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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에서도 삶의 기쁨을 얼마든지 캐낼 수 있어.

by 나무둘

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오늘은 새벽 3시에 벌떡 일어났습니다.

어제의 한을 날려버리며 드디어 성공했습니다.

새벽에 바깥으로 나가니 공기가 참 상쾌했습니다.

비가 온 뒤라 그런지 마치 제주도 사려니 숲에 들어와 있는 듯

아주 상쾌한 공기가 가슴 깊숙이 들어오는 것이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여기까지 쓰다가 문득 깨닫습니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매우 심한 날입니다.

다시 실시간 미세먼지 농도를 살펴보니 확실합니다.

상쾌한 공기로 착각했던 내가 우스워서

한 번 더 웃습니다.


어쨌든 기분 좋은 상태로 청소를 했습니다.

건물 앞에서 카펫을 터는데 도로 저 편에 비둘기가 보입니다.

고개를 앞뒤로 끄덕끄덕거리면서 걷고 있는 비둘기.

꼭 내 모습 같습니다.


먼지를 찾으러 여기저기 살펴보는 나.

몸을 굽혔다 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나.

청소 중에도 글감을 떠올리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나.


정처 없이 왔다 갔다 거리며

구구구구 계속 무언가를 찾고 있는 비둘기와

내 모양새가 비슷했습니다.


며칠 전 작가인 지인이 제게 말했습니다.

너 참 대단하다. 어떻게 청소를 가지고 매일 그렇게 글을 쓸 수 있냐?


제가 대답했습니다.

나도 작가가 되고 싶다. 도대체 작가는 어떻게 되는 거야?


그랬더니 지인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봤을 때 넌 이미 작가야.

매일 한 주제로 그렇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작가가 아니면 뭐야.


작가에게 작가 소리를 듣다니 황송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도 내가 어떻게 글을 쓰고 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매일 똑같은 청소를 하면서 내 글감이 되어 준 친구들.

먼지, 먼지떨이, 청소기, 청소기 코드, 쓰레받기, 거울, 상담실 명패 등등.

돌아보니 모든 것이 참 소중합니다.

나의 글감이 되어주어 소중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이런 사소한 것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다만 자기 꼴대로 존재해 주어 소중한 것입니다.


사소한 것에도 삶은 무궁무진하게 풍요로울 수 있어,

작은 것에서도 삶의 기쁨을 얼마든지 캐낼 수 있어,

눈을 잘 뜨고 보면 삶은 감사와 찬미할 게 넘쳐 나지.

나의 친구들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를 받아 적으며 나는 배웠습니다.


비둘기가 바닥을 보며 끄덕끄덕 하고 다니는 것은

세상에 찬미할 게 또 무엇이 있는지 찾는 몸짓이었습니다.

구구구구하며 돌아다니는 것은

범상한 세상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소리였습니다.


구구구구,

구천 구백 구십 구 가지

더 이상 셀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은 경이로움으로 가득해!


잠시 비둘기를 바라보다가

서점에 돌아와 비둘기의 안목으로 사물을 보았습니다.

구구구구, 좀 더 감사하고 찬미할 것은 무엇일까.

좀 더 애정을 담아 바라본다면 어떻게 다르게 보일까.

청소를 마치며 마음에 고요한 기쁨이 차 오릅니다.


당신을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소해서 눈에 들이지 않고 있는 기쁨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요?

깜박 잊고 살지만 돌아보면 참 감사한 것이 있다면 그건 무엇인가요?


오늘 나는

비둘기처럼 바닥에 널린 것들,

내 삶에 흔해 빠진 것을 보고도 기뻐하려 합니다.


당신도 나도

오늘 내 삶의 작은 면에도 감동받고 감사하며 살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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