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대한 예의를 나 스스로 지켜요.

심리상담사의 아침편지

by 나무둘

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어젯밤에는 좀 늦게 잔 바람에

오늘은 기상이 늦었습니다.

정신이 몽롱한 것이 청소를 하는 와중에도

생각이 잘 전개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청소를 다하고 나면 아침편지를 써야 하는데.

뭘 주제로 쓴담?


졸리고 흐릿한 정신 덕분에

해탈한 듯 무념무상으로 청소를 하며

생각이 없어 마음이 고요한 게 좋으면서도

글감이 안 떠올라 약간 신경도 쓰였습니다.


그래서 떠오른 생각.

나는 굳이 왜 매일 청소를 하고 매일 글을 남기는가?


또다시 이 지점입니다.

늘 탑돌이하듯 되돌아오는 이 화두에는

사실 삶에 대한 의문이 담겨 있습니다.


이 질문을 계속 확장해 나가면

결국 가장 궁극적인 질문에 다다릅니다.

나는 왜 사는가?

매일 굳이 이렇게 살 필요가 있는가?


이는 답이 없는 질문이라

중생들을 미혹에 빠뜨리고

수많은 수행자를 걸려 넘어지게 한

이브의 유혹입니다.


이런 답 없는 질문에는

답을 찾으려 하지 않는 것이

질문의 간계에 빠지지 않는 정도(正道)라고 배웠습니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생각에는

삶의 구체성을 더하라고 배웠습니다.

매일 묵묵한 실천으로

인생에 피와 살을 입히라고 배웠습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철인으로 불린 야구선수가 있었습니다.

그가 철인으로 불린 이유는

안타나 홈런을 잘 쳐서가 아니었습니다.

철인은 몇 천 몇 백 경기를 하루도 결장하지 않고

매일 출전했기 때문에 주어진 별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프로 야구선수가 된 이래 은퇴할 때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일 경기에 나섰다는 것이지요.


언젠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에베레스트에 한번 올라가는 것보다

뒷동산을 천 일 동안 매일 올라가는 것이 더 어렵다.'


실로 보다 위대한 것은

매일 똑같은 일을 똑같은 시간에 똑같이 해내는 것에서 옵니다.

지겹도록 똑같은 하루를 매일 살아내는 사람들,

출가하지 않았더라도 우리 모두는 수도자입니다.


매일 아침 청소를 하고 글을 남기는 것은

나라는 인간을 돌아보는 행위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가,

내 삶을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지

스스로 확인하는 일입니다.


별난 게 잘난 게 없는 인간,

나는 나에게 최소한의 성실성을 주고 싶습니다.

나 자신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싶습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일을

매일 같은 시각에 정한 대로 묵묵히 행함으로써.


나는 워낙에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인간인지라

그나마 청소라는 구체적인 행위를 하면서

매일 삶 속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을 정말로 살기 위해

청소를 하고, 청소를 했다고 글을 남기며

내 삶에 흔적을 쌓아갑니다.


오늘 갑자기 사고로 죽는다면

이 글이 내 삶의 마지막 흔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걸 어떻게 돌아볼까요?

'그 귀한 시간에 별 유용성도 없는 청소를 왜 했지?'

라고는 후회하지는 않을 겁니다.

'내 삶에 대한 예의를 오늘도 지켰구나.'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삶의 끝에

삶이 나를 배웅하며

'내가 너에게 준 삶을 어떻게 살았니?'라고 묻는다면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아도 내 힘으로 매일 청소를 했어.

엄청나게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생각에 빠져 사는 인간이라

더더욱 매일 청소를 하며 내 삶에 예의를 다하려고 했어.'

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삶이 내 답변에 흡족해하며

윤회의 고리 대신 천상으로 가는 축복의 문을

열어주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이마저도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나란 인간!)


당신은 당신의 삶에 어떻게 예의를 지키고 있나요?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매일 해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로 인해 당신도 모르게 변화되고 있는 점은 무엇일까요?


오늘도 청소를 마치고

이렇게 글을 하나 써냈습니다.


이렇게 매일 한 번의 청소, 하나의 글로 조각을 맞추다 보면

인생 전체의 퍼즐도 맞출 수 있겠지요.


매일같이 내 삶에 예의를 다하면

인생도 나를 예우하리라 믿으며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을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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