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일지 4. 성공②

심리상담사인 내담자가 쓴 편지

by 나무둘

제가 아쉬운 지점이 바로 그 부분이에요. 저는 서둘러 방황을 매듭지었거든요. 완성되지 않은 방황의 길. 이제는 방황이 끝났다는 듯 내 살 길을 찾은 척했어요. 인생의 한 점에 고착되어 있는 것을 더는 견딜 수 없어서 어디든 떠나려 했던 충동으로. 마치 막 떠나려는 기차를 보고는 목적지도 모른 채 일단 몸을 급히 싣고 보듯이. 오리무중의 혼란스러운 방황보다는 어느 길이든 시작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그렇게 심리상담사의 길을 가기 시작한 거예요.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죠. 아직 아니야. 아직 나는 방황을 마치지 않았어.


그때 성급히 지은 매듭 덕분에 심리상담사가 되었습니다. 명목상 심리상담사가 되는 데 성공한 이 시점. 진정으로 성공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는 것은 이런 의미가 있다고 느껴져요. 내가 처음 심리상담사의 길에 들어서고자 했던 마음을 충분히 보살피지 못하고 있었구나. 그 마음의 씨앗을 발아시키고 물을 주고 햇볕을 쬐게 하고 잘 키우는 데 소홀하지 않았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요. 방황할 수밖에 없었던 내 안의 연약함을 충분히 인정하고 공감하고 있니? 그것을 삶에 녹여 사람들과 나누며 살고 있니?


이쯤에서 그 사람들이 생각이 나요.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자기 삶에 녹여낸 사람들. 남이 뭐라 하든 세상의 소음보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진실했던 사람들.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 데 성공한 사람들. 제 잠자리 머리맡에 프린트된 그분들의 사진이 놓여 있어요. 다들 하나같이 크게 웃고 계시죠. 남수단 톤즈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하신 이태석 신부님, 전국 곳곳의 복지시설을 돌아다니며 무료로 호떡을 구워주는 사랑의 호떡 부부, 모금활동을 통해 저개발국가에서 학교를 짓는 꽃거지 한영준, 그리고 웃통을 벗고 하늘을 보며 해맑게 웃고 있는 한 자연인.


‘요한 씨돌 용현’이라는 TV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어요. 선생님도 보셨나요?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충격을 받고 그 즈음 주위 사람들에게 틈만 나면 그분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요. 지금은 심리 프로그램 진행을 맡아 상담사로써 저를 소개할 때면 ‘저는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하면서 언급하는 분이지요. 요한은 천주교 세례명이래요. 그분의 본명은 용현이고요. 씨돌은 군사정권에 항거하다가 고문을 당하고 몸이 상해서 시골에서 살 때 불린 이름이래요. ‘씨앗’할 때 씨, 바닥에 널린 돌을 합쳐서 씨돌. 그분은 요새 유행하는 자연인의 원조 격이었어요. 요한으로 살던 시절에는 자기와 일면식도 없는 군 의문사 피해자의 진실을 규명하고자 백방으로 뛰어다녔어요. 긴 세월이 지나고 수많은 곡절 끝에 마침내 의문사의 진실이 밝혀져 피해자가 누명을 벗게 되자 홀연히 사라졌지요. 그 피해자 가족조차 고맙다는 사례를 한 번 제대로 할 수도 없게 종적을 감추어 버렸어요. 씨돌이 되어 강원도 산골짜기에 있을 때는 자연을 아끼고 동네 사람들을 살뜰히 도우며 살았대요. 그분의 인덕에 동네 사람들이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해요.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 나타났는지 나타나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늘 도움을 주는 친근한 아저씨. 농사일로 얼마 안 되는 수확물도 꼬박꼬박 기부를 했다지요.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강원도에서 득달같이 달려가 사람들을 구조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하고요. 그랬던 분이 강원도 골짜기 동네에서도 완전히 자취를 감춘 거예요. 다큐멘터리에서 추적했더니 뇌출혈로 한 요양시설에 계셨어요. 비로소 한 사람, 본명인 용현의 삶을 살고 계셨던 거죠. 방송에 이런 장면이 나와요. PD가 자기에게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삶을 왜 그렇게 사셨냐고 물어요. 그 질문에 뇌출혈로 인해 겨우 쓸 수 있는 왼손으로 삐뚤삐뚤 적으시죠.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이 이야기를 적는 지금도 눈물이 살짝 나네요. 그냥 살아주셔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 개인적으로 전혀 모르는 분이지만 그런 삶을 보여주셔서 참으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어요. 왠지 모를 미안함도 느껴지고요. 나는 과연 그런 삶을 백분의 일이라도 살 수 있을까. 이런 분이야말로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가져오는 삶을 실제 사신 분이잖아요.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던진 분이시죠. 그 삶과 조금도 닮지 않아 부끄럽지만 할 수만 있다면 최선을 다해 그리 살아보고 싶어요.


그분들을 떠올리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요. 진정한 성공이란 내 삶에 관심이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내 성공에는 관심이 없어지는 게 진짜 성공이 아닐까. 무엇이든 내가 갖고 있는 것은 탐하지 않기 마련이잖아요. 나에게 이미 있다고 느끼면 바랄 것도 없고 관심도 없어지겠죠. 나에게 이미 넘치는 것이라 남에게 거저 주는 것이 당연한 상태. 주고 또 주다 보니 내 기분도 덩달아 점점 더 좋아지는 선순환.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문에도 ‘줌으로써 받고’라는 구절이 있잖아요. 프란치스코 성인은 무지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곧 성공의 비밀이라는 것을 넌지시 일러주려 했나 봐요.


타인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삶. 금전적 기대와 보상이 없이도 주려는 삶. 주는 기쁨과 행복에 자꾸 더 나누려는 삶. 그분들은 혼자만 잘사는 건 재미가 없다며 기꺼이 자기의 삶을 내주면서 하회탈처럼 함박웃음을 지었어요.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란 이런 것이겠지요. 저는 그 웃음 뒤에는 이런 메시지를 읽어요.

내게 주어진 것으로 최상의 삶을 만들자. 내 영혼이 가장 바라는 것을 실현하자. 이렇게 사는 게 참으로 만족스럽구나. 주고 또 주고 싶구나. 얼쑤!


정리하자면 이쯤 될 거 같아요. 성공은 자기 영혼의 소망을 이 땅에서 얼마나 구현했는지에 달려 있다. 저답게 또 다시 거창한 이야기를 해 버렸네요. 신선처럼 사는 척하는 것은 이제 그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이 땅에서 천국을 사는 길을 택해 봅니다. 저 자신을 위해 실천적 메시지로 변형해 보아요.


나 자신에게 쏟던 관심을 조금이나마 타인과 세상에 쏟아 보자.

받으려는 마음보다 주려는 가슴을 매일 조금씩 키워 보자.


이렇게 쓰고 나니 참으로 부끄럽네요. 주워 담지도 못할 생각을 말로만 쏟아 낸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여기에도 제 진심 한 톨이 분명 들어있는 걸요.


제 영혼을 배신하지 않는 길. 나 자신을 가장 존중하는 길을 앞으로도 찾아보아야겠어요. 더 가지려 하기보다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것으로 최상의 가치를 발현하는 길. 그게 어떤 길인지 잠시 생각해보아요. 성공에 대해 몇 페이지를 적으며 생각을 정리했지만 고민은 계속 깊어지네요. 아직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성공의 가닥은 잡은 것 같으니 그분들의 삶을 등불삼아 제 길을 가보려 합니다.


편지를 마치려는데 마음속에서 언뜻 이런 소리가 들려요. ‘그 시절 그 방황 덕분에 나만의 성공의 길을 찾게 된 거 아니니? 어쩌면 방황이 곧 성공인지도 몰라.’ 그래요. 그게 나만의 성공의 씨앗을 품은 방황이었는지도 몰라요. 방황하던 그 청춘에게 고맙다는 말이 하고 싶네요. 참 애썼다. 그 방황 덕분에 조금이나마 나를 더 잘 알 수 있었어.


그 방황을 아직 다 마치지 않았기에 가능성도 남아있는 거겠죠. 아직도 가야 할 길. 끝나지 않은 길에 희망을 걸어요. 언젠가 제 몫의 방황을 다 마치는 데도 성공하고 싶어요. 남은 인생에서 活을 품은 방황을 끝까지 살아보기로 하며 그때의 저에게 약속합니다.


내 안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가장 가치 있게 쓸게.

나를 지켜보고 응원해줘.


물론 선생님도 응원해주셔야 합니다. 선생님의 응원을 듣자니 이번에도 종결은 글렀네요. 제 방황과 성공의 흔적을 모두 지켜보고 계신 분께 진한 육성으로 들으러 갑니다. 다음 상담 시간에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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