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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이렇게 잘 살고 있지?

by 나무둘

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오늘은 3시 50분쯤 일어났습니다.

어젯밤에 새벽 3시에 일어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으나

3시에 알람을 끄고 신에게 경배하는 엎드린 자세로

50분을 경건하게 침묵하고 나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평소처럼 일과를 시작하는데

어딘지 못마땅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짐한 대로 새벽 3시에 못 일어났기 때문인지

내 삶에서 제대로 굴러가지 않고 있는 부분이

부각되어 의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아 맙소사.

새벽 네 시경부터 인생을 못마땅해하고 있다니.

그럴 거면 도대체 왜 일찍 일어난 것인가.

이 인간은 도대체 왜 이러나.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루틴을 멈춥니다.

분풀이하듯 종이에 지금의 심정을 휘갈겨 씁니다.

생각과 감정을 마구 풀어내다가

마지막으로

종이를 시원하게 구겨서 던집니다.

홈런!

이라도 친 듯 개운해지면 좋겠는데

뭔가 약간 남아있습니다.


이럴 땐 샤워가 제격입니다.

샤워를 하다가 정신이 들기 시작합니다.

불평불만으로 새벽을 열다니 이럴 수가.

정신이 썩었네 썩었어.


갑자기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분노의 샤워를 마치고 청소를 하러 갑니다.

샤워로 부족할 땐 그다음은 청소가 제격.

마음의 때를 박박 문지르러 갑니다.


청소기를 여기저기 끌고 다니다 보니

오늘도 역시나 코드가 꼬입니다.

꼬인 코드를 정리하면서

내 마음도 정리합니다.


정신이 좀 들어서

'도대체 왜 이렇게 꼬이는 거지.'

라고 투덜대지 않습니다.


심리상담 중에 내가 흔히 내뱉는 말이 생각납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에요.

잘잘못이 없는 지나간 일이지요.

과거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을 수 있어요."


그렇지,

새벽 3시에 못 일어난 것 자체는 아무 문제도 아니지.

내 탓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내가 문제지.

혼잣말을 합니다.


과거는 아무 잘못도 없었습니다.

과거의 나는 새벽 3시에 깨서 삶이 너무 감격스러운 나머지

50분간 신에게 경배를 올렸을 뿐입니다.


성당에서 미사 중에 하는 의식이 생각납니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심장을 강하게 치면서 말하라고 합니다.


스트라이크 삼진 아웃을 당하듯

내 심장을 강하게 스트라이크하며

새벽부터 날 때려 댄

나를 반성합니다.


청소기 코드가 정리되고 몸체에 쏙 들어가니

꽁무니까지 말끔하게 마감됩니다.

완벽하게 뒤처리된 그것이 떠오릅니다.

더 닦을 필요도 없이 완벽해!


그렇구나.

나의 과거도 완벽한 것입니다.

지금의 내가 탓하지 않을 때에는.

그 자체로 완결된 훌륭한 역사입니다.


오 뜻밖의 깨달음.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해탈입니다.

더 닦아야 할 게 없습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렇게 훌륭합니다.


청소기의 엉덩이를 툭툭 치면서

오늘따라 별난 나에게

별스럽게 알려줘서

고맙다고 합니다.


당신은 자신의 삶이 마음에 드나요?

못마땅한 과거가 있다면 어떻게 하고 싶나요?

혹시 그 과거가 문제가 아니라 그 과거를 보는 지금의 내가 문제는 아닐까요?


청소를 하기 전에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살고 있지?


청소를 마치고는

깨달음도 얻었겠다,

한 단어를 덧붙였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잘' 살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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