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사의 아침편지
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매일 청소를 하지만 매일 드는 의문이 있습니다.
나는 왜 매일 아침 청소를 하는가?
오늘도 그 화두를 들고 청소를 했습니다.
그동안 이 편지를 쓰면서
'아침 청소가 내 존재의 방식이다, 아침 청소로써 내가 존재한다'는 식으로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나는 왜 이런 식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꼭 이런 식으로 내 존재를 드러내야 하는가?
내가 했던 말과 생각조차 뒤집어보는 심리상담사만의 발칙한 발상.
서점과 심리상담센터라는 공간의 입장에 서 봅니다.
매일 아침 주인이 청소를 해 주는 게 과연 기쁠까?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좀 더 자고 싶은데 새벽에 봉창 두드리듯 시끄럽게 구는 게
마음에 안 들 수도 있겠네요.
한편으로 이렇게 투덜거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청소가 필요 없는데 너는 왜 꼭 청소를 하고 있니? 그거 너 좋자고 하는 거 아니야?'
음. 음. 음.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공간의 입장에서는 청소가 꼭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당사자가 바라지도 않을지 모를 청소를 하는 나를 돌아봅니다.
그것은 어쩌면 내 존재를 증명하려는 방식이겠네요.
공간 입장에서는 아무런 증명도 필요 없는 것을
오로지 내가 나를 증명하기 위해
공간에게 청소를 강요한 건 아닐까.
공간은 말이 없습니다.
청소를 요구하지도 않지요.
그냥 여여하게 있을 뿐입니다.
푸른 하늘이 자기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그 하늘을 나는 새가 자유롭게 날 뿐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그 하늘 아래 나무가 제자리에 우뚝 설 뿐 존재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존재감을 뚜렷이 드러내며
존재함으로써 자기 소명을 다합니다.
"너는 왜 네 존재를 드러내려고 하니?
네 존재를 왜 특정 방식으로 설명해야 하니?
네 존재도 나처럼 아무 증명이 필요하지 않아."
공간이 친절히 나에게 말합니다.
아뿔싸.
아침마다 청소한다고 유난 떨던 나를
공간은 텅 빈 공간답게 조용히 가르칩니다.
"존재감을 증명하지 않아도 좋아."
증명하지 않아도 절로 표현되는 것,
내 안의 날 것이 있는 그대로 밖으로 드러날 때
나는 최선으로 존재하는 게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당신은 당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하고 있나요?
그런 식으로 증명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혹 증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당신이 표현된다면 어떨까요?
오늘 우리
아무것도 내세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꺼내서
세상과 타인에게 보여주면서
'이것이 나입니다.'라고 표현하면 어떨까요.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증명을 요구하지 않고
존재하는 자체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