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일지 7. 멍 1-①

심리상담사인 내담자가 쓴 편지

by 나무둘

지난 상담에 다녀와서 아무 쓸 말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정리할 게 없다고 생각해서 잠시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무슨 말을 하나. 그날도 그랬지요. 상담실에 처음 도착했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다른 시간에는 할 말이 넘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골라야 했는데 그날은 상담실에 가면서도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선생님과 인사를 나눈 뒤 저의 첫 마디, 오늘은 그냥 멍해서 별 생각이 안 들어요. 아무 말 없이 멍하게 앉아있기를 약 5분. 선생님이 몇 가지 질문을 주셨지만 멍한 상태가 쉽게 깨지지는 않았지요. 그때는 현실을 날카롭게 지각하게 하는 어떤 실존적 질문도 소용없었을 거예요. 예를 들어 ‘오늘이 생애 마지막이라면 어떡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들었다면 이렇게 대답했을 거예요. ‘그런 질문은 지금 아무 소용없어요. 이대로 멍 때리다 아무 생각 없이 죽을 거예요.’ 이보다 더 실존적인 대답이 어디 있을까요? 지금 이 순간의 멍 때림에 최선을 다하는 거죠.


내담자들이 상담실에 오자마자 침묵을 지킬 때가 생각나요. 그럴 때면 아무 말 없이 침묵으로 상담 시간 50분을 꽉 채울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가끔은 그 자체로도 충만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요. 우리가 이 침묵을 사랑할 수만 있다면. 하지만 대개 침묵이 길어지면 내담자도 상담자도 마음이 조급해지지요. 이대로 괜찮은가. 무슨 말을 해야 이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나. 상담을 받는 최우선의 이유, 치유를 향해 한 발 가까워지려면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서툰 말이라도 내뱉고 싶은 충동도 들지요. 말없는 시간은 가치 없는 시간이라는 듯이.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 침묵은 적이라는 듯이. 우리에게 침묵은 참 낯선 존재입니다.


눈 감고 멍하니 새 소리를 들으며 침묵하고 있는 사람. 제 기억에 자리 잡은 한 사람이 있어요. 십 년도 넘은 것 같아요. 인간극장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보았어요. 제주 이민이 유행하기 훨씬 더 전에 서울에서 제주로 이사 가서 놀멍쉬멍 살던 부부. 느릿한 화면 속에 한가롭기 그지없는 남편 광국 씨. 날마다 소풍을 가듯 여유롭게 사는 모습. 느리지만 게으르지 않은 삶의 속도는 잔잔한 울림이 있었어요.


쫓기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새 쫓기듯 살고 있는 제 삶과는 전혀 달랐지요. 발전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일상에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생산적 행위로 채우려던 제 모습을 뒤돌아보게 됐어요. 건설적으로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면서 압박감과 부담감에 늘 시달리고 있던 정신. 우아한 백조처럼 남들은 전혀 몰라도 수면 아래에서 줄곧 종종걸음 치던 마음. 저와 너무 대비되는 한가한 삶의 모습이 쉽게 잊히지 않았어요. 가끔 이 다큐멘터리가 생각나서 몇 번을 다시 찾아보았답니다. 느림의 미학. 일상의 여백을 침묵으로 채울 수 있는 사람의 삶은 공허하지 않아요. 충분히 비어있는 그 삶에는 충만한 울림이 있어요.


요 며칠 전 카카오톡이 마비되는 사태가 있었어요. 국민 문자 서비스라고 해도 무방한 카카오톡이 멈춘 날 참 재미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무리 눌러도 반응 없는 카카오톡을 보면서 제 뇌도 멈춘 것 같았거든요. 사고가 정지됐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끝없는 시달림에서 해방된 것 같았다는 뜻에서요. 공회전하듯 쓸데없이 가동되고 있던 뇌가 멈춘 느낌. 왠지 모를 속시원함. 뭔가 뇌 한 구석에 공간이 확보된 것 같았어요.


한때 뇌 구조 그림 그리는 게 유행이었잖아요? 온갖 단어와 생각으로 빽빽하게 채울 수 있는 뇌 구조 그림에 한 아름의 여백이 생긴 거예요. 워낙 급작스러운 사태라 다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빈 공간. 조금의 겨를도 주지 않고 창살이 열리고 야생으로 해방된 순간. 언제나 작동되던 것이 갑자기 안 되니 아쉬운 마음도 들었고, 언제 복구가 되나 자꾸 아이콘을 눌러보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했지만 모두가 무용한 일이었지요.


아무 쓸모가 없어진 카카오톡 아이콘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음이 찾아왔어요. 야호, 해방이다! 이것은 바로 그토록 원하던 해탈이었어요. 풀 해, 벗을 탈 즉 굴레나 얽어맴에서 벗어남. 그때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해탈의 찬스를 잡았던 거예요. 메타버스의 시대에 해탈의 길이 카카오톡 먹통에 있었다니. 세상사 참 모를 일이네. 혼자 중얼대다가 무의식중에 제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왔어요. 제가 그때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아세요? 정답은 잠시 뒤에 알려드릴 테니 맞춰 보세요. 그 전에 다른 이야기를 먼저 풀어놓고요.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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