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사의 아침편지
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오늘은 새벽에 평소보다 10분 정도 일찍 서점에 도착했습니다.
여유 있게 라디오 방송 준비를 마치고 나니
방송 시작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습니다.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어차피 라디오 방송 직후에 청소를 할 예정이니
청소 도구도 미리 세팅을 해 놓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난 머리가 잘 돌아가!
청소기를 상담실에 가져다 놓고
빗자루, 쓰레받기, 먼지떨이를 계단에 놓았습니다.
불필요한 동작 없이 즉각 청소를 할 수 있도록.
오늘은 더 효율적으로 청소를 할 수 있겠군!
기분이 좋았습니다.
라디오 방송을 상쾌하게 마치고 청소를 하러 갔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몸이 먼저 향한 곳은
청소도구를 보관하는 곳.
그곳에 서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청소기가 여기 없지?
책방지기가 다른 데 치웠나?
특별히 쓸 일도 없을 텐데 이상하다...
그때까지도 전혀 몰랐습니다.
청소기를 찾는답시고 이곳저곳 둘러보는데 아뿔싸.
상담실에 고이 앉아 나를 기다리는 청소기.
청소기 몸체에서 길게 나와있는 호스가 메롱!
한 마디 던집니다.
'정말 몰랐어? 바보야 ㅋㅋㅋ'
아 어찌 이렇게 깜박 모를 수가 있는지.
불과 20분 전 일인데 말이지요.
그것도 효율적으로 청소를 해보겠다고 미리 세팅을 한 건데.
오히려 청소도구를 찾으러 여기저기 기웃대며 시간을 버렸다니.
더욱 어이없는 것은
오늘 라디오 방송 주제가 '알아차림'이었다는 점입니다.
생각을 알아차린 것이 아주 중요해요,
요새 심리상담과 심리치료의 알파와 오메가는 알아차림입니다,
의식 수준을 높여서
내가 평소에 하고 있는 줄도 몰랐던 생각 패턴,
내면에서 시종일관 떠드는 시끄러운 목소리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라고 떠들었는데.
부끄러웠습니다.
역시 남의 것은 잘 보여도 내 것은 잘 안 보인다는 걸,
지당한 이야기를 말로만 떠드는 것은 참으로 쉽다는 걸,
실감 나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이렇게만 생각을 정리했다면 참 교훈적일 테지요.
너무 바람직해서 고개를 끄덕이지만 재미는 좀 없습니다.
아침부터 교장 선생님 훈화 같은 건 지루하기 짝이 없지요.
좀 더 익살을 부려 봅니다.
이 이야기의 기막힌 반전이 보입니다.
내가 청소기를 미리 세팅한 건 사실 참 잘한 일입니다.
다만 내가 그것을 몰랐을 뿐입니다.
이를 삶에 대입해 봅니다.
내 삶의 과거에도 참 잘했는데
지금은 모르고 있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내 삶의 현실에서도 참 잘하고 있는데
남들은 다 알아도 나만 모르는 게 있을 것입니다.
나는 참으로
잘 해냈고 잘하고 있고
잘 살아왔고 잘 살고 있고
잘났었고 지금도 잘나다.
이런, 나도 내가 잘난 줄 몰랐어!
다만 지금 내가 모를 뿐.
그때는 알았던 것을 지금도 안다면.
묘하게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미 잘 살아온 인생,
내 안에 숨은 좋은 점들을 들추어
미래로 희망을 쏩니다.
억지도 만들어 내야 하는 희망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증명했던
원래도 내 것인 그 희망.
이쯤 익살을 부리니 갑자기 신이 납니다.
오늘이 아주 재미있는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아침 밥맛이 아주 좋을 듯합니다.
당신이 잘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과거에 잘했는데 까마득히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남들 보기에는 잘났는데 나만 모르는 점은 무엇인가요?
오늘 당신도 나도
내가 잘났다고 떠드는 게 아니라
내가 잘난 줄도 몰랐어요,라고
겸손 좀 떨면 어떨까요.
아직 나에게는
그렇게나 잘났으나
잘난 줄도 모르는 많은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은
스스로 잘난 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나를
흔들어 깨우며 일러줍니다.
이거 참 잘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