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일지 7. 멍 1-②

심리상담사인 내담자가 쓴 편지

by 나무둘

해탈 직후 어떤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생각을 하고는 혼자 피식 웃었어요. 직업병이 심각하구나. 주야장천 마음을 주무르는 심리상담사답다. 그 생각은 이거예요.

‘현실의 창이 닫히자 마음의 창이 열리는구나.’


언제 어디서든 접속할 수 있다고 자랑하는 우리의 문명은 역설적으로 언제 어디서든 자기 마음을 쉽게 외면하게 해요. 쉴 새 없이 울리는 알람과 메시지에 내면 깊이 이르는 길은 차단당하기 십상이지요. 카카오톡의 멈춤으로 접속 불가능해진 세계는 그동안 내내 접속 불가능했던 내면세계를 가리키는 표지와도 같다고 생각했어요. 더 심각한 접속 불가능이 있었던 것을 그때까지 우리 모두 까마득히 몰랐던 거지요.


평상시 접속 불가능한 마음의 영역. 우리는 그것을 무의식이라고 부르잖아요. 평소에는 무의식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고, 무의식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살아왔다는 사실도 몰랐다는 거지요. 한데 여기서 흥미로운 현상이 발생해요. 방금 전까지 무의식적으로 살아왔다는 것도 몰랐다는 것을 아는 순간이 찾아 온 거예요. 그걸 인식하게 된 순간 무의식은 더 이상 무의식이 아니지요. 무의식이었던 것이 의식의 영역으로 올라오면서 무의식으로 가는 통로가 열린 거예요. 그동안 접속 불가능했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역으로 접속 가능성이 생긴 거지요. 외부의 접속 불가능성이 내부의 접속 가능성을 열어젖힌 셈이었어요.


소란스러운 메시지가 침묵하면 마음으로 가는 문이 보이는 것이야. 카카오톡은 이런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스스로 장렬히 희생하며 침묵했던 게 아닐까. 이것이 큰 깨달음을 주려던 카카오톡의 음모가 아니었을까. 싱거운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답니다. 이 사태 덕분에 하나는 분명 알게 됐어요. 일상의 나를 멈추면 비로소 나를 알게 된다. 조금 더 요즘 사람 언어로 풀면 이런 거죠. 멍 때리면 비로소 나를 알게 된다.


정신분석 계보에서는 무의식에 진실이 숨어 있다고 보잖아요. 무의식적으로 마구 던지는 농담이야말로 진담이라고도 하고요. 그런 관점에서 멍 때리며 올라오는 온갖 생각도 여지없이 진실을 담고 있겠지요. 지금 이 편지처럼요. 이 글도 주의 집중이 자꾸 흩어져서 멍하게 쓰고 있거든요. 멍했던 경험을 멍하게 쓰고 있으니 진정 진실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이제 해탈의 환희를 느끼며 불렀던 노래를 공개할게요.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그 노래도 진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눈도 감지 말고 웃지도 말고 울지도 말고 움직이지 마.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제 입에서 동요가 흘러나왔어요. 깨달으면 아이처럼 순수해진다더니 정말 그런가 봐요. 이 가사를 보세요. 얼마나 심오한지. 이 동요의 작사가가 누군지는 몰라도 큰 깨달음을 얻은 분임에 틀림없어요. 지금 선생님과 마주보고 있다면 선생님께 퀴즈를 드리고 싶네요.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추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 라. 마. 처. 보. 세. 요. 하나 둘 셋.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작사가가 가사에 숨겨둔 그윽한 뜻을 직접 들려준다고 상상해볼게요.


춤을 추는 동안에는 즐거운 게 당연하다. 허나 춤을 추지 않고 멈춘 동안에도 즐겁다는 것을 알려면 춤을 멈추어야 한다. 춤을 추든 안 추든 즐거움은 계속된다. 아무것도 안 해도 좋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해도 즐거움은 계속된다. 진짜 즐거움이란 그런 것이다. 눈도 감지 말고 진실을 보라. 일부러 웃지도 말고 즐거움이 계속 되는 것을 똑똑히 보라. 춤을 멈춘다고 울지도 마라. 즐거움은 계속 될 테니. 털끝 하나 움직이지 말고 분명히 느껴라. 즐거움은 항상 너와 함께 있다. 그것은 춤을 추든 안 추든 상관없다. 춤을 추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 아니라 네 존재 안에 있는 즐거움의 표현이 춤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눈도 감지 말고 웃지도 말고 울지도 말고 움직이지 마라. 고로 멍 때려라. 아무것도 하지 말고 멍 때리며 생생히 계속되는 내면의 즐거움을 만끽하여라.


인간극장의 광국 씨가 멍 때렸던 것도 이런 즐거움을 알았기 때문일 거예요. 고요에 도취된 듯한 그의 표정이 제 뇌리에 깊게 각인된 것도 그 즐거움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일 거예요. 늘 조급했던 마음과는 달리 저의 내면 깊은 곳에는 멍 때리고 싶은 강한 욕구가 있었던 거예요. 이렇게 돌아보니 그 욕구조차 감지하지 못하게 괜히 마음을 급하게 몰아대며 산 것 같네요. 광국 씨의 아름다운 얼굴이 더욱 선하게 떠올라요.


생각해보면 지금의 저를 만든 것은 팔 할이 멍 때림이에요. 지난 편지에서도 썼듯이 약이 떨어진 시계처럼 멈춰 있던 청춘 시절, 그 멍한 시간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어요. 외롭고 막막했던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글을 쓰는 저도 없었을 거예요. 이렇게 맛깔스럽게 희한한 글을 쓸 수 있는 건 길고도 길었던 멍한 시간을 통과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멍했던 그 시간은 영혼이 회복하는 시간은 아니었을까. 혹 윤회가 있다면 무수한 시간 속에 청춘의 한 시절을 영혼의 회복에 쓴 것도 과히 괜찮지 아니한가. 근력 운동을 한 후에 근육이 커지는 것도 운동을 하지 않고 쉬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잖아요. 뭐든 회복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한 거예요.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심리상담도 예외가 아니겠지요. 지난 상담 시간에 제가 멍했던 것도 그런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음을 탐험하는 일에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내면의 강력한 외침이었던 거 같아요.


대략 이쯤에서 편지를 마무리하려고 했더니 농담이 하나 떠오르네요. 진담보다 진실하다는 정신분석적 농담. 상담사들만 재미있을지 모를 몹쓸 농담이지만 선생님은 원래 이런 개그에 약하시잖아요. 웃으시리라 믿어요. 이 충언을 드리며 편지를 마무리해요.


선생님, 상담 좀 줄이세요. 강의도 좀 줄이시고요. 선생님은 욕심쟁이라 지금보다도 상담을 더 잘하고 싶어 하시잖아요. 이럴 때 필요한 건 잠시 쉬면서 자주 멍을 때리는 거예요. 그동안 쉼 없이 달려오셨으니 이 타이밍에 쉬신다면 상담 근육이 무척 튼튼해지지 않을까 해요. 그러면 한국 상담계에 큰 족적을 남기시지 않을까 사료됩니다. 그리하여 제가 선생님의 휴식을 돕고자 잠시 상담을 쉴까 생각을 해보았답니다. 선생님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으로. 어때요? 선생님을 생각하는 제 진심이 느껴지죠?


하지만 지금보다 더 대가가 되었다가는 선생님의 삶이 너무 피곤해질 것 같아요. 카카오톡 먹통보다 심각한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해야겠어요. 다음 상담에도 꼭 갈게요. 대신 다음 상담 시간에는 같이 멍 때리며 쉬어요. 마침 선생님 상담실은 창밖으로 초록도 잘 보이고 새 소리도 잘 들리니 멍 때리기에는 제격이잖아요. 멍 때리는 건 제가 조금 더 잘할 거 같으니 차근차근 알려 드릴게요. 광국 씨의 표정도 연습해 가서 알려 드릴게요. 해탈의 즐거움 한 조각도 나누어 드릴게요. 충만하게 침묵해 보아요. 내담자와 함께 즐겁게 상담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추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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