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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의 정자가 되어 춤을 추어요.

by 나무둘

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그동안 청소를 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이

환풍기를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하는 가장 첫 번째 행동,

그것은 전등 스위치를 켜는 것입니다.

지하 공간에 불빛을 밝히는 것입니다.


아하 그렇다면!

나는 한 세계에 빛을 던지는 자.

메시아에 앞서 광야에서 외친 요한처럼

지하에서 청소에 앞서 불을 밝히는,

어둠 한가운데에 뛰어든 빛의 선포자.


오호, 이런 생각을 하다니.

스스로 감탄하며 필사적인 비약을 이어갑니다.


깜깜한 이곳은 자궁입니다.

빛을 잉태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삼키고 있던 어둠입니다.

묵묵히 빛을 키우기 위해

한 존재가 자기에게 씨앗을 심어주기만을 기다리던

칠흑같이 깊은 자궁입니다.


그곳에 횃불 하나 들듯 등장한 나는

정자입니다.

고요한 어둠을 깨뜨리고

요란한 움직임으로 청소를 하며

나는 자궁의 가장 깊은 곳,

난자 안으로 침투합니다.


숨어 있던 먼지와의 한 바탕 대결.

지하의 구석구석을 쓸고 닦으며

어둠을 샅샅이 훑으며

더 깊이 들어갑니다.


오랫동안 기다려 왔으나 수정되지 않으려는 자와

기어이 자기를 소멸시켜서라도 수정되려는 자 간에

끈질긴 생명의 사투가 일어납니다.


떠들썩한 청소가 멈추고 다시 찾아온 고요.

어둠 속에서 은근하게 생명의 빛이 감돕니다.

지하는 아무도 살지 않는 죽음의 공간이 아니라

누구든 맞이할 수 있는 생명의 공간으로 거듭납니다.

이곳에 오는 누구든 그 지고한 생명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어둠 속에서 생명이 빛을 품고 기다립니다.


나의 청소가 이런 의미가 있을 줄이야.

나는 한 마리의 정자(精子)가 되어 춤을 춥니다.

나는 정자(正字)로 쓰듯 또박또박 청소를 합니다.

나는 벽도 문도 창도 없이 확 뚫린

한 채의 정자(亭子)로 머물며 누구든 환영합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상담실 이름을

'허심정 (虛心亭)'이라고 지었나 봅니다.

빌 허, 마음 심, 정자 정.

이곳에 오는 이가 낡은 마음을 훌훌 털고

확 뚫린 마음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청소를 마치고 불을 끕니다.

다시 캄캄한 지하의 어둠 속.

수정되어 약동하고 있는 생명이 느껴집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고요하게 맺히고 있는 결실을 미리 바라봅니다.


당신은 자기만의 어둠 속에서 무엇을 키우고 있나요?

당신도 모르게 수정되어 잠잠히 자라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한 마리의 정자처럼 당신 삶을 통해 춤추고 있는 당신만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오늘 나는 한 마리 정자가 되어 춤을 춥니다.


당나라 때의 시인 백낙천의 시구처럼

사나운 보라매와 상스러운 봉황이 저마다 자유롭게 날고 깃드는,

끝없이 넓고도 아담한 정자(亭子)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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