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사의 아침편지
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토요일부터 어제 월요일까지
평소와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은근히 많은 일정을 소화하고 일상으로 돌아왔더니
잠깐 정신이 이탈했습니다.
청소 도구를 챙기면서도 정신이 멍했고
청소를 하면서도 정신은 먼지처럼 부유했습니다.
오늘은 일단 새벽 기상이 늦었습니다.
평소보다 하루를 늦게 시작하는 바람에
낭독하고 씻고 라디오 방송하기에 바빴습니다.
이럴 때면 언제나 독서가 뒷전이 됩니다.
사실 새벽에 가장 하고 싶은 것은(해내고 싶은 것은) 독서인데 말이지요.
지금도 책상 좌우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심리학 책들.
요새 읽고 있는 카를 융이 분신술을 부려
좌청룡 우백호처럼 나를 호위하는 척하면서
나를 감시하고 있습니다.
진지하게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는 융이
책의 겉표지에서 튀어나와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습니다.
젊은 심리학자야, 나를 언제 다 읽을 것이냐!
(전 학자가 되고 싶지 않은데요.)
융의 텍스트에 포위된 채
아침부터 할 일이 밀린 느낌으로 청소를 하러 갔으니
주말의 여독이 아직 풀리지 않은 내 정신이
멍한 것도 당연했습니다.
청소를 하면서 끝없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다음에 할 일은? 그리고 그다음은? 오늘 편지의 글감은 뭐로 하지? 새벽에 못 읽은 융은 언제 다 읽지? 융 말고도 읽을 책이 몇 권이더라? 벌써부터 밀려버린 일을 오전에 다 처리하려면?!
아 나는 청소를 하는 폼을 잡은 채
머릿속을 끝없이 어지럽혔습니다.
잠시라도 생각을 떨쳐내고 싶은 심정으로 먼지를 털고
머리를 쓸어내고 싶은 심정으로 청소기를 돌렸습니다.
아침부터 생각에 질식당하고 싶지 않다고
'청소'에게 외쳤습니다.
살려줘!
청소가 답했습니다.
일단 청소나 해. 지금 청소라도 하니 얼마나 다행이니?
아. 아.. 아... 문득.
청소를 하는 것이 의무나 일이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지금 내가 청소를 하지 않았다면
청소를 하면서나마 멈추지 않았다면
풍차 앞에 선 돈키호테처럼
오늘의 밀린 일들을 향해 돌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일이 더 꼬이고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고 마음이 더 급해지고.
안 봐도 비디오, 이럴 때 쓰는 말입니다.
지금 내게 청소는 도끼질을 멈추고 도끼날을 가는 시간이구나!
청소가 나에게
너무 할 일이 많고 정신없이 바쁘다고 외치는 나에게
말미를 줍니다.
내가 무슨 짓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내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잠깐 숨을 돌리고 또렷이 보도록 해 줍니다.
참 고마운 청소입니다.
나는 이마저 해치워야 할 일처럼 청소를 몰아붙였는데
청소는 오히려 빙긋 웃으며
'지금이 쉬는 시간이자 명상 시간, 여기가 퀘렌시아'라고 내게 일러 줍니다.
오 갸륵한 청소 님.
늘 그렇듯 오늘도 엉뚱한 곳에서 큰 가르침을 얻습니다.
삶이 다시 흥미롭고 신선해집니다.
당신의 삶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
수많은 할 일 중에 자기를 멈추고 쉬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가끔 호기롭게 내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침반을 꺼내 보면 어떨까요?
오늘은 좀 더 자주 멈추고
더 깊이 머무는 하루를 살아 보기로 합니다.
내가 원하는 정확히 그 지점에 이르기 위해
오히려 지금 멈춥니다.
오늘은 할 일도 참 많건만
청소를 한 뒤 차 한 잔을 마시는 여유를 부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