어야죠. 추측컨대 저의 일조로 선생님은 월 천만 원은 거뜬히 벌고 계시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월 천 만원을 벌 수 있을까요? 예, 라고 시원하게 답하고 싶지만 지금은 이런 답으로 대신해요. 우문현답. 돈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으려는 나 자신을 해방할 거예요. 내가 주고받는 돈이 영혼을 실어 나를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하겠어요. 필승! 그럼 다음 상담 시간에 봬요. 상담비에 제 영혼을 담아 선생님과 연결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