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과 그림자도 나의 일부예요.

심리상담사의 아침편지

by 나무둘

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희한한 일입니다.

어제만 해도 머릿속이 산란하기 그지없었는데

오늘은 아주 고요합니다.


오늘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보통은 나무둘 라디오 방송을 마치고

7시 넘어서 서점에 가서 청소를 시작합니다.


그 시각에 청소를 가려고 하면

나름 출근을 하는 셈이니 이것저것 챙기느라 분주하기도 하고

괜히 청소를 미루고 싶은 마음에 사부작거리기도 하고

얼른 청소를 끝내고 아침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일부러 라디오 방송을 아예 서점에서 했습니다.

새벽부터 출근을 한 셈이지요.

(어차피 수도권에서는 다들 이렇게 살잖아요. 여기는 좀 심심하고 느긋한 대전입니다만)

방송을 마치는 시각은 대략 6시 45분.

끝나자마자 지체 없이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딴전 피우거나 급해질 이유가 없이

바로 일을 시작하는 것.

갈까 말까 할까 말까,

둘 중 더 나은 선택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이렇게 마음을 고요하게 할 줄이야.

참 고요하고 산뜻하게 청소를 마쳤습니다.


오늘 나무둘 라디오 방송에서는

내 마음에 있는 전갈과 수행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 번 독침에 찔리면서도 물에 빠진 전갈을

기어이 뭍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수행자.


독침으로 찌르는 것이 본성인 전갈과

생명체를 살리는 것이 본성인 수행자.

둘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 마음에는 두 가지 마음이 다 있습니다.

당장 없애 버리고 싶은 모기나 파리 같은 마음도 있고

고결한 신의 본성을 닮은 마음도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밝은 쪽만 선택해서 살아가려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전갈, 모기, 파리 같은 면은 외면하고

오로지 빛을 좇아 살려고 합니다.


하지만 진정 필요한 것은

둘 중 더 나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둘 다를 아우르는 것입니다.

본체가 있어 그림자가 생기는 것이기에

그림자만 없애려고 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내 안에 어두운 면이 있다는 것은 빛이 있다는 증언입니다.

빛이 있음으로써 어둠은 자연스레 존재하는 것이지요.


이 교훈을 되새기며 내 청소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매일 꼬박꼬박 하는 청소이기에

먼지가 별로 없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무리 열심히 청소를 해도

어딘가 먼지는 숨어 있겠지요.


빛과 어둠처럼

깨끗함과 더러움도 공존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삶이라는 생각이 스칩니다.

매일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매일 냄새나는 똥을 누는 게 인간의 삶입니다.

아주 범상하며 그래서 인간다운 삶.


내 성격의 어두운 면과도 함께 살 줄 알고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와도 함께 살 줄 아는

평범하면서도 인간미가 넘치는 삶을 살면 어떨까.


그런 이유에서 오늘의 청소에는 더 힘을 뺐습니다.

덜 구석구석, 덜 예리한 눈으로, 덜 강박적으로 청소를 하며

청소에 인간미를 더해 보았습니다.


나는 어딘가 어수룩하고 부족하고 미진한 나를 인정합니다.

그런 나의 부분을 없애지 않고

내 전체의 일부로써 포함하고 아우르고 끌어안습니다.


청소 자체에 대해서도 그렇고

청소의 대상인 먼지에 대해서도 그렇게 합니다.

지나치게 깨끗하게 할 필요가 없으며

더러움으로 남은 부분 또한 내 모습, 내 삶의 일부이겠지요.


이 공간이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공간,

삶이 깃든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청소를 마쳤습니다.

이곳이

무조건 긍정적이고 무조건 행복하고 무조건 밝아야 한다고

은근히 채근하고 강요하는 곳이 아니라

모든 부정성, 불행, 슬픔, 그림자, 어둠까지 함께 어우러져

삶을 온전하게 하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이런 마음으로 나의 불완전한 청소도 온전해졌습니다.


당신의 어둠은 무엇인가요?

당신이 애써 지우려 하는 자신의 그림자는 무엇인가요?

그 어둠과 그림자마저 나의 일부로 껴안고 산다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은 내 안에 있는 전갈과 수도승 같은

'모든 나'를 껴안고 살아보기로 합니다.


빛과 어둠, 깨끗함과 더러움

이 모두를 더 힘껏 껴안고

이 또한 나라고 인정하고

온전한 인간의 삶을 살기로 합니다.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웃음과 눈물이 뒤범벅인

삶의 강물에 풍덩 뛰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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