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살이 부끄럽지 않아요.

심리상담사의 아침편지

by 나무둘

오늘도 심리상담센터이자 서점을 청소했습니다.


매일 청소를 하는 공간이지만

얼마나 구석구석 청소하는지는 매번 다릅니다.

청소기를 돌리다 보면

잘 보이지 않는 구석까지 청소하고 싶은 때가 있는가 하면

겉에 보이는 것만 후딱 치우고 끝내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오늘은 청소기를 돌리는데 한쪽 구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벽의 코너, 'ㄱ'자로 맞물리는 책장과 책장 사이.

그 구석진 공간에 모서리를 잘 가리고 있는 의자와 스탠드.


생각해 보니 오랫동안 거기까지는 청소를 안 했습니다.

할까 말까, 잠깐 고민이 되더군요.

의자를 앞으로 빼내야 되고 스탠드를 받치고 있던 받침대도 들어내야 되고.

그래서 매번 하지 않은 그 귀찮은 작업을 할까 말까.


잠깐 고민을 한 뒤에

오랜만에 의자도 꺼내고 스탠드 받침대도 꺼내

'ㄱ'자 코너에 청소기를 들이밀고 먼지를 빨아들였습니다.

개운한 느낌이 들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 속살이 부끄럽지 않고 싶다.'


오늘 아침 나무둘 라디오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월든을 쓴 소로의 숲이든 크리슈나무르티가 말년을 보낸 오하이밸리든

라다크의 시골 마을이든 진리의 나라라는 인도든

류시화 시인이 첫 방문했던 대부분의 여행지가

상업주의, 가난하고 척박함, 지저분함 등으로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수차례 방문하자

비로소 그 장소들이 진정한 속살을 보여주었다고.

수십 번 내가 먼저 가슴을 열고 가슴을 맞대어야

그제야 공간도 자기의 본모습을 보여준다고

시인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하면서 생각했습니다.

'남의 속살을 보려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속살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남에게 요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내 속살을 살뜰히 보아야 하지 않을까.'


구석에 은근히 숨어 있던

작은 먼지와 종이 쪼가리를 청소기로 빨아들이며

'나는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책방에 오는 손님이 그곳까지는 눈길을 주지 않더라도

거기까지는 청소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내 속살이 보일까 봐 내심 두려워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부자들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좋은 팬티를 입으라.

왜냐하면 남들은 절대 몰라도 나는 알고 있으니.

나를 먼저 잘 대접하라.


은밀한 구석까지 청소를 한다는 것은

나를 잘 대접하는 것입니다.

언제 내보여도 당당하게

내 속살을 깨끗이 하는 것입니다.


오늘 나의 속살을 청소하면서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더욱 투명하게 자기 마음을 돌볼 수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당신은 어떤 속살을 가지고 있나요?

차마 드러내지 못하는 속살이 있나요?

그 속살을 당신이 깨끗이 씻어 준다면

그래서 아무 부끄럼 없이 살 수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오늘 당신도 나도

숨겨야 할 속살이 전혀 없는,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그렇게 당당한

하루를 살아보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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