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리움이 반가움이 되는 순간

by 나무둘

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아침부터 봄비가 내립니다.

비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듭니다.

글을 천천히 쓰고 싶다,

천천히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만히 빗방울 떨어지는 걸 보니 차분함이 깊어집니다.

오늘 하루쯤 아예 글을 쓰지 않으면 어떨까,

생각도 해 봅니다.


꽃잎이 도로 가장자리에 촘촘히 모여 있습니다.

물결을 따라 꽃잎이 흐릅니다.

소풍을 떠나는 모양입니다.


귀천,

이 생 잘 살다가

나 하늘로 돌아간다네.

떠나는 꽃잎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입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어떤 소식이 더 반가운 소식일까.

꽃이 핀 소식?

비가 오는 소식?

혹은 꽃이 진 소식?


봄비가 반가운 걸 보니

꽃이 지는 소식도 반가운 것 같습니다.

비가 내리면 꽃이 지는 게 수순.

비에게 봄을 바통터치한 꽃.


불현듯 깨닫습니다.

반가운 것은 늘 현재구나.


꽃이 피었을 때 반가운 것도

봄비가 와서 반가운 것도

또 꽃이 지며 반가운 것도

늘 그 순간 현재였구나.


꽃도 비도 봄도

결국 한 가지 이야기를

내게 전하고 있었습니다.


과거를 반가워 할 수 없고

미래를 반가워 할 수 없는 법.

반가움은 늘 이 순간에만 생생한 것.


봄비가 내 몸에 닿아 촉촉한 감촉을 남길 때

반가움은 살아 있습니다.

계단을 쓸며 먼지와 뒤섞인 꽃잎들이 춤출 때

반가움은 살아 있습니다.


지금 일어나는 모든 것이 반갑습니다.

한 소식을 가져오는 모든 것이 반갑습니다.

그것이 꽃 피는 소식이든 꽃 지는 소식이든.

내가 지금 있는 것과 접촉할 때

그것은 그리움이 반가움이 되는 순간입니다.

반갑게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바로 이 순간.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라고

타타타 거리던 아저씨의 노래가

염세주의가 아니라는 걸 깨닫습니다.


타타타,

꽃이 피면 꽃구경하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꽃이 지면 귀천길 배웅하며

지금의 반가움을 사는

지극한 낙관주의입니다.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빗자루로 꽃잎을 쓸어 담으며

하늘로 잘 돌아가라고 말해줍니다.

빗자루질에 가볍게 부유하는 꽃잎들이

반갑게 떠나보내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합니다.


당신은 어떤 소식을 그리워하나요?

그리움이 반가운 소식이 될 때는 언제인가요?

반가운 소식을 다시 떠나보내면서도 반가워하나요?


오늘은

물결 따라 흘러가는 꽃잎을 보며

반가웠던 것이 떠나가는 소식도

반가울 수 있음을 배웁니다.


그건 또다시 그리움이 될 테고

다시 언젠가 반갑게 맞을 날이 올 거라는 희소식임을,

봄비를 맞으며 차분하게 알아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생은 원래 미완성이야. 그리고 그게 완성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