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오늘은 청소를 하는데 청소기 주둥이가 눈에 띕니다.
가장 더러운 곳에 가장 먼저 가 닿는 청소기 주둥이.
주인이 들이대는 곳으로 어디든 가는 청소기 주둥이는
개미 핥기처럼 자기의 먹잇감과 접촉해서 무엇이든 신나게 빨아들입니다.
아 그렇구나.
아무것에서나 심리적 통찰을 하는
심리상담사만의 직업병이 발동합니다.
접촉 없이는 진정한 삶도 없다.
진정성 있는 모든 것은 접촉으로 이루어집니다.
살아있는 느낌은 접촉에서 옵니다.
요새 가장 핫한 심리치료 방식 중에는
몸 작업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도 소중히 여기는 '감정' 이전에 있는
'몸의 감각'을 있는 그대로 생생히 느끼는 것이
몸을 통한 심리치료의 골자입니다.
접촉이 일어나는 순간.
외부와 내부가 부싯돌 튀며 만나는 순간.
감정을 느끼기 전에 몸에서 쾌, 불쾌의 반응이 일어납니다.
이 원초적 반응 없이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느낄 수 없습니다.
감정조차도 이차적입니다.
때로는 감정조차 우리를 속입니다.
사실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쾌, 불쾌의 감각인데
그 감각이 낯설고 두려워서 감정을 만들어 내 감각을 회피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접촉이 대두됩니다.
다시 원초적 동물 반응부터 챙기자,
그런 뜻에서 몸 작업을 통해 심리치료를 합니다.
접촉은 생물체로 존재하는 느낌을 분명하게 해주는 것,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생생하게 해주는 것,
생명 현상의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인간인 우리가 정말 극복하기 어려운 기본적인 욕구도
전부 접촉을 기반으로 합니다.
수면욕.
이불과의 접촉으로 충족됩니다.
식욕.
음식과의 접촉으로 충족됩니다.
성욕.
성기 간의 접촉으로 충족됩니다.
나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나는 내 인생에 접촉하고 있는가?
행동을 우선시하느라
생각을 중요하게 다루느라
감정을 소중하게 여기느라
접촉하지 않고 사는 순간이 참 많다는 걸 깨닫습니다.
청소기 주둥이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먼지를 직접 들이마셔야 하는 고달픈 인생,
비대면 서비스 시대에도 끝내 먼지를 대면해야 하는 안타까운 숙명인 줄만 알았는데
직접 접촉하는 삶, 생생하게 살아있는 생명의 운행 방식이 보입니다.
청소기가 이런 나의 시선을 느끼는지 한 마디 합니다.
접촉 없이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야.
그래, 네 말이 맞아.
우리도 지금 이렇게 접촉하는구나.
접촉하며 사는 것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가르쳐 준 청소기의 손을 꼭 잡습니다.
당신은 접촉하며 사나요?
혹시 행동, 생각, 감정에 빠져 접촉을 잃고 살지는 않나요?
나를 생생히 살아있게 만드는 접촉은 무엇인가요?
청소를 마치고 식사를 합니다.
평소처럼 포크를 쓰는 대신
오이와 사과를 손으로 직접 집습니다.
내 손과 음식이 접촉합니다.
내 입과 음식이 접촉합니다.
생명과 생명이 이어집니다.
충분히 좋은 삶은
접촉하는 삶입니다.