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나의 것, 나를 화나게 하지 말아요.

심리상담사의 아침편지

by 나무둘

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며칠간 외부 일정으로 자리를 비웠기에 오랜만에 아는 청소.

오늘은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기도 하니

더욱 활기차게 청소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청소를 시작하는데 어라?

전에 못 보던 책장이 상담실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가만히 보고 있는데 가슴이 답답해지고 화가 나기 시작합니다.

수십 번은 전달한 말인 거 같은데.

상담실 구조를 바꾸고 싶으면 꼭 나에게 먼저 이야기를 하라고 했는데.

의자 세팅이 바뀌면 빈 의자 작업 같은 걸 할 때 불편해진다는 걸 모를까.

그렇게 오래 의사소통을 했는데 정말 아직도 모르는 것일까.


이 마음을 어떻게 다룰까 하다가

결국에는 화가 나는 걸 참지 못합니다.

괜히 씩씩거리고 발을 동동 구르다가 우렁찬 함성도 한번 질러보고

이 바쁜 아침에 원상복구를 시작합니다.


커다란 책장을 밖으로 꺼내고

옮겨져 있던 의자와 화분을 원위치시키고

슬프게도 청소는 시작도 못합니다.

아 나의 금쪽같은 아침시간.

고된 일정 탓에 이미 늦잠을 자서

아침 일과가 다 한참 뒤로 밀렸는데

이것은 또 무슨 조화란 말인가.

오 신이시여, 이것이 정녕 나의 삶입니까.


조급한 마음에 괜히 더 성질이 난 거 같습니다.

원상복구를 하고도 아직 화가 가라앉지 않아서

상담실 밖으로 꺼낸 책장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이걸 어떡하나?

어디에 두면 잘 놓았다고 소문이 날까?

기가 막히게 좋은 자리가 없을까?

화가 다 식지 않은 와중에도

이렇게 머리가 돌아가는 걸 보며 속으로 참 우습다고 느낍니다.


한 차례 김이 빠졌기 때문일까요?

갑자기 옛날 일이 생각납니다.

아주 오래전에 회사생활을 할 때 나의 상사가 생각납니다.

자기 상사에게 한바탕 꾸지람을 듣고 와서

나에게 성토를 하던 나의 상사.

그 하소연을 10분, 20분, 30분 계속 들어주는데

시간이 흘러도 상사의 분노는 멈출 줄 몰랐습니다.

시간은 계속 가고 나는 나의 일을 하지 못하고 있고.

애절한 눈빛으로 계속 들어달라는 신호를 보내던 상사에게

그런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그 분노는 당신 것이지요. 당신이 가지세요. 나까지 화나게 하지 말아요. 제발요.'


사실 일전에 책장을 상담실 안에 들여놓아도 좋다고 책방지기와 이야기를 나누긴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런 식으로 들여놓을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지요.

내 상담작업을 알아서 헤아리지 못하는 것에 답답했던 것이고,

척하면 척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에 답답해서 화가 났던 것이죠.


그 화는 누구의 것인가?

이렇게 다시 보니 영락없이 나의 것입니다.

화를 자초한 것은 나 자신입니다.

책방지기는 내 말을 듣고 그냥 책장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것이고

책장은 얌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을 뿐이고

그 사태를 본 내가 있습니다.


화를 거두고 보니

책방지기가 나름대로 예쁘게 놓겠다고

화분과 책장의 위치와 배열을 신경 쓴 흔적도 보입니다.

책방지기의 입장에서는

빈 의자 작업할 때의 여유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건 생각도 못했겠지요.


마음을 몰라준 건 그일까, 나일까.

화를 나게 한 건 그일까, 나 자신일까.


마음공부도 오래 했으니 순순히 인정합니다.

화는 내가 나게 했구나.

이 분노는 나의 것이다.


(그에게) "나를 화나게 하지 말아요!"

그 말이 메아리치며 나에게 돌아옵니다.

그 사람에게 외치고 싶었던 말을 나에게 돌려줍니다.

(다시 나에게) "나를 화나게 하지 말아요. 토닥토닥."


화가 좀 더 가라앉습니다.

이성의 뇌가 작동하기 시작하자 맑은 생각이 올라옵니다.


이 화도 내 것으로 가질 수 있다면

이 분노를 완전히 소유할 수 있다면

그때야말로 진정 감정의 주인이 되지 않겠는가.

내 감정의 주인도 못 되면서 어떻게 내 삶의 주인이 될 것인가.


분노는 나의 것.

나는 분노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입니다.

노예의 삶이 아니라 주인공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문득 커다란 깨우침을 준 책방지기에게 삼배를 올리고 싶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책방지기에게 이렇게 감사인사를 드려야겠습니다.


그 분노는 나의 것이었어.

당신이 아니라 내가 나를 화나게 했어.

나를 화나게 하지 말라고 한 그 말은

사실 나에게 하는 말이야.


당신은 주로 무엇에 화가 나나요?

그 화는 타인이 일으킨 것인가요, 나 자신에게서 난 것인가요?

그 분노를 완전히 소유하고 싶은가요, 내다 버리고 싶은가요?


파란만장한 마음의 청소를 하고 돌아와서 아침식사를 합니다.

분노를 완전히 내 것으로 소유한 주인공의 식사.

아삭아삭, 오이가 참 향긋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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