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사인 내담자가 쓴 편지
예전에 상담사례 회의에서 수퍼바이저 선생님이 한 말씀이 생각나요.
‘우는 게 능사일까요? 우는 건 삶을 회피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어요.’
보통 심리상담 장면에서는 내담자가 울면 깊은 감정에 접촉하는 신호라고 보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죠. 눈물 흘리는 것을 두고 심리상담이 진전되고 있다고 여기기 쉬운데 꼭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다고 일침을 놓으신 거예요. 하긴 기분이 나아지는 것과 삶이 나아지는 것은 다른 문제긴 해요.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거의 모든 행위는 기분 좀 나아지게 하려는 시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다들 자기가 아는 깜냥 안에서는 기분 좋아지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 거예요. 단 기분을 낫게 하는 동안 삶을 낫게 하지 못할 때도 많다는 것을, 심지어 악화시킬 때도 많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그러는 거죠.
이 편지의 첫 마디를 연 그분은 정확히 이와 반대로 하셨어요. 기분이 나아지게 하는 행위를 하느라 자기 삶을 희생하지는 않기로 선택하셨죠. 도리어 괴로움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완전히 맛보려 하셨어요. 자기에게 주어진 고통의 시간을 외면하지 않았던 거예요. 심리상담 중에 언젠가는 반드시 당도하게 되는 직면의 문 앞에 스스로 설 줄 아셨던 거예요.
우리 모두는 ‘어떻게 고통 없이 안심과 위로를 좀 구할 수 없을까’하는 인간적인 마음이 들잖아요. 심리상담을 찾는 첫 마음도 대개 이런 마음이고요. 하지만 그런 이유로 자기가 원하는 안심과 위로를 얻지 못할 때도 많지요. 타인에게서 구하는 안심과 위로는 내가 어루만져지길 원하는 그 마음 깊숙한 곳까지 이르지 못하기 쉬우니까요. 타인이 알아서 그 깊은 곳에 도달할 수 있을 리 만무하고, 그렇다면 내가 인도를 해줘야 하는데 내가 그곳까지 이르는 길을 알았다면 진즉 안심과 위로가 필요 없는 상태가 됐을 테고요. 애당초 타인에게서 그것을 찾아야만 한다고 느끼는 좌절된 가슴은 그 길을 안내할 능력이 없는지도 몰라요. 사실 가장 원하는 것은 내가 입도 벙긋하기 전에 그 마음이 터치되길 원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내가 말문을 열어 손수 안심과 위로를 찾아야만 하다니요. 그건 또 하나의 좌절감이지요. 처음에 안심되고 위로받고 싶었던 마음에서 한 번 더 멀어져 버린 것이고요. 이미 타인이 주는 어떤 안심과 위로도 성에 차지 않을 마음이 되어 버린 걸 수도 있어요.
그분은 이 모든 걸 간파하셨던 것 같아요. 단 회로 끝난 그 상담 시간에 그분은 저에게 인생수업을 하셨어요. 그 수업의 근저에는 ‘마음의 멍은 심리상담 같은 걸로 빼는 게 아니다’라는 주의를 단단히 깔고 계셨죠. 욕은 안 하셨지만 황석영 소설 ‘개밥바라기 별’의 한 장면이 어울리는 시간이었어요. 그 소설에 아주 유명한 대사가 나오잖아요.
사람은 씨팔…… 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거야.
거기 씨팔은 왜 붙여요?
내가 물으면 그는 한바탕 웃으며 말했다.
신나니까…… 그냥 말하면 맨숭맨숭하잖아.
그 시간에 제가 섣불리 위로하려 들었다가는 정말 ‘씨팔’ 소리를 들었을 거예요. 자기만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심리상담에 임하는 그분 앞에서 저는 잠잠히 들을 수밖에 없었어요. 이번 상담이 망했다는 직감이 들기는 했지만 망하더라도 그건 제 상담이 망하는 거지 그분의 상담이 망하는 건 아니었어요. 그분의 상담은 그런 스타일이었던 거죠. 상담사에게 인생 계몽을 해주는 상담. 그 상담이 끝나고 기분이 나쁘지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상담을 했다고 할 수도 없고 어떻게 보면 상담을 제대로 말아먹은 것이기도 했지만. 내가 하는 상담은 오늘 하루도 어김없이 살아내야 하는 인생 자체보다는 고통에 주목하며 괴로움을 키우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찐한 반성과 함께 오히려 가벼운 기분도 들었어요. 지인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엄숙한 자리였지만 저를 상담하며 아주 살짝 싱긋 웃기도 했던 그분은 저에게 이런 메시지를 남겼어요. 조금 점잖게 순화해서 적어볼게요.
이보게. 마음의 멍은 억지로 뺄 수 있는 게 아니야. 마음에 든 멍을 무슨 수로 뺄 거야? 오늘도 난 여기 출근했다고. 사고가 난 지점이 바로 저기야. 멍이 진 채로 살 수밖에 없는 거라고. 나에게 지금 필요한 건 심리상담도 위로도 아니야. 내게 필요한 건 오늘도 출근하고 내일도 출근해낼 힘이라고. 사고가 난 이 현장에서 매일 살아갈 힘. 안 들어가는 밥숟가락을 놓지 않고 기어이 한 숟가락 떠먹을 힘 말이야. 마음에 멍이 있든 말든 계속 살아가야 한다고.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몫이지. 뭐 심리상담 같은 걸 해서 내려놓아진다고 해도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마음의 멍도 풀리긴 하겠지. 그렇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지금 내가 신경 쓸 일도 아니야. 그때까지 멍든 채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중요한 거야.
이 상담은 출장 상담이었어요. 산업 현장이라 상담이 끝나고 차로 돌아오는 길에 흙먼지가 많이 날렸어요. 차에 오르기 전에 신발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다가 생각이 들었어요. 그분은 매일 이 먼지를 달고 살겠구나. 매일 퇴근하며 털어내도 매일 출근하며 묻겠구나. 그래서 먼지를 털어내는 삶이 아니라 먼지와 함께 사는 삶을 택한 거구나. 마음의 멍과도 그렇게 살기로 한 거구나. 마음에 멍이 들어도 직선으로 곧장 나아가기로 한 거구나. 그것이 자기 자신을 위한 최선의 삶이겠지.
많은 생각을 남긴 상담을 복기하면서 편지 첫 문단에 선생님께 했던 질문을 스스로 답해 보아요.
마음에 든 멍을 풀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힘, 자연이 치유할 때까지 시간을 견디는 힘, 고통보다는 삶에 주목하며 웃는 힘.
이제 저도 멍을 풀려고 노력하며 살기보다는 멍을 가지고도 잘 사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시퍼런 멍이 들어도 웃고 사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우리 아이처럼 아무렇지 않게 멍보다는 삶을 직시하며 해맑게 웃고 싶어요. 내가 웃고 사는 동안 자연과 시간이 나를 치유하도록. 그동안 많이 울었으니까 그걸로 됐어요. 오늘부터 한 방울의 눈물보다 한 바가지의 웃음으로 하루를 살아 볼래요. 멍이 들든 말든 아무렴 어때, 이렇게 내게 말하며 싱긋 웃는 오늘을 살아보겠어요.
저는 이렇게 생각을 정리했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네요. 다음 상담 시간에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