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아침부터 봄비가 내립니다.
비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듭니다.
글을 천천히 쓰고 싶다,
천천히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만히 빗방울 떨어지는 걸 보니 차분함이 깊어집니다.
오늘 하루쯤 아예 글을 쓰지 않으면 어떨까,
생각도 해 봅니다.
꽃잎이 도로 가장자리에 촘촘히 모여 있습니다.
물결을 따라 꽃잎이 흐릅니다.
소풍을 떠나는 모양입니다.
귀천,
이 생 잘 살다가
나 하늘로 돌아간다네.
떠나는 꽃잎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입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어떤 소식이 더 반가운 소식일까.
꽃이 핀 소식?
비가 오는 소식?
혹은 꽃이 진 소식?
봄비가 반가운 걸 보니
꽃이 지는 소식도 반가운 것 같습니다.
비가 내리면 꽃이 지는 게 수순.
비에게 봄을 바통터치한 꽃.
불현듯 깨닫습니다.
반가운 것은 늘 현재구나.
꽃이 피었을 때 반가운 것도
봄비가 와서 반가운 것도
또 꽃이 지며 반가운 것도
늘 그 순간 현재였구나.
꽃도 비도 봄도
결국 한 가지 이야기를
내게 전하고 있었습니다.
과거를 반가워 할 수 없고
미래를 반가워 할 수 없는 법.
반가움은 늘 이 순간에만 생생한 것.
봄비가 내 몸에 닿아 촉촉한 감촉을 남길 때
반가움은 살아 있습니다.
계단을 쓸며 먼지와 뒤섞인 꽃잎들이 춤출 때
반가움은 살아 있습니다.
지금 일어나는 모든 것이 반갑습니다.
한 소식을 가져오는 모든 것이 반갑습니다.
그것이 꽃 피는 소식이든 꽃 지는 소식이든.
내가 지금 있는 것과 접촉할 때
그것은 그리움이 반가움이 되는 순간입니다.
반갑게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바로 이 순간.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라고
타타타 거리던 아저씨의 노래가
염세주의가 아니라는 걸 깨닫습니다.
타타타,
꽃이 피면 꽃구경하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꽃이 지면 귀천길 배웅하며
지금의 반가움을 사는
지극한 낙관주의입니다.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빗자루로 꽃잎을 쓸어 담으며
하늘로 잘 돌아가라고 말해줍니다.
빗자루질에 가볍게 부유하는 꽃잎들이
반갑게 떠나보내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합니다.
당신은 어떤 소식을 그리워하나요?
그리움이 반가운 소식이 될 때는 언제인가요?
반가운 소식을 다시 떠나보내면서도 반가워하나요?
오늘은
물결 따라 흘러가는 꽃잎을 보며
반가웠던 것이 떠나가는 소식도
반가울 수 있음을 배웁니다.
그건 또다시 그리움이 될 테고
다시 언젠가 반갑게 맞을 날이 올 거라는 희소식임을,
봄비를 맞으며 차분하게 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