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지 않아도 선할 수 있어.

by 나무둘

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청소를 마치면 늘 쓰는 아침편지.

오늘은 '매번 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걸까?' 생각을 합니다.

때로는 정말 글쓰기 위해서 글을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머릿속의 넘치는 생각이 내게 말합니다.

'이걸 글로 적어줘!'


좋게 말하면 샘솟는 아이디어,

안 좋게 말하면 끊임없는 비평 분석.

오늘은 또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벌써 넘쳐나는 생각에 나도 내 머릿속이 궁금합니다.


IFS 내면가족체계라는 심리치료기법이 있습니다.

그 이론에서는 내 안에 수많은 내가 있다고 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내면아이'가 한둘이 아니라는 거지요.

그 내면아이들 중에는 비평가도 있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대로 돼야 된다고 따지고 들고

이래저래 시끄럽게 간섭하고 뜯어고치려 하고

남을 나무라고 나를 탓하는

내면의 한 자아, 비평가.


오늘 나무둘 라디오에서도

내면의 비평가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 청소도 비평의 일부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먼지가 없어야 한다.

먼지를 없애야 한다.

물건이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물건을 가지런히 놓아야 한다.

등등.


얼핏 참으로 지당하고 옳은 말 같지만

어떤 면에서는 삶의 전체 모습을 죽이는,

삶을 한 단면으로 절단시키는 생각입니다.


음식이 있으니 똥이 있는 법.

음식을 먹으면 당연히 똥이 나오는 것이지요.

똥이 없이는 음식도 없습니다.

먹이사슬의 최하단인 식물은

심지어 똥을 먹고 자랍니다.

똥은 음식을 만들고

음식은 똥을 만듭니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

선과 악을 다 포함해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이

더 큰 '선'입니다.


음식과 똥, 빛과 그림자, 깨끗함과 더러움.

양 단을 다 받아들이지 못할 때

나는 쉽게 내 행복을 망칩니다.

아주 간단하게 마음이 지옥에 떨어집니다.


동전의 양면을 보지 않고

한 곳만 단편적으로 보고 그것만 고수하려 하는 것.

쉽게 얘기해서 내 생각에 꽂혀 있는 것.

그냥 내 생각대로만 계속 사는 것.


자칫 청소도 그런 일이 되지 않도록

'이건 있어야 한다, 저건 없어야 한다.'라고 떠드는 내면의 비평가 소리를 너머

오늘 나의 청소가 들추어내는 삶의 진실을 봅니다.


청소를 하며 어둡고 더럽고 칙칙한 것들을 봅니다.

내 마음, 내 삶의 반대편을 봅니다.

굳이 들추어내는 청소처럼

굳이 바라봅니다.


나의 부족함, 모자람, 숨기고 싶은 것들.

심리학적으로 얘기하면 남에게 투사하고 싶은 것들.

내 안에 있지만 내 것이 아니라고 하고 싶은 것들.

우리는 나의 열등감을 남에게 던져 놓고

시기와 질투를 느낍니다.


청소를 하며 마주하는 많은 것들은

사실 나의 내면을 보여줍니다.

바닥에 뭉쳐져 떠다니는 먼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작은 종이 쪼가리,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게 많이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


그것들은 치워야 할 대상이기 전에

바라보아져야 할 것들입니다.

빛과 늘 함께 공존하는 그림자처럼.

내가 싸워 이기고 극복해야 할 것이 아니라

큰 전체 안에 함께 존재하는 것,

먼지와 나.


이 둘을 다 포괄하는 것이

삶이며 생명의 본질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기억합니다.

나는 주체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먼지에게는 객체이기도 한 것.

나는 큰 우주에 일부로써 속하기도 한 것.

나도 결국엔 신의 몽당연필인 것입니다.


이쯤에서 내 안의 비평가가 떠듭니다.

글이 모호하고 논리적이지 않은 것 같아!


나는 괜찮다고 비평가에게 이야기합니다.

논리적이지 않은 것도 나야.


먼지, 종이 쪼가리, 머리카락을 치우며 내게 말합니다.

나는 비평적인 부분도 비논리적인 부분도 다 끌어안고 살 거야.


당신은 어떤 부분을 비평하며 사나요?

어떤 부분을 거절하고 어떤 부분을 환영하며 사나요?

혹시 둘 다를 끌어안고 품고 있으면 어떤 진실이 드러날까요?


오늘은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섣불리 치우지 않기로 합니다.

그 자리에 한나절 머물던 먼지처럼

내 안의 한 자리를 허용하고

잠시 응시합니다.


그러자 비평적인 부분도 비논리적인 부분도 비켜서며

내면에 새로운 빛이 듭니다.

광명의 목소리가 내면 가득 울립니다.


옳지 않아도 선할 수 있어.

옳지 않으면 더 선하기 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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