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가능한 인간이 되고 말겠어.

심리상담사의 아침편지

by 나무둘

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오늘도 이어진 먼지떨이에 대한 애도.

사라진 먼지떨이에 대한 애착이 심해서인지

아직도 새로운 놈을 사지 않았습니다.


아쉬움을 간직한 채

오늘도 약간 불편한 청소를 하겠구나,

생각을 하다가 오랫동안 쓰지 않던 빗자루가 눈에 띕니다.

몽당연필처럼 끝이 뭉툭해진 빗자루.

저 녀석이라면 좁은 곳도 잘 파고들겠는 걸?,

좋은 생각 같아 얼른 빗자루를 쥐고

용맹무쌍하게 계단 청소를 하러 갑니다.


계단을 쓰는데 허허.

빗자루가 너무 오래돼서 그런지

빗자루 가닥가닥이 실처럼 빠집니다.

그래도 먼지가 쓱쓱 쓸리는 것이

쓰는 맛은 제법 괜찮습니다.


게다가 먼지떨이로 바닥을 쓸 때는

허리를 한참 굽혀야 했는데

빗자루는 허리를 세우고 편하게

청소를 할 수 있습니다.

계단 기둥 사이도 잘 파고듭니다.

먼지도 더 잘 쓸리는 것 같습니다.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데?


오늘로 먼지떨이 애도 3부작의 글을 쓰려고 했는데

대미를 장식할 3부에서는 그만,

'상실의 즐거움, 대체 가능한 기쁨'에 대해

말하게 됐습니다.


요새 대체 불가능한 인간이 되라는 주문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 AI가 일상의 곳곳을 파고드는 이때

비인간성 속에서 인간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80억 인구 중에 나의 존재가치를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각자의 독특성을 뽐내야 한다고

일면식 없는 전문가들은 주창합니다.


그런데 먼지떨이는 운명을 다하며

그와는 정반대 유산을 남겼습니다.

'대체 가능해야 잘 산 거야.'


음. 일리가 있습니다.

정신건강의 측면에서 보면

대체 가능한 인간이 대체 불가능한 인간보다

유리합니다.


아침마다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오늘 최선의 나를 만나 보자.'

'오늘 갑자기 죽는다 해도 아쉬움 없이 떠나자.'

대체 불가능한 듯 순간을 살더라도

대체 가능한 인간으로 죽겠다는 다짐.


죽을 때 껄껄 웃으며 잘 살다 간다고,

참 재미있게 살다 떠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게 당장 오늘이라도 좋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대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주의 질서에 기꺼이 순응하고 순환하며

언제든 대체 가능하겠다는 마음입니다.


나의 독특성을 애써 확인하고 유지하고 인정받지 않아도 되는 인간.

그 사람의 정신건강을 위협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대체 불가능하려고 애쓰지 않기에

범상한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그는 인간된 제약을 거부하지 않고

자기 삶의 모든 스펙트럼을 맛봅니다.


물방울은 반드시 대양으로 돌아갑니다.

바다에 일부가 된 물방울이

자기의 독특성을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물방울 하나하나는 아주 독특하지만

동시에 물방울임을 포기했을 때

자기보다 더 큰 물에 안길 때

물방울은 바다가 됩니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는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경지.

흙이 되는 귀환의 여행을 떠난 먼지떨이의 가르침을 받아

개인보다 더 큰 인간이 되려는 용감한 인간은 이렇게 말합니다.

'대체 가능한 인간이 되고 말겠어.'


당신은 오늘 어떤 면에서 대체 불가능한가요?

대체 가능한 인간적인 면모는 무엇인가요?

언제든지 대체 가능하겠다는 마음으로 살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은

대체 불가능하려 애끓지 말고

대체 가능한 내 삶에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그 무엇이든

여전히 대체 가능하다고 생각할 때

나는 두려움에서 해방되며

비로소 유일무이한 완전한 개성을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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