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tub 마크툽. 희망은 운명이다.

by 나무둘

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요새는 황사 바람이 많이 불어서

바닥에 먼지도 많고 나뭇잎도 많습니다.

그래서 바닥을 쓰는 시간이 평소보다 조금 더 오래 걸립니다.


이럴 때면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매일 열심히 청소를 해야 하는 것인가.


이 편지에 쓰듯 온갖 말로 나 자신을 구슬려

청소의 아름다움을 찬미하지만

하기 싫은 본능은 어쩔 수 없습니다.

특히 오늘처럼 쓸어도 쓸어도 계속 쓸리는 먼지를 보면.


나 자신을 구슬리기 위해

요새 조금씩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도 읽고 있겠다,

며칠 전 연금술사의 배경인 산티아고에 대한 강연도 들었겠다,

연금술사에 나오는 한 단어가 떠오릅니다.


Maktub.

아랍어로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라는 뜻.


내가 아니라 신이 나의 명판에 새겨놓은 것.

그분이 이미 그렇게 써 놓은 나의 운명.


이 청소 또한 Maktub이 아닐까.

외주하거나 자동화시키지 못하고

스스로 매일 성실하게 청소하는 나의 운명.


어쨌든 오늘도 청소를 해야 하고

내일도 청소를 해야 되고

당분간은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분명한 현실입니다.

지금 그게 나의 운명입니다.


어차피 당분간 계속 이렇게 살 거라면

신세한탄을 하고 불만을 표현하느니

그냥 받아들이는 게 낫겠지요.

그래서 마크툽 Maktub.

이 또한 신의 섭리겠거니 합니다.


소설 연금술사에서 주인공은

수많은 좌절을 겪고 포기의 유혹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계속 전진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의 여러 상징이 등장해 그를 격려하고

뜻밖의 인물이 나타나 그를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그런 외부의 도움이 있기 전에

그가 자기 가슴속에 울리는 삶을 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내면의 목소리.

주인공은 현실이 아무리 자기를 위협하더라도

애써 모은 전 재산을 허무하게 잃었을 때에도

목숨을 걸고 예언을 전해야 했을 때에도

끝까지 자기 안의 목소리를 따랐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야말로

자기 안의 것을 살아야 하는 순간.

목숨을 걸더라도

나 자신이 되어야 하는 순간.


그때 사람은 누구나 시험대에 오릅니다.

다른 아무나로 살 것인가?

나 자신을 배신하고 아무나 될 텐가?


다른 아무나는

매일 이런 청소를 하지 않습니다.

나만이 이런 청소를 매일 반복합니다.

내가 사는 이 삶이 지금 나의 운명입니다.


Maktub.

청소 하나 하면서 굉장한 의미 부여를 해 봅니다.

오늘 같은 날은 그만큼 성가신 일이기에.

청소에서조차 신의 섭리가 작용한다고

신이 미리 써 놓은 나의 운명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킵니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이 사소한 청소도 나의 운명과 관계된 것만은 분명합니다.

지금 내가 살아내야 할 것이기에.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사소하고 귀찮은 청소를 통해서도

내 안의 목소리를 잘 듣는 일이며

그 목소리에 화답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인즉

내가 타고난 큰 운명은 알 수 없지만

이 청소는 아무나 하는 아무 일이 아니라

오늘 내게 주어진 작은 운명인 셈입니다.


별 것 아닌 듯한 청소를 함으로써

나는 나의 운명을 성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운명을 개척하고 전진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자비로운 신이 나의 청소를 굽어 살피리라 믿으며

신이 스스로 써놓은 내 운명의 경로를 유연하게 조정하리라 믿으며

신이 기록해 놓은 것을 그대로 실천합니다.


이는 달리 표현하자면

최후에도 나는 내 자유의지를 갖고

내 뜻을 발휘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최종적으로 마크툽을 실행하는 것은 인간 자신이기에.


당신은 어떤 운명을 살고 있나요?

주어진 것이라 마지못해 살고 있는 것이 있나요?

아니면 그게 무엇이든 자신의 의지로 실천하고 있나요?


나는 오늘도 청소를 하며

지금 이렇게도 살 수 있다면

앞으로 어떤 마크툽이든 더 잘 살 수 있으리라 희망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반드시

운명은 희망적일 것이라 믿습니다.

그에게 희망은 운명적입니다.


희망은 운명.

자기 삶을 사는 인간에게는

이 또한 마크툽 Maktub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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