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Do it. 인생도 초벌구이부터 해요.

심리상담사의 아침편지

by 나무둘

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청소를 하고 나서 늘 그렇듯 이 글을 씁니다.

이 글을 쓸 때 가장 첫 번째로 하는 작업은

녹음 메모를 하는 것입니다.


바로 타이핑을 하지 않고

핸드폰의 구글 메모 등을 켜고

생각나는 대로 주저리주저리 떠듭니다.


그때 핸드폰의 음성 타이핑 기술을 써서

구글이 알아서 받아 적게 합니다.

생각의 흐름에 방해받지 않기 위해

타이핑하며 검열하고 교정할 틈도 주지 않고

나는 말로 떠들고 AI는 그걸 받아 적게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글이라고 할 수도 없는 초벌을 완성합니다.

음성을 제대로 인식을 못한 부분은

말도 안 되는 엉성한 문자열이 있기도 하고요.


이후 잠깐 아침식사를 하면서

글에서 떠나 있습니다.

내 뇌가 방금 떠든 이야기를

어떻게든 산뜻하게 조합하고 정리하리라 기대하며.


식사를 하며 뇌에 에너지를 공급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놀라운 제목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이 편지의 제목처럼요!)


식사를 하고 돌아와 PC 앞에 앉습니다.

음성 타이핑된 글을 열고

다시 보며 새롭게 정리를 하며

글을 완성해 나갑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편지가

바로 그런 글입니다.


오호라.

내가 아침 청소를 할 때마다

왜 그렇게 힘이 들어갔는지

불현듯 이해가 됩니다.


한탕주의.

한 방에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바쁜 아침, 이 소중한 시간에

시간과 장소와 순서의 오차가 없이

깔끔하게 끝내야 한다는 생각.


생각해 보면

사실 청소를 아침에만 하는 건 아닙니다.


상담과 프로그램 중간중간

오며 가며 계속 눈에 띄는 먼지, 머리카락 등을 줍습니다.

그때그때 사람들이 마시고 간 컵을 닦습니다.

사실 청소를 하루 종일 하고 있는 것입니다.


TV에서 본 팽현숙 사장님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팽 사장님은 큰 카페를 운영하면서

어쩐지 우아한 카페의 여주인답지 않게

허리춤에는 늘 행주를 달고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청소할 준비를 하고

눈에 띄는 것이 있으면 즉각 치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문득 든 생각.

'아침 청소는 애벌빨래, 초벌구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구나.

너무 힘들여 완벽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뭐든지 한 번에 다 해결하려고 하는 자세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기업들도 시제품 테스트를 한 후에야

제대로 된 제품을 시장에 내놓지요.

한 번에 해결되는 건 없는 게 세상의 이치.


이 짧은 글을 쓸 때도

음성 녹음, 자동 타이핑, 머릿속 부화기를 거쳐

다시 이렇게 완성하고 있는 것을.

왜 청소에는 이런 사고방식을 적용할 생각을 못했을까.


오늘부터 아침 청소는 좀 더 가볍게 하기로 합니다.

'권한 위임'이라 훌륭한 표현대로

세미나실은 책방지기에게 맡기기로 합니다.

완벽하게 끝내려는 강박을 덜어내기로 합니다.

이제부터 아침 청소는 내게 애벌빨래, 초벌구이입니다.


인생도 그렇게 살아보기로 합니다.

인생은 연습도 없이 늘 실전이라고 하지만

실전은 연습처럼 하라는 말도 있듯이

애벌빨래부터, 초벌구이부터 하는 마음으로 삽니다.


세상에서 제일 거대한 신발가게의 슬로건이

그토록 유명한 이유가 이런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애벌빨래부터 시작하라.

대강 초벌구이라도 하라.

영어로 Just Do it.


당신은 어떤 일을 완벽하게 하려고 애쓰나요?

그 마음 때문에 초벌구이조차 못하고 있는 건 무엇인가요?

일단 초벌로 굽고 애벌로 빨래부터 한다면 무엇을 하는 게 좋을까요?


오늘은 특별히

차마 손을 대지 않았던 것을

건드려 보기로 합니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으니

아예 절대로 완벽하지 않게.

가볍게 일단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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