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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도 말해주지 못하는 것

by 나무둘

경주마 훈련


11분 안에 최대한 빠르게 글을 쓴다.

자유롭게 연상되는 대로 쓴다.

철자나 맞춤법, 논리 등은 생각하지 않는다.

낯선 단어들을 조합하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형용사와 명사를 조합하자.

이상한 문장을 만들자.

새로운 단어를 발명하자.

하나의 표현을 단어만 바꿔 가며 계속 써보자.

이름을 쓰고, 이름 뒤에 감춰진 그 사람의 기이한 면모를 적어보자.

문을 열고 한 번도 나간 적 없는 곳으로 그들을 내보내라.

시간이 다 됐다.

11분 동안 얼마나 많은 단어를 썼는가?

다음에는 이보다 더 많이 써보도록 하자.


-픽사 스토리텔링, 매튜 룬




제목부터 무작정 생각나는 대로 뽑고 보는

11분 글쓰기.


심리상담을 업으로 하다 보니

아무래도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거기다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사고에 강한 터라

글은 점점 더 산으로 가는데...

그래도 읽는 분은 즐겨 읽는 분들이 있는 걸 보면

이 또한 과히 나쁘지 않지 않은가!

감사합니다.

끝까지 인내심을 발휘해 읽어주셔서.

혹은 (몇몇 안 되시겠지만) 코드가 맞다고 좋아해주셔서.


정신과 의사는 무엇을 말해주지 못할까?


심리상담을 하다 보면

답을 찾고 싶은 사람들의 끈질긴 심리, 요구, 욕구를

자주 만난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정답'을 원한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외부에서 들으려고 하는 것이다.


심리검사를 통해서

전문가를 통해서

객관적인 답을 구한다.


객관적!

가슴에 사무치도록

가슴을 찔러 대는 단어다.


세상은 객관적일 수 없으며,

세상을 경험한 우리 인간은 객관적일 수 없다.


어디에 '객관'이 존재하는가.

세상의 모든 것이 전부 다 우리의 눈, 귀, 코, 입, 피부를 통해서

경험되면서 왜곡될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일까?

더더욱 객관을 찾고 싶어한다.


그리고 처음부터 없는 객관이니

우리는 고통에 빠진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걸

한평생 찾아봐야 무엇하겠는가!

오오통재라.


정신과 의사는 흔한 답을 한다.

스트레스 받지 말고 일은 적당히 하시고요,

밤에 잠 잘 주무시고요,

운동하시고요,

햇빛도 쐬시고요.


누가 모르는가.

다 아는 거다.


우울증 초기 증상입니다.


누가 모르는가.

나도 내가 우울하다는 것을 아니까 찾아왔다.


심리검사를 받으면 나아지나?

아니다.


마음에 이미 갖고 있던 의심에 종지부를 찍는 건

나의 확증 편향이다.


거 봐, 그럴 줄 알았어.

이런 마음.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을 알려고 하면서

스트레스를 더 받는다.


그럼 어느 장단에 춤을 추나?

답을 찾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여기서 소크라테스가 성인이라는 게 드러난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처음부터 모른다고 가정하고 (사실은 그게 실제니까)

모르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하는 거다.


결정적으로 방금 언급한

이런 명백한 사실을 정신과 의사도

곧이곧대로 말해줄 수는 없다.


환자는 치료 받으러 왔다기보다는

위로와 공감을 얻으러 오는 경우가 많기에.


괜히 혹을 더 붙이느니

약을 처방하는 게 편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차라리 이렇게 시작하면 어떨까.


나는 모르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왔으니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명백히 지적해주시오!


그렇다.

알려고 하지 말고

그저 모름을 명명백백히 밝힐 때

그때 진짜 앎은 출발하지 않겠는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은

모름의 범위를 더 많이 알아간다는 것은


자기를 더 많이 이해하고 알아간다는 의미가 된다.


정신과 의사도 절대 답해줄 수 없는 것.

정신과 의사도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을 나는 스스로 탐구해 갈 수 있다.


11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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