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어쩌지, 이 방송 너무 좋은 걸?'
청소 전에 하는 나무둘 라디오의 시작 멘트입니다.
그 멘트처럼 청소를 마치고 나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지, 오늘은 쓸 게 전혀 없는 걸?
요새 나무둘 라디오에서는
바이런 케이티의 책을 읽고 나누고 있습니다.
바이런 케이티의 책 내용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머리가 텅 빈 듯 포맷되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요새 청소를 하면서도 글감을 찾지 않습니다.
평소라면 부지런히 글감 찾아 삼매경이겠지만
그냥 별생각 없이 청소만 합니다.
오늘도 오직 청소를 했을 뿐.
(글감은 어쩌지?!)
그래도 어떻게든 글은 쓴다,
프로작가인 척 굴며 어제 못다한 철쭉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사실 어제 철쭉을 보고 먼저 생각났던 것은
국악동요가 아니라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어제 내가 만난 철쭉은
이 시를 이렇게 바꿔 불러도 좋다고 했습니다.
모르고 보아야
예쁘다.
순간 보아야
아름답다.
나도 그렇다.
나에 대해 다 아는 척 굴면서 보지 말라고.
목련과 벚꽃이 다 지고 난 뒤에 피는 나에게는
나만의 매력이 있으니 그 순간을 포착해 보라고.
나는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철 지나 피는 듯한 철쭉이 철쭉답게 아름답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내가 아름답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안다고 생각하면서 나를 판단하고 재단하며
나 나름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볼 줄 몰랐습니다.
과거는 이랬어야 한다, 미래는 이래야 한다, 이러쿵저러쿵.
사실은 안다고 생각하는 만큼 나는 나만의 아름다움에서 멀어졌던 것입니다.
자세히 보니
모르는 것이 참 많습니다.
모르고 다시 보니
예쁘고 아름다운 것이 그 안에 살아있습니다.
나는 오늘 뭘 쓸지도 모른 채 자리에 앉은 나를 사랑하기로 합니다.
몰라도 더욱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된 나를 사랑합니다.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모름'이 경이롭습니다.
당신은 자기 인생을 얼마나 알고 있나요?
혹시 알고 있다고 생각한 만큼 모르고 있지는 않나요?
그 모름 속에 있을 때 내가 놓치고 있었던 나만의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을까요?
나는 오늘 모릅니다.
이 글이 이렇게 쓰일지 몰랐듯
오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갈지 모릅니다.
이 삶이 얼마나 몰라 보게 예뻐 보일 수 있을지
몰라 봐서 얼마나 더 아름다울 수 있을지
나는 도무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