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오늘은 늦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새벽 3시에 잠시 일어났다가
다시 눈을 뜨니 5시 30분이 지난 상황.
어제 새벽부터 하루 종일 바빴던 일정이 떠오릅니다.
늦잠을 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혼자 중얼거립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일 뿐이야.
청소를 시작합니다.
카펫을 털려고 밖으로 나왔더니
보도블록을 청소하는 차량이 요란하게 지나갑니다.
갑자기 내가 초라하게 보입니다.
큰 소리를 내며 육중한 움직임을 자랑하는 기계 앞에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쥐고 있는 내가 아주 작게 느껴집니다.
가내수공업자와 자동화 물류 시스템.
문득 나의 빗자루와 쓰레기 차량의 차이가
그런 구도로 다가옵니다.
또는 순식간에 수천수만 자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챗GPT와
한땀 한땀 정직하게 시간을 들여 타이핑할 수밖에 없는 나.
자동화, 대량화가 가능한 사회에서
나는 손수 빗자루질을 하는 일개 인간입니다.
청소는 나에게 그 사실을 극명하게 알려줍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이것만은 네가 해야 해.
손발을 쓸 때 너는 정말로 인간이라는 거지.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샤워를 대신 해 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작은 서점과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면서
인간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새삼 배우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동네 작은 가게에서도 무언가 구입할 때
그 주인이 어떻게 먹고사는지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소비자로 찾아갔으니 나의 정당한 권리를 받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가게 주인의 기분이 어떤지 오늘 일진은 괜찮은지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으로 만난 게 아니라 판매자와 소비자로 만난 것이니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영업자로 살아보니 다른 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분은 먹고살 만한가?
요새 매출은 괜찮을까?
오늘 기분은 어떤가?
집은 안녕할까?
판매자가 아니라 사람이 보입니다.
나도 소비자이기 전에 사람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우리는 애초에 판매자와 소비자로 만났을 수 있지만
그전에 일상의 희로애락을 똑같이 경험하는 사람입니다.
그도 어쩔 수 없이 인간이고
나도 어쩔 수 없이 인간입니다.
인간은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와 나는 본질적으로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는 인간일 뿐입니다.
빗자루질을 한 번 두 번
손수 내 몸을 움직여하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한 사람일 뿐임을 분명히 인식합니다.
오늘 이 공간에 올 사람에게도
'사람대접'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그 기원을 담아 내 몸을 놀리는 청소가 그 준비운동입니다.
'어서 오세요. 나도 당신과 같은 사람이에요. 사람이 그리운 당신처럼 나도 늘 사람이 그립답니다.'
유명한 심리학자 설리반의 말이 생각납니다.
'모든 사람은 훨씬 더 단순히 인간일 뿐이다.'
카펫을 다 털고
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챙기고 나니
쓰레기 차량의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습니다.
요란하고 육중한 것이 지나간 자리에 한 인간이 남았습니다.
매일 얼굴도 모르는 당신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곤 했는데
오늘은 딱 한 가지를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오늘 인간으로 존재하나요?
오늘도 손수 빗자루질을 하며
인간으로 사는 것에 도전합니다.
내가 사람대접을 받고 싶듯이
만나는 모든 이에게 사람대접을 합니다.
오늘 나는
조금 더 인간일 뿐인 나로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