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새벽하늘이 어제보다 흐릿합니다.
축축한 공기가 대지를 감싸고 있습니다.
이런 날이면 약간 원시적인 감각이 듭니다.
눅눅한 대지에서 태곳적 원시성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미지의 것이 꼴을 갖추고 한 형체를 드러낼 것만 같습니다.
오랫동안 잊힌 것.
언제든 솟구치려 하는 것.
그것은 원시적인 생명력입니다.
오늘은 새벽부터 '생명의 감각'이 분명하게 다가왔습니다.
마치 안개가 자욱이 깔린 고대 밀림에서
뭔가 번뜩이고 부스럭거리듯
생명력이 느껴졌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오늘 라디오에서는 준비했던 책을 덮어 버렸습니다.
뭔가 즉흥적으로 살아있는 것을 전달하고 싶어
계획을 접고 날 것 그대로의 방송을 했습니다.
대본도 없이
준비도 없이
계획도 없이
사람들과 만나서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켜고
두런두런 토크쇼 하듯
진행한 라디오.
그런데 이게 웬걸요.
청취자들이 평소보다 훨씬 즐거워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심지어 즉석에서 정모를 하자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일생동안 우리가 원하는 건 바로 이런 것이지요.
사람과 대화가 통하는 것.
내 마음을 말하는 것.
내 말이 들리는 것.
이게 다름 아닌 '생명력'.
'살아있네!'라고 말할 때 그 느낌.
'통즉불통 불통즉통'이라고 하더니.
통하면 아프지 않고 살아있는 것입니다.
생명은 언제든 꿈틀대고 펄떡이고 싶어 합니다.
라디오를 마치고 청소를 시작하는데
왠지 모르게 유쾌한 기분이 듭니다.
몸도 마음도 가볍고
먼지가 쓱쓱 잘도 쓸립니다.
지우개로 지우듯 바닥이 깨끗해집니다.
어제는 매일 청소를 한다는 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의 형벌 같다며
Maktub(신이 이미 정해놓은 내 운명)에 비유했었는데.
오늘은 새벽부터 마주한 원시의 생명력 때문인지
빗자루로 먼지를 쓸면서 그 마크툽마저
모래 위에 쓴 글씨가 바람에 날리듯
가볍게 지워지는 기분이 듭니다.
돌에 새긴 듯 무거운 운명의 기록을 지우는 청소라니!
이미 새로워졌고 언제든 다시 새로워질 수 있으니
어찌 유쾌하고 신명 나지 않겠어요.
나의 빗자루는 정해진 운명조차 바꾸는 연금술사의 지팡이.
나의 쓰레받기는 새로운 운명을 주조하는 마법사의 솥.
깨끗해진 바닥은 새로운 삶을 기록할 명판.
먼지를 쓸면서 나의 운명을 지우고 다시 씁니다.
Maktub 마크툽을 쓰는 사람은 나입니다.
쓱싹쓱싹,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합니다.
당신의 삶은 당신이 어떤 운명이라고 말하고 있나요?
그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것은 정녕 정해진 운명일까요?
오늘 나는 청소를 하며
나의 원시적인 생명력과 접촉합니다.
번뜩번뜩
부스럭부스럭
하하호호
꿈틀꿈틀
펄떡펄떡
쓱싹쓱싹
태고로부터 비롯된 생명의 감각이
날 것 그대로 심장에 쿵쾅거릴 때
운명은 운명 지워진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새로 쓰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