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가해가 되지 않으려면 내 안의 카인을 보자.
경주마 훈련
11분 안에 최대한 빠르게 글을 쓴다.
자유롭게 연상되는 대로 쓴다.
철자나 맞춤법, 논리 등은 생각하지 않는다.
낯선 단어들을 조합하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형용사와 명사를 조합하자.
이상한 문장을 만들자.
새로운 단어를 발명하자.
하나의 표현을 단어만 바꿔 가며 계속 써보자.
이름을 쓰고, 이름 뒤에 감춰진 그 사람의 기이한 면모를 적어보자.
문을 열고 한 번도 나간 적 없는 곳으로 그들을 내보내라.
시간이 다 됐다.
11분 동안 얼마나 많은 단어를 썼는가?
다음에는 이보다 더 많이 써보도록 하자.
-픽사 스토리텔링, 매튜 룬
오늘도 11분 글쓰기의 시작이다.
오늘은 주제가 무겁다.
'2차 가해'라니.
다른 글을 읽고 든 생각이지만
아무 주제를 정해놓지도 않았다.
어떤 글이 펼쳐질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저 손가락이 춤추는 대로 받아 적어본다.
심리상담을 하다 보면
2차 가해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이야기도 흔히 듣는다.
복잡다단한 이야기들을 자주 접하다 보면
정의 실현 같은 게 과연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요새 '글로리'라는 게 유행이란다.
난 티비를 보지 않으니 잘 모르겠다만
거리에 포스터 등에서 본 적은 있다.
복수에 관한 내용이라던데.
복수.
인간의 원형적인 모습이면서도
지극히 인간적인 삶의 모습이기는 한데
그걸 그런 식으로 살려내면
-지금 아주 인기가 있다고 하니까-
어떤 파장이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사회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것들은
하나의 주제가 된다.
하나의 주제가 반복되면
그건 하나의 물결이 아니라
큰 파도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복수, 라는 게
하나의 문화처럼 될까 우려가 된다.
'글로리'의 내용에 대해 얼핏 들었을 때
그리고 이미 양분되어 있거나
격화되고 있는 사회적 갈등 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볼 때,
동시에 심리상담 중에서도 그 주제가 반복될 때
이건 하나의 위험 신호처럼 다가온다.
과연 복수는 정당한가.
2차 가해를 막으려는 복수는
또다시 2차 가해를 양산하지 않을까.
우리는 복수를 막을 수 있을까.
성경에도 아주 초반부부터
복수의 시나리오가 들어있다.
카인의 우리에게 있어 인류 복수의 원형상이다.
원래부터 우리에게 있었다면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소화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 안에 있는 카인을 먼저 바라봐야 한다.
내 안의 카인이 있는 한
어떤 복수도 정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복수는 가해자의 더 큰 반격을 준비하게 될지 모른다.
카인과 같은 내 안의 면을 나는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것을 먼저 소화할 수 있는가.
아니 그러기 앞서 일단 인정할 수 있는가.
나 또한 그리 다르지 않은 인간임을.
인류의 공통된 원형상을 공유하고 있으며
내 삶이 무너질 때 나 또한 그리되지 않을 수 없음을 고백할 수 있는가.
이쯤에서 다들 회피하려 한다.
나는 가해자가 아니오!
그래서 2차 가해를 더 신랄하게 단죄한다.
그리고 나는 정의에 편에 서서
내 안의 카인을 지워 버린다.
내 안의 그림자를 말살한 척 하며
겉으로 빛만을 극명하게 드러내며
사실은 안으로 그림자를 키우게 된다.
아 이 무시무시한 실상을 꿰뚫어 볼 자는 누구인가.
다들 힐링에 도취되어 있는 이 시대
말랑하고 달콤한 심리학에 기꺼이 중독되려는 이 세태에서
누가 자기 안의 카인을 고백할 수 있겠는가.
나는 생각한다.
내 안에 단죄하려는 마음 뒤에 숨은 것들이 무엇인지.
그 슬픔 속에는 분노가 있으며
그 분노 속에는 슬픔이 있으니
나 또한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글이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11분 종이 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