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로 존재하게 하는 것, 그것을 먼저 행합니다.

by 나무둘

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어제 늦게까지 스터디를 하고

새벽에 일어났더니 몸이 찌뿌드드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벌써 날이 훤히 밝았습니다.

새벽에 일찍 나왔다고 으쓱했던 어깨가 움츠러듭니다.


밝은 하늘빛이 귓가에 속삭이는 듯합니다.

날이 밝았잖니? 어서 청소하렴.


아주 상쾌하지는 않은 몸을 이끌고 청소를 합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만일 오늘 이 공간에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나는 청소를 할 것인가?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안다면 그래도 청소를 할 텐가?


글쎄.

마음이 1초를 머뭇거리다가 답합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당연히,

그래도 청소를 할 거야.


마음에 오가는 질문과 답을 듣고는

내가 매일 청소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청소를 하는 이유는 손님을 환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우선 내가 살아있는 느낌이 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샤워를 하듯이

아무도 오지 않아도 청소를 할 것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의 청소는 계속될 것입니다.


내 몸을 깨끗이 하는 것에 아무 실익이 없어도 매일 그렇게 하듯이

이 공간을 청소하는 것이 아무 경제적 효과를 내지 못한다고 해도 좋습니다.

모든 것을 경제적 이득과 수치로 환산할 수는 없습니다.

매일 아침 하는 나의 샤워처럼.


이는 마치 시험이 없어도 공부를 하겠다는 마음가짐.

스스로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어깨가 올라갑니다.


안 그래도 사회에서 끝없이 주입하는 것에 머리가 아픕니다.

너의 목표는 무엇이니?

그것의 목적은 무엇이니?

그것은 무엇을 위한 무엇이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린지...)


요새의 심리상담,

특히 더 깊은 차원의 심리치료적 접근에서는

'존재'를 강조합니다.


존재란 어렵게 말할 게 없습니다.

그냥 있음으로 족한 것.

그게 존재입니다.


존재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기에

존재하는 것에는 목적성을 부여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수단을 부여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의미도 갖기 전에

존재할 뿐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요.

당신이 존재합니다.

나도 존재합니다.

-끝-


나의 청소도 그냥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이기에 귀하게 여기며 쓸고 닦습니다.

오늘 몇 분이 오셔서 어떤 대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서점과 상담실이라는 공간이 존재하고 사물이 있기에 살뜰히 청소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존재합니다.

이 공간과 사물을 존귀하게 대합니다.

아직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당신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샤워를 하듯

아무도 검사하지 않아도 공부를 하듯

아무도 오지 않는다고 해도 할 청소를 마칩니다.

오늘의 청소 덕분에 내 존재가 더 지극히 존재하는 기분이 듭니다.


당신은 존재하고 있나요?

당신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나요?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요?


오늘 나는 나의 청소가

그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위한 것임을 기억합니다.


어떤 이득이나 효과를 얻기 위해 무언가를 하기 전에

타인을 위한 배려로 무언가를 하기 전에

우선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

나로 존재하게 하는 것,

그것을 먼저 행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일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